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살교실 1권 암살 시간 표지 ⓒ학산문화사
<암살교실>이라는 제목을 처음 듣거나, 만화의 간단한 줄거리를 들었을 때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달을 부수고 내년에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며 예고한 정체불명의 생물체라 해도, 그런 선생을 죽이는 것이 학생들의 목표라는 설정은 최근 들어 뉴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교권 추락’이라는 말을 절로 연상하게 만든다. 거기다 그 선생이 직접 학생들에게 자신을 암살할 방법을 알려준다는 설정은 참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설정과 달리 <암살교실>은 오히려 1990년대 유행하던 학교를 다룬 만화/드라마에 가깝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 학교와 학생의 관계, 그리고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만화는 가벼우면서도 때로는 진지한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보통 <암살교실>과 같이 등장인물들에게 특정한 인물을 없애야 하는 당위를 설정하는 작품은 대개 그 인물이 매우 극악한 존재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클리셰를 깨부순다. 분명 학생들이 죽여야 하는 존재인 ‘살(殺)선생’은 가공할만한 힘을 가진 생물이다. 그러나 그는 강한 힘에 비해 어딘가 허당인 부분이 살짝살짝 보이며, 또한 학생들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려고 노력한다. 성실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고민을 풀고 때로는 시시각각 닥쳐오는 음모도 해결하는 초인적인 존재이다.

반면 이사장을 포함한 학교는 ‘살선생’과는 정반대로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다는 학교의 평균 성적을 높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우열반을 분리하고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이 무시했던 학생들이 ‘살선생’의 지도로 조금씩 성장하자 도리어 그것을 방해하려 꿍꿍이를 쓰는 비열한 집단이다. 갑작스레 학교에 들어온 선생이 못 미덥고 때로는 불량스럽기까지 하지만 알고 보면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선생을 싫어하며 틈만 내면 없애고 싶어 하는 학교가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설정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만화 <GTO>의 주인공 ‘오니즈카’와 학교 간의 관계와 유사하다. 학생들과 친근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매력이 있고 아무리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척척 해결하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은 당시 일본은 물론, 한국의 억압적인 학교 문화를 경험했거나 시달리던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주었다.

그러나 <GTO>의 작가 후지사와 토오루가 이후 <GTO>의 자기복제에 머무르고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평을 들었던 것처럼, 더 이상 독자들도 ‘만능 교사’에 대한 환상을 포기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영화화가 되면서 더 유명세를 탄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에서 열혈 교사이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넣어 이러한 교사의 상을 풍자했겠는가. 그런데 이미 이런 부류의 학교 만화에 질린 독자들이 <암살교실>에는 일본에서 초판 100만부를, 한국에서도 정식발매 전부터 불법 스캔본이 활발하게 배포될 정도로 호응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 마츠이 유세이의 전작 <마인탐정 네우로>가 매니악한 인기를 얻어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던 것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암살교실>의 ‘살선생’이 단순히 이상적인 ‘만능 해결사’를 넘어 학생들에게 자신들을 뛰어 넘으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보여주는 설정이 ‘살선생이 학생들에게 직접 자신을 암살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부분이다. 비록 현재까지 한국에 정식 발매된 분량까지 단 한 명의 학생도 암살에 성공한 적은 없지만, 학생은 가지각색의 이유로 ‘살선생’을 암살하려고 노력하고 그로 인해서 한층 더 학생은 성장한다. 피상적으로 봤을 때 암살은 비인륜적인 소재이지만, 깊게 파고들면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생과 교사 간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설정인 것이다. 애초에 무협 등의 장르에서 제자가 스승을 뛰어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자가 스승과 겨루어 이기거나, 끝내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러한 표현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암살교실>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단순히 돕고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경쟁을 하며 서로 성장하는 관계이며 동시에 학교는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고민을 해결해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독자에게 전한다.

물론 <암살교실>의 한계는 명확하다. <GTO> 등 이미 학교 만화라는 장르를 개척한 작품들과 비교해볼 때 <암살교실>은 현재 독자층의 주류인 10 ~20대에게 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며, 배틀물에도 약간 발을 들인 작품이라 더욱 작품에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공 교사가 어떤 상황에 닥쳐도 모두 해결하는 초인적 존재라는 설정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암살교실>은 장기적으로 <GTO>와 같은 매너리즘에 처할 가능성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지점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한국에서 <학교> 시리즈가 오래간만에 부활했던 드라마 <학교 2013>이 사회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GTO> 등의 인기가 사그라진 뒤에 다시 <암살교실>이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여전히 학교가 학생들을 억압하는 등 1990년대와 큰 차이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국의 학교는, 그리고 교육은 어떠한가.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는 거의 매년 바뀌지만 학생보다는 교육의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학교는 물론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문제에 대해서 피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할 뿐이다. 작년 대구교육청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자살 방지 대책으로 창문에 ‘쇠창살’을 달았다. 그로 인해 대구시의 학생 자살자수는 줄었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한국의 교육이 학생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해고자가 조합원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교육 운동을 해왔던 교사노동조합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정부에 의해 법외노조로 지정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교육에 대한 이상도, 방향도 혼탁한 상황에서 <암살교실>은 비록 완벽하지 않지만 최소한 교사와 학교, 그리고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줄 것이다. ‘살선생’과 같이 만능 교사, 만능 교육이 될 수 없어도 지금 학교와 교육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암살교실>, 마츠이 유세이 만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발간. 현재 5권까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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