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섭 KBS 이사가 지난 18일 방통위에 의해 전격 해임됨에 따라 현재 KBS 이사회는 11명 중 과반수가 넘는 7명이 한나라당 성향 인사로 구성됐다. 이에 여권을 중심으로 "정연주 KBS 사장 해임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21일 오전 CBS 노컷뉴스가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 말을 인용해 "KBS 이사회가 조만간 정연주 사장에 대해 해임건의를 하면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고 새 사장을 임명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를 하면서 '정연주 사장 해임설'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법상 KBS 이사 해임권은 없고 추천권만 있지만, 신태섭 교수의 자격상실을 이유로 '과잉 해석'의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해임을 밀어붙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KBS 사장 임명권만 있는 대통령도 전격 해임 권한 행사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4일 신재민 문화부 제2차관의 "대통령에게는 KBS 사장 임명권 뿐 아니라 해임권도 있다"는 발언이나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지난 18일 "KBS는 정부산하기관"이라는 인터뷰 등이 잇따라 나온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 21일 오전 '이명박 정권 언론장악 규탄' 통합민주당 의원총회ⓒ여의도통신
이에 민주당은 21일 오전 '이명박 정권 언론장악 규탄 의원총회'를 열고 "정부의 언론정책이 법과 상식을 넘어서고 있다"며 기존에 설치된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를 '이명박정권언론장악저지대책위원회'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이들은 원내외 언론계 인사들로 대책위를 꾸리는 한편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에도 함께 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정연주 KBS 사장 조기 해임은 가능할까. 현행 방송법 제50조 (집행기관) 2항에 따르면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되어 있어, 대통령에게 법적 해임권한은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KBS 사장을 조기 해임할 경우, 불법성 논란이 뜨거워 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방송법에는 KBS 사장도 부사장과 본부장에 대한 임명권만 갖고 있다(방송법 제50조 5항)고 명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임권한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며 "대통령의 KBS사장 임명권에도 해임권한까지 포함돼 있다고 보는 법 해석이 우세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방송법 제52조 (직원의 임면)에는 '공사의 직원은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장이 임면한다'고 되어 있어 엄연히 직원 해임권이 명시되어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적으로 임기 보장된 정 사장을 사퇴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상훈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임명권만 부여하고 '해임권'을 배제시킨 것은 언론사의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한 입법 취지"라면서 "정연주 사장이 법적 결격사유를 당장 발생시키지 않고서는 해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연주 KBS 사장측 변호인단의 송호창 변호사도 "정무직 장관과 달리 공영방송 사장은 임기가 보장되어 있고 범죄행위 등 위법행위가 확정되기 전에는 해임할 수 없다"면서 "현재 정연주 사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 자체도 부적절해 범죄혐의가 인정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즉 해임사유도 없고 해임권한도 없으므로 이명박 대통령이 임의로 해임을 할 경우 임명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또 송 변호사는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해임을 강행해 사법부쪽에 해임 위법 여부를 결정짓도록 끌고 가면서 KBS 길들이기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서 "최근 세무조사 및 검찰 수사 등 정연주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KBS 경영 운영 자체를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고 지적했다.

언론학계도 "대통령의 해임권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 유력하다. 한진만 방송학회장(강원대 신방과 교수)는 "KBS는 국정정책 홍보방송인 KTV와 엄연히 다르다"면서 "법에도 없는 대통령 해임권한 얘기는 박재완 수석이나 신재민 차관 발언과 마찬가지로 국영방송과 공영방송을 구분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한 회장은 이어 "공영방송이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도 "대통령이 법적 임기가 보장된 KBS 사장을 해임한다면 결국 대통령이 독재시절처럼 불법 행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방송법의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을 예로 들며 "대통령의 일방적인 언론사 사장 임명권 행사가 불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즉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KBS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은 단순 승인하는 기능만 맡도록 해 언론사의 자율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설명이다.

또 최 교수는 "KBS 이사회가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면서 "자신들이 적법한 과정을 거쳐 표결해 추천한 후보에 대해 다시 해임건의안을 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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