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가 분한 홍혜성은 결국 노수동(노주현 분)네 잃어버린 아들이었다. 이렇게 최근의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들여다보면 이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사정이 간단치만은 않다.

노수동의 큰 아들 노민혁은 하~버드 사진으로 사무실을 도배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주)콩콩의 새 대표이사였다. 하지만 그는 야심차게 회사를 개혁하려던 차에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초딩 수준의 정신 연령에 정체되어 있다. 바로 그 시점에 오이사가 잃어버린 둘째 아들을 찾아냈단다. 바로 홍혜성이다.

그렇다. 홍혜성은 바로 자신의 비리가 담겨있는 USB를 찾고자 오이사가 들여보낸 스파이다. 지난번에 도우미를 들여보냈다가 실패한 오이사는 이번에는 보육원 출신의 혜성을 유전자 검사까지 조작하며 이 집에 들여보낸다. 결국 홍혜성이 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은 지속적으로 비리를 저지르며 회사를 말아먹고 있는 오이사를 돕는 일. 즉 노수동네 집을 망하게 하는 일이다.

물론 <감자별>에서 홍혜성은 이 집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가족이 혜성을 준혁이라 한 치의 의심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데 반해, 엄마만이 유일하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역시 유전자 검사를 조작했다면서도 복잡한 오이사의 표정을 보면, 반전이 있을 여지를 남긴다. 아니, 시청자들은 저절로 진짜 친아들 아냐를 연상케 된다.

진짜 아들 여부와 상관없이, <감자별>에서 여진구가 분한 홍혜성 에피소드의 얼개는 고스란히 영화 <화이>의 그것을 닮았다. 범죄자인 다섯 아버지에 의해 폭력과 살인 기계로 길러진 화이와 비리의 주범 오이사의 끄나풀이 된 홍혜성. 다섯 아버지가 화이에게 시킨 첫 번째 살인이 바로 화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이는 것, 그리고 <감자별>에서 혜성이 해야 할 임무는 오이사의 비리를 담은 USB를 찾는 것. 그것은 곧 대표이사의 기억 상실로 무주공산이 된 (주)콩콩을 오이사가 집어 삼키는 데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영화 <화이>가 다섯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 세대로부터 받은 정신적 육체적 폭력으로 인해 괴물이 되는 것으로 자신을 구원(?)했고 그 구원의 길을 다시 화이에게 고스란히 전수하고자 했다면, 시트콤 <감자별>은 그것이 경제적인 권력의 시점으로 옮겨온다.

회사를 가진 자와 회사를 가지려 하는 자. 이미 진행된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노수동이 이루어 놓은 (주)콩콩은 나진아 아버지의 아이디어로 히트를 쳐서, 노수동의 처 왕유정의 부동산 재테크로 몸집을 불린 기업이다. 노수동은 말끝마다 공치사를 하지만, 기업의 성장에 그의 역할은 미미해 보인다. 그러니 창업시기부터 공신이었던 오이사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의 지분을 요구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더구나 노수동의 아들 노민혁이 리노베이션을 외치며 오이사 등을 과거의 인물로 치부할 때 오이사의 도발은 더더욱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아직 친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되찾은 아들 하지만 스파이인 홍혜성의 존재가 필요해진다. <감자별>에서 오이사의 하수인으로 USB를 찾으라는 추궁을 받고, 틈만 나면 집안 곳곳을 뒤지며 노수동네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복잡해지는 홍혜성의 표정은 영화<화이>에서 마주쳤던 소년 화이의 그것과 닮았다.

이렇게 <감자별>은 시트콤의 가장 큰 장기인 현실에 익숙한 그 무엇을 뒤틀어 냄으로써 빚어지는 불협화음에 충실하다. 영화 <화이>에서 두 시간 여에 걸쳐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던 '살부' 스토리는 그 배경이 (주)콩콩이라는 회사와 노수동 전 대표이사의 집이 되면서, 보다 복잡해지고 상징성조차 교묘해졌다.

오이사 역시 나쁜 놈이지만, 그의 '나쁜 놈'은 영화 <화이>의 다섯 아버지들이 가진 장엄한 상징성과는 류가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품고 있는 구조적 관계의 상징성은 그것이 정치적 함의이건 경제적 함의이건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자아내게 만들고, <감자별>판 <화이>가 억지 같아 보이지 않는다. 외려, 친부를 살해하게 된 화이의 피의 숙청, 즉 또 다른 '살부' 스토리가 시트콤 <감자별>에서는 어떻게 변주되어갈지 궁금해진다.

여진구가 분한 홍혜성의 캐릭터가 시트콤<감자별>의 기본적 동인으로 묵직하게 드라마를 끌고 간다면, 여타 인물들의 전형성 뒤틀기는 시트콤으로서의 <감자별>을 화려하게 치장한다. 대표적으로는 11월 12일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노수동의 캐릭터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노수동으로 분한 노주현은 잘 생기고 중후한 마스크로 인해 젊은 시절 오랫동안 멜로드라마의 멋진 남자 주인공 역할만 맡아왔었다. <감자별>은 그렇게 마스크에서 풍기는 중후한 이미지 이면에 노수동이 지니는 찌찔하고 쪼잔한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시트콤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노수동 외에 장기하가 분하고 있는 장율 캐릭터가 비슷한 케이스이다.

주연 배우의 부상으로 인한 방송의 공백, 그리고 분명한 캐릭터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때로는 그것들이 한 음정 높게 혹은 한 음정 낮게 조율되어, 말 그대로 불협화음처럼 느껴지던 <감자별>이 마치 현대 음악처럼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첫 회부터 케이블의 특성을 살린다며 '똥'만 외쳐대던 생경함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날선 비난은 있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던 스토리도 홍혜성의 귀환(?)으로 재미를 얹어간다.

김병욱은 늘 시트콤을 만들지만 그의 장기는 '드라마'인 듯하다. 드라마적 재미가 드러나면서 그의 생뚱맞은 뒤틀기도 안정감을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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