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의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다른 나라에 최루탄을 수출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시민단체들이 바레인에 최루탄 수출을 중단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전쟁없는 세상)
"제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요?"

일 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변영주 감독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김난도 교수를 강하게 비판한 말이 어느 진보 언론 인터뷰에 여과없이 실렸다. 그 기사를 본 김난도 교수는 모욕감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며 저 말을 했다. 저 문장을 트위터에서 보는 순간, 나는 당시 오고갔던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청춘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인이나 국가 행정 공무원도 아닌 김난도 교수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 학벌 서울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분이, 책만 냈다 하면 100만부를 향해 달려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시 말해 이렇게 잘못된 사회 권력의 꼭대기에 속해 있는 사람이, 과연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개인이 하지 않은 일, 그렇지만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책임에 대해 김난도 교수와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다. 내가 서경식의 책을 처음 본 건 병역거부를 하고 수원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다. 그때까지 조작간첩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서승․서준식 형제의 동생이라는 것만 알았다.

『서준식 옥중서한』을 보면 서준식 선생이 감옥 안에서 취미로 악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서준식 선생같은 장기수가 아니니 악기를 주지는 않을 테고, 그냥 방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예체능계 취미 생활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그림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준식 옥중서한』에도 자주 등장하는 서경식 교수가 쓴 미술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서경식의 책에 담긴 이미지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와는 정반대의 에너지를 가진 그의 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김난도의 말을 보면서 서경식을 떠올린 까닭은 평소 그가 '국민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감옥에서』를 보면 한 집단(국가)의 구성원(국민 혹은 비국민)으로서 집단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한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국민이 될 수 없는 재일조선인 2세로서, 비국민으로 사는 삶의 경험에서 건져 올린 사유다. 프랑스 아비뇽의 베트남 음식점에서 그가 한 생각을 살펴보면 서경식이 이야기 하는 국민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서경식은 여행 중에 "자포네(일본인이세요)?"라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상대방이 다시 "어디 사람이세요?"라고 물으면 "코레안(조선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비뇽의 조그만 베트남 음식점에서 서경식은 '만약 주인이 일본인이냐고 물으면 나는 코레안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진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던가. "코레안"이라고 대답했을 때 베트남 음식점 주인이 자기 얼굴에 물을 한 컵 끼얹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경식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에도 경중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파병을 결정했던 정치인들, 국방부의 고급 군인들, 베트남 전쟁 특수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대기업들에게 물어야 할 것은 '책임'이 아닌 '죄'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기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경식은 법적으로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에 참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반半국민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본어가 모어이다.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그는 '한국 국민'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두 형은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각각 17년, 19년 옥살이를 하지 않았던가. 재일조선인2세이자, 정치범의 동생인 서경식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책임을 질만큼 무언가 권리나 혜택을 받은 게 없다. 오히려 일본 못지않은 탄압과 차별을 대한민국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행사했다. 그렇지만 그는 베트남 사람이 자기를 향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이 벌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자기 자신도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가지고 마땅히 응답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군의 파병에 저항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지, 파병을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파병에 반대했다."라든지,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내가 여기 태어나서 그런 거고 내 의사가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라는 대답은 변명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영상 설명 : '바레인 워치'에서 만든 최루탄 피해 상황과 수출 중단 촉구 내용을 담은 영상(번역 : 전쟁없는세상 숲이아 / 자막싱크 : 구로 )

김난도와 서경식의 이야기를 길게 쓴 까닭은 최근에 바레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였다. 바레인은 월드컵 지역 예선 때나 간간히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중동에 있는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에 바레인 대사관이 없을 정도로 우리와는 교류가 많지 않은 나라다.

그 나라에서 지금 최루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바레인 보안군이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쏘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시위 진압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심지어 주거지역에도 무차별적으로 쏘고 있다. 2011년 이후에 죽은 사람 숫자만도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람만 39명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거라 추측되고 있다. 바레인 인권단체인 '바레인 워치'에 따르면 2011년 이후로 바레인 보안군이 사용하는 최루탄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곳이 바로 한국 기업인 (주)대광화공과 (주)CNO Tech다. 이 두 기업은 2011년부터 2012년 사이에 150만 발의 최루탄을 수출했다고 한다. 바레인에서 최루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는 게 알려지자 바레인에 최루탄을 수출하던 많은 나라들은 수출을 중단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직 바레인에 최루탄 수출을 금지하지 않고 있으며, 바레인 정부는 조만간 160만발을 추가로 수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루탄 수출을 최종으로 허가하는 책임은 경찰청과 방위사업청에 있다. 우리는 최루탄 수출을 허가한 경찰철 담당자도 아니고, 방위사업청 고위 간부도 아니다. 바레인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쏜 바레인 보안군은 더더욱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바레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아니, 책임이 없어도 될까? 재일조선인 서경식이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일본인 개인들에게 '일본인으로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역설하는 것은, 최루탄 수출을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착한 개인으로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서경식의 책에는 서경식과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였던 이탈리아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언어의 감옥에서』에도 프리모 레비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위험하지도 않았던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우리가 더 이상 바레인 사라들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최루탄 추가 수출을 막아야 한다. 수출 허가 권한이 있는 경찰청과 방위사업청이 (주)대광화공과 (주)CNO Tech의 최루탄 수출을 허가 하지 않도록 하는 일.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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