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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는 있어도 루프는 없다’

‘루트는 있어도 루프는 없다’ 일전에 언급했던 <현시연 2대째>에서 한 챕터의 제목으로 쓰인 말이다. ‘루트’와 ‘루프’라는 용어 자체가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루트(route)는 이야기가 단선적이지 않은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직접적인 선택이나 플레이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각각의 이야기 줄기들을 뜻한다. 말하자면 평행세계에서 지금 맞이하게 된 결과(엔딩)는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가능성 중에서 하나의 길(route)일 뿐이라는 것이다.

루프(loop)는 이제는 고전으로 평가 받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연상하면 쉽다. 어떤 시간대를 계속 반복하면서 분투 또는 체념하는 이야기를 이른바 ‘루프물’이라고 부른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슈타인즈 게이트>,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명작들이 여기에 속하는 만큼 이제는 상당히 일반적인 설정이다.

이렇게 별개의 개념인 것처럼 보이는 ‘루트’와 ‘루프’가 함께 언급되고, 게다가 다시 그 차이를 강조하는 듯한 이 문장은 무엇을 뜻할까? 루프물에서 같은 시간을 반복하게 되는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관찰자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무대의 일부인 배우이면서도 마치 독자(플레이어)처럼, 무대 위의 세계가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배드엔딩을 보고 난 게임 플레이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장된 과거 시점을 불러내서 다시 ‘반복’하는 것처럼, 루프하는 캐릭터는 이번 세계를 버리고 다시 돌아간다.

루트와 루프의 공모

루트와 루프가 공모관계를 맺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이른바 ‘진(眞) 엔딩’을 보기 위해, 루트는 루프가 되고(즉 플레이어는 똑같은 시간대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루프는 루트가 된다(개개의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타자화/대상화한다). 이런 묘한 관계 속에서라면, 루트와 루프는 서로 대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 ‘쓰르라미 울 적에’ ⓒ竜騎士07 / 07th Expansion

<쓰르라미 울 적에>는 이러한 ‘대체’가 가장 적나라하게 적용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아마추어 동인 게임으로 시작해, 원작 1편이 발매된 지 10년도 넘은 지금까지도 관련 상품이 나오고 있는 메가 히트작이다. 여기서 ‘대체’는,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루트’가 없는 대신 ‘루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리메이크된 콘솔 버전은 조금 다르지만) 원작에는 사실상 플레이어의 개입의 여지가 전혀 없으며 다만 반복되는 8개의 루프되는 이야기(그 중 하나는 프리퀄에 가깝지만)가 루트의 역할을 한다.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쓰르라미 울 적에>를 가리켜 ‘게임 같은 소설 같은 게임’이라고 평한 것은 바로 이런 관계를 가리킨다(필자 주 : ‘게임 같은 소설 같은 게임’이란 말에 난해함을 느낄 수 있어 설명한다. 게임 같은 소설을 말하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문학 범주(게임 같은 소설)가 있는데, 그런 서사구조를 다시 게임 소프트웨어로 차용했다는 말이다). 게임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루트’의 체험을 서사의 문법으로 해석한 ‘루프’, 다시 이 ‘루프’를 가지고 게임의 ‘루트’를 대체한 것이다. <쓰르라미 울 적에> 구성의 이면에는 이러한 사슬 관계가 얽혀있다.

루프와 결말의 무게

▲ 캐릭터의 귀여움과 조잡함의 밸런스는 놀라울 정도다. ⓒ竜騎士07 / 07th Expansion

<쓰르라미 울 적에>는 7개의 배드엔딩 이야기와 1개의 해피엔딩 이야기로 이뤄진 연작이다. 각 편의 구성은 비슷한데 초반에는 평화로운 마을 ‘히나미자와’에서 친구들과 하하호호 발랄하게 지내며 추억을 만들다가, 마을축제인 ‘와타나가시’를 기점으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닥치며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모한다. 물론 해답편인 후반으로 갈수록 사건의 전모가 점점 밝혀지지만, ‘진 엔딩’인 8편 ‘마츠리바야시’에 이르기 전까지는 비극이 꾸준하게 반복된다.

