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자료에서 힌트를 받아 검찰의 변경된 공소장에 첨부된 트위터 범죄일람표를 분석할 경우 국가정보원 직원의 트윗이 ‘일베(일간베스트)’의 콘텐츠를 링크로 포함하고 있는 경우를 다수 발견하게 된다고 단독 보도했다.

‘일베’의 콘텐츠라 해서 모두 패륜적이라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오마이뉴스> 보도에 나온 ‘일베’의 여러 이미지들은 색깔론과 호남비하는 물론 심각한 수준의 성적 비하마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국정원이 대북심리전이란 이름으로 이러한 내용을 SNS 상에 적극 전파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안을 ‘반인권적 수단을 적극 동원한 심각한 수준의 여론왜곡 행위’ 이외에 달리 어떤 말로 칭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국정원의 그 ‘대북심리전’의 구체적인 내용이 폭로되기 시작한 몇 개월 전부터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 국정원과 ‘일베’의 관계에 대해서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그 관계를 부정한 적도 있지만 수상쩍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 서상기 정보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리는 정보위원회 전체회의를 앞두고 위원장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국정원이 ‘일베’와 별다른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핵심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베’에 드러나는 종북세력과 북한에 대한 인종주의적 증오심과 반여성주의를 국정원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여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정원의 행위의 패륜성은 증명되니 말이다.

하지만 기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 구체적인 관계가 궁금할 것이다. 그저 뜻을 같이 하는 사이일 뿐인지, 면식 정도는 있는 사이인지, 혹은 친한 친구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사이인지, 그도 아니면 두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혼자서 변장을 하고 둘을 연기한 것인지가 궁금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베’의 존재 자체를 국정원의 공작으로 모는 생각에 대해서는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 ‘일베’는 그 기원이야 어쨌든 특히 젊은 세대의 하위문화에 성공적으로 똬리를 튼 것처럼 보이는데, 이 상황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별도로 분석되어야 할 부분이지 국정원의 공작으로 치부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일베’가 활용하고 있는 코드들을 국정원이 모두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것들은 ‘원세훈 국정원’ 이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각기 인터넷에서 다른 시기 다른 여건에서 탄생하여 오랫동안 축적돼왔던 것들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하위문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뒤섞어서 새로운 정치성을 탄생시키는데 국정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 정도는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정원은 특정 시대의 특정 세대와 함께 사라졌거나 적어도 사라지는 중이라 여겨졌던 끔찍한 편견의 덩어리들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들은 북한 사회가 아닌 남한 사회의 시민들에게 심리전을 펼쳤고 그 결과 암세포에 해당할 의식을 크게 키워냈다.

굳이 가능성들을 나열한다면, 이 사안에서 국정원의 역할은 주범이거나 공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적극적인 공모관계였는지 아니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다가 우연히 국정원이 그들의 문화를 흉내 낸 것인지 정도가 논점으로 남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끔찍하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국정원에겐 이러한 종류의 사실관계를 떳떳하게 밝혀야 할 ‘명예’ 따위는 없는 것일까. 일국의 정보를 총괄하는 기관이 사회 구성원들이 용인하기 어려운 패륜적인 사이트를 활용해 ‘공작’을 펼쳤는지, 아니면 그 사이트를 직접 관리해 왔는지를 밝힐 용의는 없는 것일까.

국정원은 그저 국정원법 뒤에 숨어 비밀유지가 정보기관의 최선이라 말하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국정원에 보관되어 있는 정상들 간의 회담록은 어찌 공개했는지 모르겠다. 회담록 공개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서였다는 남재준 원장의 항변을 떠올리며, ‘일베’의 배후라는 의심을 받고도 무신경한 국정원의 그 초라한 명예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