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달 때마다 실명확인을 한다. 정부나 정치인, 기업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게재하기만 하면 삭제를 당한다. 삭제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경찰과 검찰의 소환 수사가 진행된다. 자 이쯤 되면 아예 인터넷을 쓰지 말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방송통신의 독립성을 훼손한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 인터넷 이용환경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50개 대책 마련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 ⓒ미디어스
방통위에 따르면, 이번 종합대책은 ‘침해사고 예방 및 대응능력 제고’, ‘개인정보 관리 및 피해구제 체계 정비’,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 ‘정보보호 기반조성’ 등 4개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50개 세부 대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통위는 최근 인터넷상 대규모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유해정보 확산 등 인터넷 역기능 증가로 인한 국민 불안이 가중됨에 따라 이같은 대책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중 해킹 등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감안해서인지 ‘개인정보 관리 및 피해구제 체계 정비’ 내용은 일부 의미 있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 요구에 따른 것이며, 기존에 정보인권단체가 요구해 온 수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만큼이라도 노력한 점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이번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의 핵심은 이른바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에 있다.

방통위가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시점에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조선시대 같으면 4대문에 정부를 비방하는 낙서 등을 하는 민초들을 모조리 잡아서 족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형법상 모욕죄로 충분히 처벌 가능한데, 난데없이 웬 ‘사이버 모욕죄 신설’인가? 이는 촛불집회에서 나타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민심이반의 진원지를 인터넷으로 단정한 정부가 인터넷을 이른바 '反MB' 없는 청정지대(?)로 만들겠다는 속셈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 이것 많이 듣던 말이다. 사실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은 2000년 초(김대중 정부 시절) 구 정통부가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확립 등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면서 이미 사용했던 표현이다. 정보인권운동 진영은 이 법을 ‘인터넷 상의 국가보안법’ 또는 ‘통신질서확립법’이라고 명명하면서 인터넷 국가보안법 저지 운동에 나선 역사가 있다.

현재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을 내세우는 방통위의 관료들은 2000년 당시 ‘통신질서확립법’을 추진했던 관료들의 마인드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방통위는 겉으로는 잘 포장된(물론 ‘건전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정치적인 뉘앙스를 품은 단어라서 반대하지만) ‘건전한 인터넷 이용질서 확립’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 대책은 실상 인터넷의 여론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지침의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 대책의 핵심은 인터넷 정보제공 사업자들에게 정부가 요구하는 조치 사항(댓글 삭제 조치) 등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처벌하겠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는 사업자들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간단하다. 정치 참여를 차단하는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선거 시기 인터넷 실명제 실시에 이어서 포털 사이트 등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실명제(정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포장했지만) 등과 마찬가지로 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 사업자를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다는 얘기다.

정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을 사업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 조치가 시행되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물을 둘러싸고 정치권력, 자본권력 등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나 공문을 이용해 게시물 삭제를 임의로 요구하고 있다. 포털 사업자 등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법이 시행되면 인터넷 상의 수많은 게시물들이 명예훼손이라는 명목으로 삭제되고, 사라질 것이다. 인터넷 주권자들의 주권 침해, 즉 표현의 자유 상실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또한 현재의 포털 사이트,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한 실명제를 엔터테인먼트, 게임사이트 등 대부분의 사이트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대폭 확대는 인터넷 여론의 광장을 폐쇄하겠다는 조치이다.

정부는 익명성에 의한 인터넷 역기능 최소화 등 불건전 정보 유통방지 기반을 강화한다고 강변하지만, 도대체 정부가 나서서 인터넷 상의 정보가 불건전한지 건전한지 기준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한 언론과 출판·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이명박 정부의 최시중 방통위가 판결해서 국민의 인터넷 공론장에 족쇄를 채우겠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불법 정보, 불건전 정보 이런 개념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불법 정보의 범위는 법률에 의해 최소화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사법당국에서 이에 대한 판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국가권력이 나서서 불건전정보, 유해정보, 불법정보 등의 일방적 잣대를 제시하고 문제가 있으니 삭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하는데 ‘빅브라더 정권’이 탄생했다고 나이롱박수라도 쳐야 할까?

정부가 내놓은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의 문제점은 이 정도로 얘기하고자 한다. 더 분석할 필요도 없이 이같은 대책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민심이반을 은폐하고, 인터넷 상의 비판적인 여론을 차단·통제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통치행위에서 나온 실행방침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번 대책에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의지와 구체적 대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지 정부는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한 대목은 자신의 실책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무능한 이명박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고, 민심이반을 확산시킨 인터넷 여론을 방치한 인터넷 무대책을 반성한다’는 것이 아니었는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촛불집회가 벌어진 이후, 이명박 정부는 법무부, 검찰, 경찰, 방통위 등 권력기관을 전방위적으로 동원해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고 탄압하는 술수를 자행해 왔다. 특히 조중동 불매운동 네티즌 게시물 삭제라는 최악의 결정을 내린 방통위는 이번 촛불정국을 통해서 확실히 ‘방송통신지원기구’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권력기관’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그런 권력기관 앞에서 방송독립, 인터넷 여론 보장을 논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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