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이 위헌정당이란 결론을 내리고 5일 국무회의에서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특정정당의 해산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 죽산 조봉암의 진보당이 등록 취소되고 행정청 직권으로 강제 해산된 적은 있지만 당시엔 헌법재판소가 없었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는 심판 청구일로부터 180일 안에 결론을 내려야 하며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 정홍원 국무총리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이석기 의원을 구속한 지난 9월초 '위헌정당 단체관련 대책 특별팀'을 구성해 두 달여간 법리를 검토해 왔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5일자 10면 '법무부 '통진당 해산 심판 憲裁 청구키로 ' 제목의 기사에서 "법무부는 이석기 통진당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와 통진당의 당헌·당규 및 강령, 통진당원들의 국보법 위반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법리 검토한 결과 현행법에 정하고 있는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또 통진당의 강령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통진당의 통일 강령이 일치하는 점, 통진당이 내세운 민중민주주의 강령 등도 북한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것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했다는 ‘종합적으로 법리 검토’는 어떤 식으로든 통진당을 위헌정당으로 결론내릴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직관적인 근거들을 서너개 이어 붙여 놓고 논증을 했다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먼저 ‘이석기 통진당 의원 등의 내란 음모 혐의’를 생각해보자. 통진당의 미숙한 대응으로 보건대 공개된 녹취록이 완전한 날조는 아닌 듯하니 편의상 사실이라고 판단하자. 그렇더라도 당시의 모의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만한지에 대해선 아직 법리적 쟁점이 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전쟁 상황이 이어진다 생각했고 그 다음 정도 회합에서 파괴해야 할 시설물과 그 과업을 수행할 담당자를 특정하였다면 훨씬 더 실제적인 모의였겠지만 당시의 상황은 결의 정도를 다질 뿐이었다. 국정원이 조작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또 그들의 사상이 황당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정도의 행위를 내란음모죄로 처벌해야 하는지는 심각하게 토의해봐야 하는 문제이지 법무부가 단번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또 아직 1심재판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 ‘RO’의 행위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하더라도 ‘RO’와 통진당의 관계설정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해당 사안은 법무부가 통진당을 위헌정당으로 결론내리기 위해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역시 헌법기관인 다른 국회의원들이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을 통해 이석기 의원 개인에 대한 자격심사를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정당을 총체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한다면 훨씬 더 보수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5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그렇기에 법무부는 해당 사안뿐만 아니라 “통진당의 당헌·당규 및 강령, 통진당원들의 국보법 위반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법리 검토” 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부분들을 추가한다고 해도 사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먼저 “통진당의 당헌·당규 및 강령”은 현재 통진당을 구성하는 경기동부연합 뿐만이 아니라 노회찬 심상정 등 PD계열 좌파나 유시민 등 참여계가 함께 있을 때 쓰인 것이다. 이 강령들을 보고 위헌을 운운한다면 법무부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만을 허용하고 제반 진보정당들은 언제든지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민중민주주의라는 강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해석한다면 한국 사회에선 어떠한 종류의 진보좌파 정당의 기획을 한다 하더라도 북한을 추종한다고 우길 수 있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법무부와 국무회의의 조치는 한국 사회가 실제로 ‘종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수주의자들이 종북을 두려워하고 그들이 정권을 빼앗는 것에 공포를 가진다면 그들을 세밀하게 가려내고 경쟁자들을 응원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그들은 실제의 종북과는 상관없이 뭉뚱그린 진보진영이나 야권세력들까지 ‘종북’으로 매도하기에 용이한 방책들을 사용한다. 어떤 이가 광적으로 ‘적’의 숫자를 늘리는데 집착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적’을 ‘제대로 된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최근 법원 판결의 조류로 보건대 헌법재판소가 법무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쉽게 수긍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겨냥하는 효과는 다른 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 효과의 본질이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들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거추장스러운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란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 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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