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은 확실히 본좌(本座)이다.

스팸 신공으로 야동을 돌리던 김본좌와 태산을 호령하던 허본좌가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고, 스타크의 절대 강자 마본좌가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여 2군행이라는 '태산압정(泰山壓頂)‘에 빠져 넷세상이 도탄에 이르자 홀연히 전본좌께서 말씀하시길, 나라가 어려우니 국민은 굶으라 하신다. 전본좌가 누구인가? 그의 본산인 한나라당이 ’차떼기‘, ’트렁크떼기‘로 탕진하던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시절 홀로 “본인은, 본인은, 29만원 밖에 없는 사람이야...”라는 통장잔액 공개 수법으로 독야청청(獨也靑靑)하신 분이다.

▲ 국회 본관에 전시된 사진ⓒ여의도통신
쿠데타로 단련해온 내공의 깊이는 알기가 어렵고, 낯짝에 깔려있는 철판의 무게만 해도 수 천근에 이른다고 하여 한나라 본산의 그 누구도 감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땡전뉴스’의 귀인이다.

한나라 본산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는 당주에 오르면 전본좌에게 문안을 드리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한나라가 아무리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한다 하여도 민정당파임을 부정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새롭게 한나라 당주에 오른 박희태 대표가 지난 22일 전본좌를 알현했다.

이 뜻 깊은 알현의 자리에서 전본좌께서 하문하시길, 대장은 100일을 봐주는 게 불문율이고, 나라가 어려우면 아침을 굶는 것은 백성의 도리라고 일갈하셨다. 철저히 본좌의 수준, 본좌의 관점, 본좌의 포지션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본좌의 수준, 본좌의 관점, 본좌의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 이하의 수준, 몰상식의 관점, 저널의 포지션이 아닌 무엇이다. 한 마디로 ‘퐝당’한 헛소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헛소리를 보도한 미디어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점이다. 동아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 YTN 그리고 경향신문까지 제목과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문제의 발언을 전했다.

물론, 여당 대표와 전직 대통령의 만남이 뉴스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문제는 보도의 수준, 관점 그리고 태도이다. 그것은 결국, 전두환 국보위 이후 최악이라는 2MB의 언론 장악에 맞서는 미디어의 수준이 전또깡의 폭거에 시름하던 ‘땡전뉴스’ 시절에서 진일보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될 것이다.

‘땡전뉴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철권 통치하에서 저널이 맛보았던 치욕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포털에 가해지고 있는 재갈은 결국 상식을 향한 굴종의 요구이다. 백주 대낮에 사장의 옷을 벗기려는 음모는 민주주의 거스른다. 어제의 용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대거 현역으로 복귀하고 있다. 지금, 저널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땡전뉴스’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물론, 지금은 “민간항공기가 떨어져 200여명의 사상자가 나도 뉴스 첫 머리에 전두환이 하수구 청소하던 모습을 먼저 전해주어야 하는 시절”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문제는 형식이 아니다. 200명의 사상자가 난 민간항공기 추락을 먼저 전하고 전두환이 하수구 청소하는 장면을 나중에 내보내는 것으로 저널의 책임이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비상한 시기이다. 흉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본좌의 성공한 쿠데타는 고도의 정치 행위임으로 처벌할 수 없다던 사법부가 이건희의 성공한 증여는 고도의 경제 행위임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사는 이렇게 추잡하게 그러나 세련되게 반복된다. 5명의 검사가 투입되어 ‘신뢰저해사범 전담팀’을 꾸리고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평범한 소비자들을 출국금지 시키고, 압수수수색하고, 출두를 통보했다. <PD수첩>의 방송 원본 테이프 전체를 내놓으라며, 여차하면 MBC를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협박이 나돌고 있다. 정부의 ‘보호’를 벗어나는 사이트는 강제 폐쇄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요구가 ‘사이버 모욕죄’라는 기괴한 이름으로 입법 예고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 과녁은 ‘전또깡’ 시절로의 회귀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겉모양이 달라진 것뿐이다. 정권은 살찌고 국민이 굶는 것은 언제나 통치는 윤택하고 언로는 메마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저널이여,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속담에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보도’해야 할 것과 ‘보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보도’하기로 했다면, 추적해야 한다. ‘뭐뭐, 하기로 했다’ 식의 결론을 전달하는 방식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살기 위해선 보도 자료를 받아먹는 동물원 호랑이가 아닌 먹이를 찾아 해매이는 대지의 하이에나가 되어야 한다.

성공한 증여는 처벌할 수 없다는 문장이 구성하는 사회의 문맥이 무엇인지, 검찰의 업무 배분 체계에서 5명의 검사가 배치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공영방송을 압수수색하고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정권의 계획이 왜 야만적인지 추적해야 한다.

사실 너머의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당위적 요구가 아니다. 수사적으로 죽는다는 뜻이 아니다. 절박한 생존의 권유이다. 그렇게 나아가지 못하면 반드시 죽는다. 2mb 방통위가 하는 짓이 전또깡 국보위가 했던 짓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결론은 명확하다. 저널이여, 전본좌를 굶겨라!!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2mb와 쥐들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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