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누가 내준 거라고?" 1초 만에 매직아이의 답을 읽어낸다는 쓰레기가 -아마도 고백이 담겨있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읽어내고 보낸 이의 이름을 재확인하는 순간 그 다음은 없었다. 그는 투박하게 모자를 집어 들고 나정을 떠났으며 연이어 들어오는 해태와 방문자에게 빙그레의 안부를 묻는다.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가 담배를 찾는 쓰레기를 보며 그의 타들어가는 속을 미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다음은 없었다. 여느 드라마였더라면 담배를 비스듬히 물고 윤진이 터뜨린 폭탄선언을 되새겨보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였으리라.
하지만 제작진은 쓰레기의 감정에 시청자가 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청자가 사고할 틈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쓰레기의 심리에 의문을 갖고 다가서려는 순간 턴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급기야 담배를 찾던 쓰레기의 행방이 비에 젖은 빙그레 앞에 나타나 그 다음의 이야기를 그의 고민으로 잔뜩 채웠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거 고의로 이러는 거구나. 이쯤 되면 실수나 미숙한 편집 탓이 아니다. 제작진은 분명히 일부러 쓰레기의 심리에 다가서려는 시청자를 막아서고 있다.
바로 일주일 전에 폭탄을 투하했던 제작진이다. "오빠, 나정이 마음 좀 알아주면 안 된대요?" 술버릇은 욕구 표출의 반영이다. 침묵하던 소녀가 술주정을 빌려 나정의 비밀을 폭로했지만, 제작진은 이 다음의 과정을 애써 드러내지 않았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우울한 칠봉이와 심각한 쓰레기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나정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식구들의 모습이 교차됐을 것이다. 하지만 별안간 시간은 워프했고 드물지 않았던 모든 식구의 한자리를 이날따라 뭉텅이로 나누어 보여주던 제작진 덕분에 그날의 사건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소멸하여 버렸다.
이후 쓰레기와 나정이 붙는 씬은 숨이 막힐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이 다친나? 쌍둥이 슈퍼 앞이라고? 오빠 지금 바로 갈게." 비에 젖어 엄마를 찾던 나정인 그의 먹먹한 목소리에 굳어버린다. 그리고 그가 도착하는 순간까지 가슴을 팔락거리며 속옷의 실루엣을 감추려 애썼다. 히스테릭해진 나정의 태도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정은 윤진의 폭탄선언을 알고 있는 것인가? 드러나지 않은 그날 이후의 전개가 남아있겠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히스테릭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 굳이 나정의 엄마는 그를 '우리 아들'이라 불렀다. 마치 두 사람의 관계를 일깨워주듯. 그것은 결국 암묵적으로 가족임을 강조당한 것이다. 그 사이에 나정은 옷에 묻은 국물을 털어주는 것조차 의식하는 타인으로 성장해있었다. 비에 젖은 옷을 애써 끌어당기며 부끄러운 곳을 감추려 하는 스무 살의 나정이와 마치 선고처럼 떠 있는 간판의 이름을 그는 올려다본다. '쌍둥이슈퍼' 언젠가 그는 말했다. 가족이다, 가족. 우리는 마치 쌍둥이 같지 않느냐고.
이날 쓰레기는 두 번의 마중을 나섰다. 한번은 나정이었고 한번은 빙그레였다. 허물없이 다정한 쓰레기의 태도를 보면 돌이켜 묻게 된다. 도대체 그에게 빙그레와 나정의 차이점은 무언가 하고. 다르다. 빙그레가 아닌 그 누구라도 고작 오므라이스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에 쓰레기를 침울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내 녀석이 보낸 메시지에 담배를 찾고 그답지 않게 비에 젖어 소주를 마시게 하는 사람. 멋도 맛도 모르는 금수라 불릴 만큼 무감동한 그를, 모자까지 쓰며 감춰야할 감정에 휘몰아치게 하는 사람. 그것은 오직 성나정 한 사람뿐이다. "오빠한테 니 말고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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