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현재까지도 최고의 SF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로 인해 이제 SF 영화의 상징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함을 앞세워 가장 영화다운 매력을 발산시킨 이 영화는 아이디어와 극대화된 CG 기술의 결과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잘 보여준 사례가 될 듯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는 사기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를 보여준 쿠아론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이 영화는 미니멀리즘과 최근 영화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근원적인 감각을 극대화해 주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감각이 집중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SF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져 있는 우주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이들이 인재로 만들어진 최악의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풍성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밋밋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재난 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아쉬움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감을 다 동원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감독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선에 오른 스톤(산드라 블록)은 우주 정거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베테랑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와 공기도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작업을 합니다.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에 조바심이 나는 스톤이지만, 우주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숙한 우주인 코왈스키는 장난으로 긴장감을 풀어주려 노력합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바람나서 도망간 부인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코왈스키에게 이번 임무는 그가 우주에서 가지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우주 유영을 하면서 자신만의 기록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내세울 정도로 그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익숙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로워 심심할 정도인 이 상황에 갑자기 긴박한 소식이 들립니다. 휴스턴 우주센터와 교신하면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그들에게 급한 전갈이 옵니다. 노후화되어 버려진 위성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주 쓰레기가 된 위성을 지구에서 미사일을 쏴서 폭파하는 과정에서 생긴 파편들이 허블 우주망원경을 고치고 있는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다급한 연락이었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욕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던 그 공간은 삽시간에 재난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쉽게 도망갈 수도 없는 너무나 넓은 우주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위성 파편들은 시시각각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스톤 박사는 자신의 임무를 마무리하고 싶어 했고, 그 짧은 순간이 그들의 운명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위성 파편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들이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파편들로 인해 허블 우주망원경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 상황에 우주로 튕겨나가는 스톤 박사를 구해낸 코왈스키는 모선으로 대피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모선은 파편 폭탄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 후였습니다.

러시아나 중국의 우주 정거장으로 향해 지구로 내려가는 방법이 유일한 희망인 그들에게 닥친 이 기막힌 상황은 그 어떤 재난 상황보다 두렵고 무서운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재난들과 달리,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이 지독한 상황은 그 자체로 관객들마저 압박할 정도로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비티>는 시작부터 강렬했습니다. 모든 소리가 묵음이 되고 오직 보이는 것은 지구가 전부였습니다. 아주 느릿하게 유영하던 화면은 이내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우주인들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카메라는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환하며 그 기묘한 중력이 사라진 공간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도록 요구했습니다. 우주복 안의 주인공의 시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시 주인공을 주시하는 이 시각의 전환은 단순한 3D영화의 시각적 재미만이 아니었습니다.

관객들과 영화가 하나가 되어 현장에서 교감을 이루는 이 상황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최고의 가치이자 재미였습니다. 소리와 시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들에게 그 상황들을 동일하게 전달받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이 영화는 왜 제목이 <그래비티>일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흘러나오며 유인원의 뼈다귀가 하늘 위로 날아가 우주선으로 오버랩되는 장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을 상징하는 최고의 장면입니다. 이 절묘한 몽타주는 이 작품을 이 시대 최고의 SF 영화로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철학적 메시지의 강렬함이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영상미와 결합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60년대 만들어진 작품이 여전히 다시 봐도 새롭게 다가올 정도로 특별함을 선사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그래비티>였습니다. 어설픈 수사 없이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것들만 이용해 실감나게 상황을 만들어가는 쿠아론의 연출력은 압권이었습니다. 서스펜스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주라는 공간과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강렬함을 느끼게 해준 이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스톤 박사와 한 몸이 되어 함께 우주에서 재난을 피해가는 과정을 체험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준 <그래비티>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수억 원을 지불하면 우주여행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비티>는 마치 우주에서 유영을 하고 재난에 함께 빠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충분히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세상은 영화로 표현되고 영화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 그 영화 속 세상 이야기. 세상은 곧 영화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소통해보려 합니다.
http://impossibleproject.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