그런데 유일한 해피엔딩이자 진정한 결말인 ‘마츠리바야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과 차원이 다른 역할을 떠맡게 된다. <쓰르라미 울 적에>에서는 직접 보여줬던 7편의 비극을 포함해 수십 수백 번의 루프가 암시되는데, 마지막 편의 ‘해결’은 그리고 그 무게를 전부 짊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루프가 없는 마지막 세계야말로 배수진이다. 마지막 진 엔딩 세계는 무조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한다. 무수한 실패의 패턴은 이미 앞선 루프에서 모두 겪었기 때문이다.

▲ 소설 ‘쓰르라미 울적에’ (학산문화사)
‘마츠리바야시’의 메인 스토리가 시작하기에 앞서, ‘적’의 실체가 상세히 묘사되고, 지난 일곱 편에서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세한 사연은 ‘구슬 모으기’를 통해 모두 채워진다. 하나도 빠짐없이 구슬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된다. 마지막 편이기 때문에 완벽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플레이어가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신적인 관찰자 캐릭터 ‘하뉴’가 직접 등장해, 혹여 발생할 빈틈을 틀어막는다. 지난 루프들에서 겪은 비극을 모두 보답하려는 듯한 태도,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는” 결말에 대한 강박이 8편을 내내 휘감고 있다. ‘기적’이 남용되는 듯한 안이한 전개는 그런 강박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선택지가 있도록 리메이크된, 즉 매체적으로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버전 <쓰르라미 울 적에 祭>의 엔딩 ‘미오츠쿠시’와 비교하면 보다 잘 드러난다. 물론 마찬가지로 루프가 겹쳐진 세계이지만, 여기서는 ‘마츠리바야시’만큼의 강박이 없다. 즉 ‘루트’가 있는 만큼, ‘루프’가 짊어지는 무게가 줄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루프의 이중적 어려움

사실 ‘루트는 있어도 루프는 없다’는, <현시연>에 무수히 등장하는 유명작 패러디의 하나로 원 출처가 있는 말이다. 이 말은 20년여 전 작품 <타이의 대모험>의 ‘의리는 있어도 의무는 없다’라는 대사에서 나왔다. 앞 글자가 같다는 점이 이외에도, 이 말은 ‘루트는 있어도 루프는 없다’는 말과 재미있는 대칭관계를 이룬다. 비슷해 보이지만, 의리와 루트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고 오히려 일종의 권력이지만, 의무와 루프는 가혹하게 부여되는 운명에 가까운 것이라는 차이다.

엔딩 자체가 여러 가지인 ‘게임’에서는 나쁜 루트, 좋은 루트를 다양하게 병렬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그저 자신의 무게(다른 말로 하자면 풀어놓은 ‘떡밥’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만을 감당하면 된다. 하지만 루프물은 아무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도 결국 직렬로 배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짊어지게 되는 무게가 점점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의 형식(루트)을 교차해 ‘루프의 무게’를 줄이든지 하는 것은 이 부담을 덜기 위한 장치다.

▲ PS2 버전 <쓰르라미 울 적에 祭> ⓒ竜騎士07 / 07th Expansion

루프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의식은 ‘관찰자’가 ‘이번 세계’에 느끼는 허무함이다. 어차피 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런 허무함을 거치고 나서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루프탈출 즉 결말이 각각의 세계를 가볍다고 느낀 만큼 반대로 많은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각각의 세계를 쉽게 버릴 수 있는 만큼, 순환(루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 어려움은 이중적이다. 가혹한 반복의 운명에서 벗어나야 하는 캐릭터에게는 물론, 층층이 누적된 루프의 덩어리를 무사히 풀어놓아야 하는 작가에게도 절실히 해당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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