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의 아홉 번째 추억놀이는 매직아이였다.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 말 그대로 마술 눈을 가져야 마술의 그림을 볼 수 있었던 책, 매직아이. 그땐 그랬다. 밤낮 들여다보면서 기필코 숨은 글자 혹은 숨은 그림을 찾겠노라 눈을 부릅뜨곤 했었다. 내기를 걸어 남들보다 잘 찾아내는 것을 자랑한 적도 있었고, 잘 찾지 못하는 이들을 놀려댄 적도 있었다. 성나정(고아라 분)과 칠봉이(유연석 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체를 구분하는 원근과 양안시차를 이용해 물체 속에 숨겨진 미세한 거리나 입체감의 차이를 감지하는 원리. 여기에 좌우 눈에 입력된 영상에 적당한 어긋남을 주게 되면 효과가 나타난다는 이치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런 명확한 설명을 알 필요도 없었다. 1994년에 우리는 매직아이에 숨겨진 수많은 그림들을 찾고 싶었고, 그저 그것으로 신기해하고 즐거워하고만 싶었다.

나정은 매직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매직아이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칠봉이, 해태, 삼천포 모두 낙타를 찾고, 미키마우스를 찾고, ‘어흥’하며 발톱을 드러낸 호랑이까지 찾아냈지만, 똑같이 매직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나정의 눈에는 어른거리게 만드는 패턴만 들어올 뿐이다.

‘그냥 포기해. 매직아이는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여’ 끼니를 건너뛰면서까지 매직아이와 씨름을 하고 있는 나정을 보며 칠봉이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정은 포기할 수 없다. 오기며 고집이다. ‘알거든! 볼 수 있거든!’ 그러고는 다시 두 눈을 비비고 부릅뜨며 매직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보자마자 척척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칠봉이를 부러워해가면서 말이다.

고집을 피우는 나정이 곁에 있었던 덕분에, 칠봉이는 나정과 단 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나정의 팔과 자신의 팔이 포개어지는 설렘을 경험할 수 있었으며, 10만 원빵 내기를 걸어 어쩌면 공돈이 생길 수도 있었다. 칠봉이는 나정에게 매직아이에서 가장 쉬운 그림이라는 페이지를 들이밀며 3일의 시간을 준다.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말고 혼자서 매직아이 속 진짜 그림을 찾아내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면서…

3일의 시간이 나정에게는 짧았고, 칠봉이에게는 길었다. 나정은 3일 동안 매직아이를 끼고 살았지만, 결국 숨은 그림을 찾아내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쓰레기(정우 분)가 그 숨은 그림을 찾아내고는, 이 문제를 누가 내줬냐고 나정에게 물었다. 칠봉은 조바심이 났다. 나정이가 찾았으면 어떻게 하지 싶었고, 또 찾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싶었다. 나정이가 내건 10만 원빵에는 칠봉이의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3일이 지난 후, 결국 나정은 칠봉이에게 정답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10만 원빵 내기에 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전화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칠봉이의 목소리는 기분이 영 언짢다. ‘봉아! 근데 이거 매직아이 맞긴 맞제.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제?’ 나정이의 질문에 칠봉이는 대뜸 ‘지랄!’하면서 맞받아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서운하다는 말투다.

‘딴 사람한테 보여주면 되잖아!’ 칠봉이의 마음이 그랬다. 정말로 딴 사람한테 보여줘서라도 나정이가 그 답을 알아주길 바랐다. 정답이 뭐냐는 나정이의 마지막 물음에 칠봉이는 짧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몰라! 니가 직접 봐!’ 칠봉이는 끝까지 정답을 말해주지 않았다. 매직아이 속에 숨겨져 있는 튤립하트를. 그 숨은 그림에 담겨져 있는 나정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칠봉이의 사랑은 그렇게 수줍었다. 그리고 비밀스러웠다.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없는,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누구에게는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어야 그제서야 보이는 매직아이처럼 말이다. 나정에게 10만 원빵 매직아이는 그저 정답을 찾겠노라 부리던 고집과 오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칠봉에게 그것은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 정도로 설렜던 진심 어린 사랑고백이었다.

그렇다면 ‘응답하라 1994’는 칠봉이의 사랑을 왜 매직아이에 빗대었을까? 본의 아니게 꽁꽁 숨겨야만 하는 사랑이어서 그랬을까? 끝내 나정이는 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그랬을까? 나정이 외에 다른 사람, 특히 쓰레기에게만은 보이는 사랑이어서 그랬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가 그리는 사랑은 짝사랑일 것이며, 드라마 속에서 가장 아련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만약에 그때 매직아이의 원리를 알았다면, 매직아이의 즐거움은 우리에게서 저만치 달아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칠봉이의 사랑도 그러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감정의 면면들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이렇게 해서 저렇게 사랑이 시작된 것임을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도 칠봉이의 사랑에서 빛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칠봉이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르게 가리워지고, 희미하게 숨겨져서가 아닐까? 나정이의 매직아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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