17년 전 비 내리는 국제 나이트클럽 골목에서, 준석(유오성)은 친구 동수(장동건)을 죽였다. 그 교사를 수행한 것은 동수 조직에 잠입한 준석의 부하, 은기(정호빈)였다.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준석은 건달답게, ‘친구’답게, 한 마디로 죄를 시인한다. “제가 지시했습니다.” 11월 14일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친구2>는 이렇듯 <친구>가 멈춰선 곳에서 실마리를 푼다. 고교시절 어울렸던 레인보우 멤버 혜지(장영남)가 수감된 준석을 찾아온다. 같은 교도소에 수감될 자신(과 동수)의 아들, 성훈(김우빈)을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둘은 유사 부자관계의 인연과 우정을 맺는다. 출소한 ‘큰형님’을 기다리는 것은 조직을 접수한 은기의 위세와 ‘퇴출’의 위협이다. 그 17년 간,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성훈과 손을 잡고 부산을 접수할 것이다.

 

<친구2>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느 모로 봐도, 이 속편은 전편과 아귀가 맞지 않는 부정교합이다. 준석의 아버지 철주(주진모)와 준석, 동수의 아들 성훈의 3세대 서사는 접합지점이 정확하지 않으며 공허하고 난삽하게 넘나든다. 시작부터 전편 오프닝 시퀀스의 콘셉트와 BGM을 노골적으로 반복하지만, 과연 <친구>의 무엇을 계승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이 드문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누구라도 알 만큼 <친구2>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친구2>는 부동의 박스 오피스 1위이다. 19세 이상 관람가 역대 오프닝 스코어를 갱신했고, 개봉 6일 만에 165만 관객을 돌파했다. 나의 관심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비판이 아니다. 어떤 지점에서 관객과 영화가 공명하는지, 타당한 규명에 있다.

<친구2>는 소위 흥행 코드를 솔직하게 따라간 영화다. 작년 한 해, 중장년 관객의 수요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40대의 구매력이 20대를 제치고, 30대에 이어 2인자로 등극했다. 50대 역시 만만찮은 세를 자랑한다. <친구2>가 (굉장히 무리한) 후일담의 플롯을 취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친구>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분절된 에피소드를 띄엄띄엄 엮어놓은 연대기적 서사였다. <친구2>는 2010년대 현행의 서사에 집중하되, 단편적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호출한다. <친구>의 필름을 그대로 옮겨오는가 하면, 구태여 철주의 에피소드를 집어넣으며 60년대 풍경을 스케일 있게 구현한다. 성훈의 소년기를 통해 90년대의 편린을 소환하고, 고교시절을 통해 <친구>가 800만 관객을 동원한 ‘2001년’을 재현한다. 단적으로, 10년 전 "미성년자 관람불가" 초유의 흥행 달성에 동참한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친구2>는, <친구>의 아들이지만 아비의 핏줄을 배반한 영화다. <친구2>의 후반에는 두 개의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이 두 장면은 가필을 하듯 전편의 필름에 직접 덧씌워져 속편과의 구멍을 메운다. 하나는 동수가 살해당하던 현장에서 은기가 계속해서 칼침을 먹이라고 지시하는 장면이다. 다른 하나는 고교 시절 진숙을 둘러싼 동수와 준석의 다툼을 혜지가 엿듣는 장면이다. 각각 전편에선 비중이 희미하거나 등장하지도 않았던 인물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이다. 우정을 먹어 삼키는 건달세계의 비정한 율법과 수컷들의 난폭한 서열싸움은, 일개 단역의 비열한 인성과 로맨스 드라마적 서사 장치로 환원되어 버린다. 그로 인한 결과는 전편이 구축한 필름 누아르적 아우라의 탈색이다.

