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저는 KT를 사랑합니다”

KT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산다>(감독 김미례)에서 육춘임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해당 다큐의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KT를 사랑하노라고. 육 씨는 KT 인력퇴출프로그램(CP) 대상자로 분류돼 50세의 나이에 전봇대에 오르는 업무를 배당 받았던 직원이다. 그는 “하루에 7~8번 전주에 오르다보면 쥐가 난다. 그때마다 옷핀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 손으로 허벅지를 찔렀다. 살기위해서”라고 이야기했다. 다큐 <산다> 속 KT 노동자들은 그렇게 2013년을 살아가는 중이다.

▲ 다큐멘터리 '산다' 스틸컷

8일 오후7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다큐멘터리 <산다> 국회상영회가 열렸다. 다큐 <산다>는 KT 이해관 새노조위원장을 비롯해 장교순, 손일곤, 서기봉 씨 등 이른바 회사에 “쓴 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CP대상자로 분류, 비연고지·원거리 발령받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산다>에서 ‘원거리 발령’의 고통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 ‘손일곤’ 씨의 사연이다. 손 씨는 서울을 생활권으로 두고 있었지만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전남 고흥으로 발령받았다.

고흥에 있는 손일곤 씨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 벌써 3년째다. 매우 익숙해진 모습이다. 다큐에서 손 씨가 주말에 서울에 올라와 어머니와 아들·딸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고 게임을 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주말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고흥으로 내려가는 손 씨의 모습은 담담해 보이지만 그 속에 쓸쓸함이 녹아있다.

손일곤 씨는 국회 상영회에서 “서울에서 0시 40분에 순천으로 가는 막차를 타고 가면 새벽4시에 도착한다”며 “그러면 5시까지 PC방에서 천원을 내고 누워 있다가 동네사람들만 아는 버스를 타고 일을 하러 간다. 그때 동쪽에서 해가 밝아오는 걸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손일곤 씨는 “친구들은 근처 ‘강진’으로 유배 갔던 정약용은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면서 고흥에서 많이 배워오라고 이야기를 한다”며 “그런데 친구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귀향을 가는 사람들은 유배지까지 가기 전에 많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또, 유배지까지 도착하더라도 오래 못산다. 김만중은 유배지에서 2~3년 만에 풍토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게 힘들다”고 한탄했다. 그는 고흥에서 일하면서도 “누구하나 먼저 회식을 하자는 이가 없다. 혼자 소주를 안 마실 수 없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큐 <산다> 속 KT 노동자들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스텝을 밟는 장교순 씨와 노화도에서 생활하는 서기봉 씨 그리고 그 밖의 KT 사람들….

그럼에도 <산다>는 ‘극도’의 우울함은 피해간다. KT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국회 상영회에서 “영화가 현실보다 덜 잔인하다”고 말한다.

▲ '산다' 국회상영회. 민주당 은수미 의원(맨 왼쪽)과 손일곤 씨(왼쪽에서 두번째)와 이해관 위원장(맨 오른쪽) ⓒ미디어스

이해관 위원장은 “올해만 KT 노동자 21명이 돌아가셨다. 그 중 자살자만 8명이다”라며 “김옥희 씨는 중증 당뇨병 환자인데 약도 처방받을 없는 울릉도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위원장은 “또, 난청환자를 콜센터로 발령 내는 곳 그게 바로 KT의 현실이다”라고 개탄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아무리 잘못된 것을 고발해도 아무 것도 고쳐지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이해관 위원장의 한마디이다.

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KT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밝혔다. 은 의원은 “KT에서 정리해고 수가 10년 동안 2만 6,500명”이라며 “다큐에서도 나오지만 KT의 배당률은 50%로, 이는 1년에 버는 돈 반은 무조건 주주들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 외국인이 60%”라고 말했다. 이어, 은 의원은 “KT는 그러면서 정규직들 상당부분을 반복적으로 ‘부당 학대·해고 프로그램’으로 정리해고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자회사, 아웃소싱으로 채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KT는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도 모두 들들들들 볶아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큐 <산다>의 강점이라면 ‘무리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그저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KT 노동자들을 조용히 따라다닌다. KT 내 소수이지만 여전히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 KT에서 왕따로 통하지만 “왕따를 시키는 노동자들도 괴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KT 맨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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