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다크 월드>는 먼저 개봉한 <아이언맨 3>와 마찬가지로 뉴욕 사건 이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토르는 제인과의 재회도 미루고 아스가르드와 아홉 개 행성의 안위를 정리하고자 나섰습니다. 전편과는 달리 <토르: 다크 월드>에서는 한층 성숙한 면모를 보이는 토르, 그는 무난하게 목표를 이루면서 아버지인 오딘의 신임까지 얻습니다. 그러나 조부와의 악연을 간직하고 있던 말레키스는 다시 한 번 '에테르'로 우주를 어둠 속에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에테르는 제인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토르는 급기야 제인을 아스가르드로 데리고오는데, 말레키스와 그의 종족은 에테르를 빼앗으려고 둘을 추격합니다. 이 버거운 자와 상대하기 위해 토르에게는 로키가 필요합니다.

마블이 손에 쥔 양날의 검을 노출한 <토르:다크 월드>

마블은 문화산업에 있어서 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유감없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코믹스에서 출발한 마블의 작품은 이제 영화로 진출하여 전 세계의 극장과 관객을 점령했습니다. 더욱이 영화는 각 캐릭터를 단독으로 내세우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코믹스의 전철을 충실하게 밟으면서 <어벤져스>를 제작하여 최대의 효과를 얻었죠. 적어도 문제의 <어벤져스>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아이언맨과 헐크를 제외한 토르, 캡틴 아메리카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것이 <어벤져스>가 출몰하면서 하나의 완성체를 이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벤져스>를 위한 밑밥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마블의 계획에 감탄하게 했었죠.

마블과 함께 코믹스의 쌍두마차인 DC가 곧 죽어도 영화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이자 원인도 이것입니다. 마블은 이미 수 년 동안 <어벤져스>를 위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덕분에 딱히 돋보이는 것이 없었던 <토르: 천둥의 신>과 <퍼스트 어벤져>가 비로소 가치를 가지게 됐습니다. 반면에 DC는 좀처럼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다급하게 <배트맨 VS 슈퍼맨>까지 내놓으려고 하지만, 이번에 <토르: 다크 월드>를 보고 알았습니다. 장담하건대 <배트맨 VS 슈퍼맨>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여전히 마블과 DC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그와 동시에 마블로서는 자승자박으로 역전의 빌미를 DC에게 내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걸 <토르: 다크 월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토르에게 날개를 달아준 어벤져스

먼저 DC가 마블을 따라잡기 버거운 이유. 마블은 DC보다 먼저 영화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코믹스→영화→TV→게임 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어벤져스>의 성공은 나머지 네 편의 영화를 단번에 규합시키면서 그 하나하나에게 가치마저 새로이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고스란히 <어벤져스> 이후의 영화에도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즉 <어벤져스>를 보고 열광한 관객이라면 뒤를 이은 <아이언맨 3>와 <토르: 다크 월드>가 보내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조스 웨든이 관장하면서 <어벤져스> 산하의 영화가 모두 세계관을 공유하니, 이 영화들을 봐야 <어벤져스 2>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언맨 3>가 그랬듯이 <토르: 다크 월드>도 <어벤져스>와의 관계를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인이 토르와 다시 만나자마자 했던 얘기가 "뉴욕에 있었으면서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면 <토르 다크 월드>를 보면서 좋았던 건 모두 <어벤져스>와의 연계성을 직간접적으로 띄고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해외에서도 개봉하기 전에 "과연 <토르: 다크 월드>에서 '어벤져스'가 집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제가 기억하는 한 이것은 <아이언맨 3>가 간과하면서 더 크게 불거졌던 구멍 아닌 구멍입니다. 이제 네 명의 어벤져스는 단독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 문제를 안고 극복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토르: 다크 월드>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나름의 혜안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말레키스라는 강적이 나타나서 로키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고전했으나, 정작 나머지 어벤져스 멤버들은 <토르: 다크 월드>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어벤져스>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던 로키가 재차 <토르: 다크 월드>에서도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시 한 번 앙숙인 토르와 손을 잡고 말레키스를 물리치게 하는 사건과 그 이유를 꽤 합당하게 제시하고 있죠. 이런 몇 가지는 <어벤져스>를 간과하지 않은 <토르: 다크 월드>의 각본을 칭찬하고 싶게 합니다. 아스가르드에서 큰 전투가 일어나면서 스케일이 한층 커졌다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토르의 발목을 잡는 어벤져스

