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제(지창욱 분)를 고려에 유배 보낸 후 고려 땅에서 암살을 당하게 만들어, 그것을 빌미로 완전하게 억압하려는 원나라의 음모를 고려 왕 왕유(주진모 분)는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왕유는 황태제의 안위를 살펴보기 위해 그가 머물러 있다는 곳에 한걸음에 달려간다. 괜한 누명을 뒤집어 써 원나라의 속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미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고, 그의 거처는 쑥대밭이 됐다. 다행히 황태제는 자신의 수하와 옷을 바꿔 입고 자리를 피해 목숨을 건졌으나, 황태제로 변장한 그의 수하는 원나라가 포섭한 약탈꾼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황태제 암살을 주도한 백안장군(김영호 분)과 그의 조카인 탈탈(진이한 분)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고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결국 탈탈은 황태제 수하의 시신을 불에 태워, 황태제의 얼굴을 알고 있는 왕유를 속이려 한다. 하지만 승냥(하지원 분)이 몰래 숨어있던 진짜 황태제를 찾아내고, 그는 왕유와 백안장군, 탈탈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이제는 더 이상 황태제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할 수도, 그 누명을 고려에 뒤집어씌울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어제 방송된 ‘기황후’ 3회는 원나라 황태제가 고려로 유배를 당하고, 그를 원나라로부터 보호하려는 고려 왕 왕유의 이야기로 그려졌다. 한 마디로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것이다. 왕유는 황태제 주변에 원나라 사람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원나라의 패권 다툼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이미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왕유는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조공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공녀까지 바쳐야 하는 나라의 황태제를 자기 손으로 지켜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약소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겪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유는 앞으로의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고자, 치욕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황태제를 자신의 뒤편에 서게 한다.

황태제 암살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백안장군과 탈탈은 원나라로 끌려 가 문초를 당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을 지시한 연철(전국환 분)의 눈빛은 더욱 살기 있게 변해간다. 그의 눈빛에서 원나라와 고려의 갈등이 얼마나 극심해질지, 그 끝에 얼마나 처절한 싸움과 비극이 일어나게 될지가 비쳐지던 순간이었다.

드라마는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를 더욱 첨예한 대립관계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 난처한 상황 속에 놓인 왕유와 황태제, 기승냥의 삼각관계는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어제는 왕유와 황태제가 서로 마주하게 된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연기한 주진모와 지창욱의 연기대결은 그야말로 압권인 듯했다.

왕유는 황태제를 불붙은 눈으로 노려본다. 차라리 이참에 고려의 이름을 원나라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황태제의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도대체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을 아느냐며 황태제의 얼굴을 향해 절규하듯 포효한다. 그동안의 치욕과 그로 인한 한 맺힘을 그대로 토해내는 울부짖음이었다.

‘내 나라 백성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네 놈의 안위를 지켜야 하는 이 참담함을 알고 있느냐!’ 왕유의 이 한 마디는 원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고려의 시대적 상황을 대변해 준 말이었으며, 고려의 왕위에 앉아있는 자의 비참한 심정을 단편적으로나마 잘 묘사한 대사였다. 그리고 거기엔 이를 뭉클하게 그려낸 주진모의 연기가 있었다.

주진모의 목소리 톤은 언제나 묵직하다. 왕이 지녀야 할 근엄함을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표현해낼 줄 아는 배우다. 지창욱의 멱살을 잡고 그에게 울분을 터트리는 장면에서는 더없이 빛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진중한 연기다. 그리 길지 않았던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한 메시지는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렬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그의 연기에 같이 호흡하는 지창욱의 연기 역시 일품이었다. 왕유의 무서운 절규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연기, 왕유가 떠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신하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황태제의 유약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장면이었으며, 순식간에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기황후’의 역사왜곡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무리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커버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기황후’의 배우들은 포기하지 않는 듯하다.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줄 알면서도, 그들의 노력은 갈수록 빛나고 있으며, 회를 거듭할수록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기황후’는 유난히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장면이 많다. 시대적 상황이 그러하고, 인물들간의 관계를 놓고 봐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배우들의 마음가짐 또한 그러한 듯싶다. 시끄러운 논란을 잠재우고자 칼을 간 연기로 고군분투하는 주진모, 지창욱, 하지원이다. 비난이 칭찬으로 뒤집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연기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대중문화에 대한 통쾌한 쓴소리, 상쾌한 단소리 http://topicasia.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