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특정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가운데 조간신문들의 대응은 엇갈렸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정부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헌법재판소에게 해산심판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법무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헌법재판소에게 현명한 판단을 요구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는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었으나 그 결은 미묘하게 달랐다.

<조선일보>는 사설 <통진당 해산 심판 통해 '헌법 보호 정당' 기준 분명히 해야>에서 “통진당은 이런 북한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을 무력 폭동으로 쓰러뜨리고 북한식 체제를 만들려 하고 있다. 통진당은 '진보 정당'임을 내세워 왔지만 사실은 북한 노동당의 대남 적화(赤化) 전략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위장(僞裝) 정당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헌법재판소는 이번 통진당 위헌 심판을 통해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 헌법 질서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라며 헌재에게 특정한 판단을 촉구했다.
<동아일보> 역시 <통진당 해산 심판 맡은 헌재의 역사적 책무 무겁다>에서 “통진당 내에는 민주적 진보 세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통진당은 부정 경선을 폭로하고 비판한 세력과 갈라서는 과정에서 당 스스로 부정 경선을 막을 의지가 없는 정당임을 드러냈다. 이석기 의원의 RO(혁명 조직)는 일당(一黨) 일인(一人) 독재국가인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여기에 가담해 우리나라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짰다. 이 정도면 통진당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 놓아둘지, 축출할지를 심판해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문제까지 통진당을 위헌정당으로 볼 수 있는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2면 기사의 제목으로 <헌법학자들 “當 강령·從北행태 위헌성 충분”>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기사를 읽어보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어 있다는 점에서 기사 편집이 사람들의 인식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를 지녔다는 추정이 가능한 상황이다.
▲ 6일자 조선일보 2면 기사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한겨레>는 사설 <진보당 해산 시도, 절차·근거 무시한 권력의 폭력>에서 “민주주의에서 정당 활동의 자유야말로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에 해당한다.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며, 정당 존립 여부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표로 결정한다. 정부가 편향된 시각에 함몰돼 특정 정당을 해산하겠다고 덤비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선택권 등 헌법에 보장된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권력 남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 <정당의 존폐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결정해야>에서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존립 여부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정도이다. 정권이 자의적으로 특정 정당을 해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활동의 자유를 부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행태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며 철회돼야 한다”라며 대동소이한 현실인식을 보였다.
두 신문의 사설의 나머지 내용은 법무부의 논리의 부적절함을 적절하게 질타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에게 정권의 전횡을 방지하는 현명한 판결을 요구한 것 역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정당의 존폐는 정권의 권리가 아닌 국민의 권리’라는 논법은 다소 엄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6일자 한겨레 사설
정당의 존폐 문제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선호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도 엄연히 헌법이 규정한 판단의 권리가 있고 정부는 헌재에게 그것을 행사해줄 것을 요구한 상황이다. 정부가 작정하고 통진당을 없애려고 하는 상황 자체는 정치적으로 비판해야겠으나 원칙을 따지자면 법무부의 논리가 허술한 것이 문제지 정권이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일보>의 경우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주목하였다. <한국일보>는 사설 <통진당 해산 청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정당해산 등 폭력적 수단에까지 의존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에 치명적 상처를 준' 역사적 경험이나 '민주적으로' 등장한 독일의 나치 정권이 인간 존엄성과 자유ㆍ평등ㆍ정의 등 민주적 기본가치의 파괴자로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경험이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를 불렀고, 위헌정당 해산 제도도 그 중 하나다.
민주주의의 외피만 뒤집어썼을 뿐 목적과 활동 등이 민주적 기본질서 또는 체제의 교란ㆍ전복을 겨냥했다면 개인이든 단체든 그 권리를 적법절차에 따라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37조2항에서 국가안보와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일반적 기본권 제한의 근거를 명문화했고, 특별히 8조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가 그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으로 <한국일보>는 이러한 우려를 전하기도 한다.
반면 정부의 제소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일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지워지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마당에, 필연적으로 종북 및 색깔 논쟁으로 치달을 사회적 논란의 불길을 댕긴 것은 현재의 정국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이념ㆍ노선 논쟁이 한국사회에 또 하나의 단층을 만들 게 께름칙하다. 그런 논쟁을 거치며 사회가 보수우경화로 흘렀던 기억 때문에라도 그렇다.
<한국일보>는 그렇기에 “국민 모두가 정치권의 자기주장과 거리를 두고 차분한 눈길로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 주길 기대한다”라는 결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법무부의 논리가 허술하다고 보는 이들은 굳이 <한국일보>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말한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리가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이 사건을 일종의 ‘공안탄압’ 및 ‘공안정국의 조성’으로만 바라보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 6일자 한국일보 사설
이석기 의원의 ‘RO’가 내란음모죄에 해당하는지, 통진당이 해산되어야 하는 위헌정당인지에 대한 판단과는 별도로, 녹취록에 나온 그들의 행태가 반민주주의적인 것임은 분명하다는 점이 진보언론에서는 너무나도 다뤄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식의 서술이 공안당국의 프레임에 말려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진보담론이 그런 식의 논점정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RO’ 녹취록에 드러난 세계관을 그로테스크하게 여기는 이들이 쉽게 공안당국의 프레임에 말려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성찰해 보아야 한다.
한편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법학자들의 찬반양론을 소개한 다음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자고 하였다. 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은 사설과 같은 지면에 실린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 없다>는 기명칼럼에서 통진당의 이념은 ‘사상의 자유’의 시장에서 걸러져야 하며 이번 조치가 시민들에게 자기검열의 기제로 작동해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가 갈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이념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다른 길을 걷는 <중앙일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처였다.
▲ 6일자 중앙일보 30면 논설위원 권석천의 기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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