그렇다면 <토르: 다크 월드>는 전편보다 재미있고 나은 영화일까요? 글쎄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데는 아무래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토르: 다크 월드>가 가지는 연계성이 작용합니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도 <어벤져스 2>를 위해서 봐야 하고, 그것만으로도 <토르: 다크 월드>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에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면 DC가 마블을 따라잡을 수도 있는 이유가 보입니다. 우선 <토르: 다크 월드>는 초반부가 다소 지루합니다. <어벤져스> 이후의 토르와 로키가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주느라 시간과 에피소드를 할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상당히 가볍고 엉성하게 처리하고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과 이어서 얘기하자면, 토르는 본디 독특하고도 애매한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신이고 그가 속한 세계는 천상(우주?)입니다. 즉 토르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헐크와도 다른 신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르는 엄연히 어벤져스의 멤버입니다. 이것이 전편에 이어 <토르: 다크 월드>에서도 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토르: 다크 월드>는 여전히 지상과 천상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일면 당연하게도 <어벤져스 2>를 위한 포석을 놓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그 탓에 <토르: 다크 월드>는 긴장의 끈을 여러 차례 놓으면서 극을 산만하고 지루하게 만듭니다. 각본이 아쉬운 한편으로 토르가 처한 상황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토르: 다크 월드>가 지상과 천상을 두루 누비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명적인 단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악역의 매력이 크게 저하됐다는 것입니다. 원작에서도 매우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긴 했지만, 우주를 어둠으로 집어삼키려는 야심에 비해 정작 <토르: 다크 월드>에서 보여주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나마 마이클 에클스턴의 분장과 연기가 좋아서 위안이 됐지만 설정과 달리 구심점에서 벗어난 상태로 보여서 영향력이 미흡합니다. 이는 '만다린'과 유사하나, <아이언맨 3>가 그를 버리고 토니 스타크의 고뇌를 얻은 반면에 <토르: 다크 월드>는 성과가 없습니다. 이에 더해서 로키의 운명을 뒤바꾸고 있다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것을 끝내 그와 이어진 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벤져스 2>가 출동하면 어떨까?

네, 글이 길어져서 대충 설명했지만 이 모든 것은 <토르: 다크 월드>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해서 떠안게 되는 필연적인 문제입니다. 단독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기하는 것만도 버거운 일인데, <어벤져스 1>은 물론이고 향후 나올 <어벤져스 2, 3>를 위한 것까지 반영을 해야 하니 골머리가 아프겠죠. 이는 결국 토르가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면서 얻은 이점이 동시에 해악을 끼치기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유연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마블은 결국 자승자박의 꼴로 DC가 앞지를 수 있게끔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 조스 웨든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코믹스에서 이미 선을 보이고 성공했으니 영화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면 다소 안이한 판단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코믹스는 분명 상대적으로 특정 부류에게 국한된 매체고, 영화는 그보다 훨씬 폭이 넓은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코믹스와 영화는 제작 예산에서 비교할 수 없는 금액차를 가지니까요. 그만큼 영화로서는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아야 할 책임이 뒤따릅니다. 따라서 영화는 코믹스의 거대한 세계관을 한결 단순하고 쉽게 함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만 예로 들어도 과연 <어벤져스>를 비롯한 각 히어로의 원작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원작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블이 어지간히 엎어지지 않는 한 DC는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이미 우리가 확인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어벤져스 2>가 성공하면 만사 해결이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분명 <어벤져스 2>가 개봉하고 만족을 준다면 <토르: 다크 월드>에게 예전처럼 면죄부가 주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어벤져스 2>를 위한 희생이라고 자위하더라도 가치는 충분합니다. 어쩌면 <토르: 다크 월드>는 타노스의 출현이 예상되는 <어벤져스 3>를 위한 초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볼품없는 캐릭터로 전락했을지라도, 말레키스를 등장시킨 것에는 이에 따른 계산이 깔렸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게 결코 확대 해석은 아닙니다. 두 개의 보너스 장면 중 하나가 그 근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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