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0일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방안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그동안 인터넷 상 ‘악플’과 연예인들의 자살 등을 강조하며 명예훼손 당사자에 대한 권리만을 강조했던 정부부처가 ‘정보게시자들의 권리’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2MB에 대한 언어순화’, ‘조중동불매운동 게시물에 대한 삭제’,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의 쓰레기시멘트 관련 글 삭제’ 등으로 검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임시조치(블라인드·삭제)’ 제도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주성영 전 한나라당 의원, 어청수 전 경찰청장 등 고위공직자들에 의해서 악용되는 보호장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방통위는 지난 4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통신심의 축소’와 ‘임시조치 제도 개선’을 밝혀, 시민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했다. 때문에 이날 토론회에서 어떤 안이 나올 지 주목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결론적으로 임시조치제도에 대해 ‘이의제기권’ 보장과 ‘분쟁조정위원회’의 강화라는 현행 제도에 대한 보완의 측면이 강했다. 특히, 임시조치된 게시글에 대해서는 분쟁조정위 결정이전까지 차단하는 형태로 제안돼, 현행보다 후퇴한 측면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11월 20일 오후3시 '인터넷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방안 전문가 토론회'가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양재동에 위치한 엘타워 5층 메리골드홀에서 진행됐다. 토론자로 나온 NHN 정민하 정책협력실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미디어스
임시조치제도 ‘이의제기권’ 도입…문제는?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법제도 개선방안’으로 임시조치제도와 관련해 △정보게재자의 이의제기권 신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내용 판단 여지 최소화를 제안했다. 또한 ‘임의적’ 임시조치에 대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감면을 통한 자율심의 활성화를 내놨다.

명예훼손분쟁조정제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분쟁조정부를 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로 확대·기능 강화, △분쟁조정 기간 단축, △분쟁조정 효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불법정보 유통 금지에 대해서는 ‘제한적 시행’과 ‘자연스럽게 축소된다는 전제하에 현행유지’라는 방안을 동시에 제안했다.

최경진 교수의 임시조치에 대한 구체적 개선 방안은 다음과 같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권리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침해사실을 소명해 해당 정보의 삭제 요청이 있을 시에는 임시조치한다. 물론, 임시조치에 대해 정보 게시자에게 공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경진 교수는 정보게재자로 하여금 임시조치 기간(30일)안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의제기가 있는 경우에는 ‘분쟁조정위원회에 사건 송부’토록 했다. 만일 해당 기간 동안 이의제기가 없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포털 등)는 임시조치 기간 만료 후 60일이 지나 해당 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해당 안에서 최경진 교수는 “임시조치의 기간은 원칙적으로 30일”이라며 “하지만 이의제기로 인해 분쟁조정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분쟁조정절차가 종료하는 날까지 임시조치 기간을 연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분쟁조정기간 해당 게시글을 열어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최경진 교수는 “인터넷 상 권리침해는 심각해 빨리 조치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게 임시조치제도”라며 “그렇기 때문에 일단 분쟁조정에 따라 효력이 상실될 때까지는 임시조치(차단)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경진 교수의 발제는 현행 보호조치보다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안으로 볼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임시조치’ 30일 이내 복원할 수 있다

현재 포털 네이버의 경우, ‘임시조치’ 이후 정부 제공자의 재게 시 요청이 있을 때에는 ‘요건이 타당한 경우’ 블라인드 처리된 글을 곧바로 복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음은 대체적으로 임시조치 30일 경과 후 복원해온 편이다. 그렇지만 ‘임시조치 기간(30일) 이내 방통심의위 또는 회사 결정이 있으면 그에 따른다’는 문구를 넣어 30일 이내 복원 가능성을 열어뒀다. 때문에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임시조치 이후의 절차 규정이 없다는 점을 불만으로 꼽아왔던 측면이 컸다.

▲ 네이버 '이용약관' 중 임시조치에 대한 부분 캡처
▲ 다음 '이용약관' 중 임시조치에 대한 부분 캡처
이날 최경진 교수의 발제는 ‘인터넷 권리증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의신청이 있을 때에도 ‘분쟁조정위’ 결정까지 해당 게시글을 임시조치(차단) 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토론자로 나선 다음커뮤니케이션 정혜승 실장은 “임시조치를 30일 동안 하다 보니 (기간이) 과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기본적으로 블라인드 했다가 재게 시 요청이 있다면 글을 다시 복원한 상태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조정위원회로 가는 게 맞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 실장은 이어, “2002년 헌법재판소의 불온통신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부득이한 경우 국가는 표현규제의 과잉보다는 오히려 규제의 부족을 선택해야한다’는 선언했다. 10여 년 전 그 결정을 지금 잘 판단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임시조치’에 대해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던 진보넷·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는 임시조치 30일이라는 기간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30일이 지난 뒤 글이 복원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게시물의 효력이 소멸된다는 점에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최경진 교수의 발제대로 된다면 ‘임시조치’ 제도는 오히려 후퇴됐다고 보는 편이 옳다.

또한 시민사회는 ‘임시조치’ 제도 자체가 정부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되고 있어, 표현의 자유 억압을 목적으로 하는 임시조치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날 발제자인 최경진 교수는 임시조치 남용에 대한 개선책 보다, 남용의 가능성을 더욱 열어준 안을 제시한 셈이다.

오히려 토론자로 나선 장용근 홍익대 법학과 교수가 ‘임시조치’에 대해 “정치인이나 이건희 회장 등 대기업의 이의신청은 받아주지 말자”며 “그들에 대한 비판은 차후 사법적 책임으로 결론나기 전까지 표현의 자유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어, “다만 연예인이나 일반인들에 대한 프라이버시 임시조치는 유지되는 등 (적용) 기준이 필요한 것 같다”고 제안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 중 또 하나의 후퇴”

이날 발제와 관련해 진보넷 장여경 활동가는 “최경진 교수의 발제대로 분쟁조정위의 결론이 나기 전까지 해당 글을 차단한다는 것은 현행보다 후퇴된 게 맞다”며 “기본적으로 분쟁조정으로 가게 되면 해당 글 게시자와 임시조치 신청자의 의견을 모두 들어야 하는 절차 등에 따라 30일 이상의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통신심의 축소와 임시조치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는 ‘30일’이라는 기간이 길다는 의미였다”며 “이 같은 안은 오히려 기초연금처럼 박 대통령 공약 가운데, 또 하나의 후퇴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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