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잠시 꺼진 청계광장에서는

청계천 앞 소라광장의 촛불은 초라했다. 아니, 그동안 시청을 밝히던 촛불에 비해 초라했을 뿐이다. 우리가 청계광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촛불 집회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일본의 교과서 참고서에 독도가 자국영토라는 것이 실린 사실이 발표된 직후라 일부 시민들은 촛불 집회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가기 위해 자리를 뜨고 있었다.

조중동과 경찰은 말한다. 촛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만 남았을 뿐이라고. 그러나 우리가 본 것은 달랐다. 비록 많은 촛불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촛불집회가 끝난 자리에는 상처가 아닌, 시민들의 이야기꽃이 피고 있었다. 대안 미디어 캠프 소속 대학생 기자들은 여기저기서 귀동냥을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촛불과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정당한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광우병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시민사회에 대한 고민들, 오늘 일어난 일본의 망발과 그 앞으로 몰려가는 촛불들이 정당한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민들은 흥분하기도 하고, 그 흥분한 소리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 ⓒ송선영
지난 5월 7일부터 시작된 촛불은 두 달 가량 이어져 왔다.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는 2008년 초여름 대한민국의 트렌드였다.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들의 물대포 세례와 현 정권의 협박에도 ‘참된 민주주주의’를 찾기 위해 시민들은 꿋꿋이 버텨왔다. 몇몇 대규모 집회를 기점으로 촛불들이 약간 시들어가자 주춤했던 정권과 보수 언론들은 이때다 싶어 촛불에 맹공을 퍼부었다. 시민들도 갸우뚱 하기 시작했다. 두 달 가량 이어져 온 촛불집회가 무엇을 바꾸고 남겼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더 이상 무리라고 말하고, 몇몇은 우리가 선택한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히 촛불집회가 남긴 것은 있었다. 우리 대학생 미디어 캠프 소속 학생 기자단이 꺼져가는 촛불의 잔해 속에서 발견한 촛불의 변화는, 바로 저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피우는 시민들의 ‘이야기꽃’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하다

몇 년 전만해도 저렇게 길거리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큰 소리로 토론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설사 있더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라는 연대감 속에 모여든 촛불은, 그 속에서 촛불보다 더 환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청계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청계광장에서 토론을 하던 나이 지긋한 한 시민은 우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광장에서 토론을 마음껏 하는 것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정말 큰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무엇이 이렇게 광장에서의 토론을 꽃피게 한 것일까? 조중동의 말처럼 촛불과 일부편향언론이 시민들을 ‘꼴까닥’시켜서? 아니다. 우리의 대학 수업 모습을 떠올려보건대 발표에 쭈뼛거리고 토론 문화에 익숙지 않은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우리의 ‘훌륭한’ 사회관습은 자기의견의 표출보다 집단의 ‘건강한’ 대표 의견을 묵묵히 따라 가는 것을 미덕으로 쳤다. 이런 답답한 대한민국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인간 특유의 ‘말하고 싶은 본능’에 있다. 자기에 이야기를 남에게 맘껏 하는 것.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지칭하는 가장 큰 근거 중 하나인 말하기는 지극히 매력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본능이 촛불의 광장에서 터진 것이다.

대안미디어, 우리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다.

'대안 미디어'라고 들어보셨는지? 일반 사람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이 용어는 '대항 미디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기존의 언론들이 말해주지 않는 사회 각 계 각 층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도해주는 언론이라고 보면 된다. 조중동이 일부 기득권 권력층의 의견을 마치 모두의 의견인양 내보낸다면, 이 '대안 미디어'는 사회적 약자계층의 이야기, 미디어에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진정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실릴 수 있는 사회 소통구조에 대해서 고민한다.

최근 촛불 집회에서 생중계를 하고 다양한 공공적 플랫폼을 열어 자유로운 시민의 토론이 이루어지게끔 하고 있는 언론들이 바로 이 대안미디어의 일부이다. 대안 미디어는 지면매체에만 집중되지 않고 인터넷 등의 자유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

생각해보시라. 우리가 촛불집회 생중계 방송이나 라디오, 혹은 상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다음 아고라 같은 게시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촛불과 같이 활활 타올랐을까?

대안 미디어, I'M A MEDIA를 꿈꾸는 대학생들의 모임, 대학생 대안 미디어 캠프

이렇게 대안미디어와 현 언론의 소통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들의 캠프가 대학생 대안 미디어 캠프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대안 미디어에 관심 있는 몇몇 학생들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된 대안 미디어 학회 청개구리는 지난 7월 14일부터 17일까지 이러한 대학생 대안 미디어 캠프를 3회 째 진행했다.

대학생들은 이 캠프에 모여 미디어와 사람, 그 소통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대안미디어의 현장으로 가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이 모인 까닭은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보고 싶어서이다. 이번 제3회 캠프에 참가한 대학생들의 포부는 다양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수 매니아 층의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국을 꿈꾸는 학생, 사회적 약자 계층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학생, 평소에 조중동과 일부 보수 언론들의 행태에 골이 나서 온 학생까지.

대안 미디어를 전혀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참가하게 된 한 학생은 대안미디어, 자기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미디어에 푹 빠져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송인 RTV나 관악FM을 일부러 찾아보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미디어 캠프는 대학생들의 캠프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 방법을 배우는 하나의 미디어가 되었다.

"I'M A MEDIA." 제3회 대안 미디어 캠프의 슬로건인 저 문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진정으로 자기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언론, 사회, 더 나아가서는 슬로건처럼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어 맘껏 소리 지르는 것. 이것이 촛불과 대학생 대안 미디어 캠프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대학생 대안 미디어 캠프. 토플과 취직에 찌든 대학 사회에서 발견한, 작지만 밝은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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