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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94’, 이 발칙한 드라마가 주는 아련한 추억의 힘[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탁발 | 승인 2013.10.26 10:08

응답하라 1994가 전편보다 못하다는 평이 많다. 그것이 다수의 뜻이라면 굳이 반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전편보다 이번 1994가 훨씬 더 공감의 요소가 더 많다. 적어도 서울의 1994년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또한 정통 드라마도 아니고, 시트콤도 아닌 독특한 응답류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응답팀의 창의력 하나는 알아줘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전편의 성공에서 옮겨온 자신감이 준 혜택인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이 수상한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 속에 방영이 됐다. 1994가 1997보다 못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 그것은 마치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강요나 윽박지르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예쁜 인형 같은 고아라는 절대 정은지의 걸쭉한 부산사투리가 줬던 맛을 못줄 것이라 장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 예측과 평가는 모두 틀렸다. 고아라 스스로가 좀 심할 정도로 자신을 놓아버렸고, 친오빠보다 더 오빠 같은 정우와의 캐미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응답하라 1994는 수도 서울이자, 전국의 수많은 유학생들의 더 폭넓은 추억과 공감하며 전편에 부끄럽지 않은 후편으로 자리잡았다. 형만 한 아우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크게 기울어지지 않는 동생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막장드라마가 점령한 주말저녁에 드라마 선택의 폭을 넓힌 공로도 무척이나 크다.

물론 그것의 가장 큰 힘은 역시나 추억이다. 모든 사람의 추억이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 곳곳에 숨어있는 1994년 아니 마지막 20세기의 흔적들은 시청자 모두를 아련하게 그 시절로 잡아끈다. 이를테면 하숙생들이 모두 엠티를 간 틈을 타 간만에 아내와 외식을 하기 위해 차를 끌고나온 성동일이 올림픽대로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해 잠실을 가야 하는데 동부순환도로까지 오게 되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졌다.

   
 
일단 과연 성동일이다. 그의 흐벅진 코믹연기는 농익어 터질 지경이다. 그런데 1994년 즈음이면 서울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대로에서 빠지고 들어가는 것을 힘겨워했다. 지금이야 네비게이션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더 이상 올림픽대로 나들목에서 헤매는 서울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익숙해진 탓이다. 1994년이면 올림픽대로가 개통된 지 그리 오래된 시기기 아니었다.

시골사람을 등장시켰으니 그 상황이 좀 더 과장되면서도 리얼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를 내린 성동일이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부여잡고 근처 화장실을 찾았으나 가는 곳마다 잠긴 것도 제작진이 얼마나 꼼꼼하게 1994년을 재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또한 유연석이 아주 흐뭇하고 촉촉한 모자간의 화해를 보여주는데 하필 그 옆자리에서 성동일을 방뇨케 한 설정은 이 예능식 드라마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발칙한 발상이었고, 울다가 웃게 만든 반전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풍경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신문에 나는 굵직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것이며,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이런 것들의 가치를 보는 시각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이런 생활의 기록 같은 작은 것들의 의미와 가치는 소중해지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도시민속이라는 개념도 생겨난 것이 그런 가치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치와 의미는 몰라도 상관없다. 20년 전을 이렇게 복습하며 웃고 때로는 뭔지 모를 감상에 젖어 괜히 울적해지기도 하는 경험이 좋다. 응답하라 1994는 굳이 강촌을 가지 않아도, 더 이상 헤매는 올림픽대로에 서지 않더라도 그렇게 추억을 복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좋다. 그게 어딘가. 네비게이션이 아니라 두툼한 지도책 하나가 모든 차에 한 권은 있었던 그 시절의 아날로그 삶이 문득 그리워지지 않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탁발  treeinu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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