<친구2>의 악역은 이상하리만치 멋도 위엄도 카리스마도 없는 허술한 건달들이다. <친구>의 차상곤이 발출하던 세련되고 절도 있는 사악함이 그들에겐 없다. 스마트 폰 스피커와 마이크를 번갈아 귓가와 입매에 가져다 대며 통화하는 은기를 보면, 4,50대 졸부, 사장님, ‘아저씨’가 연상된다. 준석의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다. 피카추 문신을 어깨에 새긴 신참 건달은 물론이요, “정말로 보고 싶었습니다, 형님”이라며 읍소하는 옛 수하는 작은 업소를 운영하는 푸짐한 인상의 ‘자영업자’다.

영화 초반, 준석이 은기와 기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보자. "행님, 며칠 쉬다가 외국이나 좀 나갔다 오시죠." "마이 컸네." 여기서 필름 누아르의 정조를 불어넣겠다면, 좀 더 폐쇄적이거나 비일상적 공간에서 조명의 질감을 부여하고, 둘을 독대시키는 방향으로 화면의 조형적 긴장을 살려야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대규모 인원이 동석한 좌식 갈빗집 형광등 밑에서 찍혔다. 영락없는 회사원들 회식 자리다. 준석의 자리에, 가는 세월과 오는 젊음에 치이는 동 나이대 가장들을 배석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축출당한 옛 부하들을 준석이 찾아가 해후의 말을 전할 때 애잔한 현악이 퍼진다. "잘 못 지냈제?" 나는 그 말이 지난 10년 간 고단한 사회를 지새운 가족의 가장, 직장의 중간관리자, 동년배들에게 건네는 인사말처럼 들렸다.

 

<친구2>는 수컷 판타지를 뒤로 물린 자리에, 어떤 생활인의 감각이라 할 만한 것, 자조적인 동년배 의식을 채워 넣는다. 그 장르적 그릇은 몇 개의 레퍼런스로 얼기설기 주조돼 있다. 준석 아버지와 준석의 이야기가 병행하는 대목에선 <대부2>의 마피아 계보학, 잔인하고 원초적인 폭력신과 장르적 낭만의 붕괴에 대한 자의식에선 두기봉 <흑사회2>가 떠오른다.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등 한국 조폭 코미디물의 호흡을 차용해 쉽고 편한 감상의 물길을 텄다.

 

한편, 고교시절 시퀀스에서 성훈은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며 나이트클럽과 노래방을 오간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비트>등의 청춘과 일탈의 서사가 엿보인다. 당시 히트했던 SKY의 <영원>이란 곡이 BGM으로 선곡돼있어 ‘응답하라 2001’의 추억을 전시한다. 성훈 역의 김우빈은 <늑대소년>의 송중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 <화이>의 여진구, <동창생>의 탑과 비근한 맥락의 캐스팅이다. 이 복고적 후일담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젊은 관객은 물론 여성 관객도 포섭 가능하다는 거다.

<친구2>는 상업적으로 유능한 면모가 있다.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와 성인 관객 부상이라는 흥행코드를 착실하게 추종하며 향수 스민 복고적 기획을 더했다. 그로인한 반대급부를 상기하면, 현재 한국영화 트렌드의 빛과 그늘이 현현할 것이다. 감독은 세대 간 우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성훈과 준석의 관계는 ‘출생의 비밀’이란 익숙한 서사 코드로 흡수된다. 아니면 젊은 세대의 방탕한 쾌락과 위험한 혈기에 대한 기성세대의 (상실감 어린) 호기심과 거리낌을 자아내는 세대 간 간극의 상업적 도구다. 별 맥락도 없이 삽입된 화려한 클럽신과 영화 내에서 가장 잔혹하게 재현된 성훈의 양부 폭행신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른남자가 내 편 들어준 기 그때가 처음입니다”라는 대사는, 따라서 젊은 세대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아닌 가상의 안도감을 선사한다.

감독은 준석과 재회하는 옛 벗으로, 전작의 중호도 상택도 아닌, 털끝하나 등장한 바 없는 혜지를 새로 '만들어서' 출연시킨다. 제목부터 '친구'인 이 시리즈물이 얼마나 친구에 관심이 없는지 잘 보여주는 사실이다. “준석아~”라고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우정의 환청이 대미를 장식할 때면, 어린이들의 친구 영구처럼 불쑥 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친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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