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1호 다문화의원이라 불리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의 ‘필리핀 지원 결의안’이 화제다. 누리꾼들은 이미 긴급구호물자와 함께 5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보냈고, 필리핀의 구호 감사 포스터에 태극기가 빠진 마당에 이자스민 의원의 주장이 과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비록 일각이라고는 하나 이러한 견해의 표출은 지나치게 편협하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부터 시작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이는 물론 한국 국민들의 피땀어린 노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암울했던 시기 세계 각국에서 보내준 원조의 역할도 있었다. ‘원조로 성장한 나라’가 치명적 자연재해를 당한 다른 나라에 대한 지원에 대한 씀씀이를 아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필리핀은 어려운 시절 한국을 지원했던 원조국 중 하나다. 필리핀은 1950년 한국전쟁에 7,420명의 군을 파병했다. 전사자는 116명이었다. 경기도 연천지역에는 필리핀군 1개 대대가 중공군 3개 대대를 격퇴한 위치에 참전 기념비도 서 있다. 필리핀군 중 일부는 휴전 후에도 다리를 건설하는 등 폐허가 된 마을의 재건을 도왔으며 1970년대까지 한국에 원조를 했다.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것은 루머라지만 역사적 관계로 볼 때 한국이 도움을 마다할 나라가 아니었다.
▲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의 모습 (연합뉴스 DB)
만일 이자스민 의원이 새누리당이 아닌 민주당이었더라도 인터넷에서 이러한 비판이 나왔을까. 새누리당이 ‘국내1호 다문화의원’을 선점한 것은 민주당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작년 총선 이자스민 의원의 공천 이후 민주당 지지자 일각에서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혹자는 다문화주의나 한미FTA나 외세에 나라를 팔아먹는 다는 점에선 똑같은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의 개혁세력 지지자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사회문제에 대한 이해가 편협한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투박하게 말하면 한국 사회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를 고용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외국인 남성의 노동이주다. 또 농촌 사회의 나이든 총각들이 결혼할 전망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외국인 여성의 결혼이주다.
이 현상들의 기저에는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상승, 낮은 최저임금 및 그것조차도 안 지켜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 농업정책 및 지역균형정책의 실패 등의 한국 사회 고유의 문제들이 깔려 있다.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보수적인 국가가 나서서 고용이주와 결혼이주를 장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것들을 정부의 음모로 치부하고,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게 한국 사회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상당수조차 그런 편견에 포섭되어 있음을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여성이고, 최초의 결혼이주 여성 국회의원이 새누리당이란 이유로 반여성적 언사를 늘어놓는 것을 개혁이라 착각할 셈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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