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 입장에서 배우 하지원은 매우 탐낼만한 연기자이다. 왜냐하면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까지 그녀의 활용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지원은 사극과 현대극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희소가치’가 뛰어난 여배우다. 유명 작가와 PD가 끊임없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연출자뿐만이 아니다. 하지원은 시청자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 상품가치가 더욱 배가된다.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 <다모>, <발리에서 생긴 일>, <황진이>, <시크릿 가든>, <더킹 투 하츠> 등을 보더라도 그녀는 지금까지 그 흔한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다. 유독 여배우에게 냉정한 시청자들조차도 하지원의 연기에 대해선 인정하고 들어가는 분위기인 것이다.
비록 <제7광구>처럼 그녀가 출연했던 몇몇 영화의 경우는 저조한 흥행성적을 기록했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하지원에게 돌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감독과 제작사의 ‘판단착오’일 뿐, 지루하고 산만한 스토리 안에서조차 배우 하지원의 존재감은 충분히 빛났다. 오히려 <1번가의 기적>, <바보>, <내사랑 내곁에>, <해운대>, <코리아> 등 영화 속에서 하지원은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대중에게 있어 ‘노력하는 배우’, ‘호감 배우’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가령, 24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주진모는 이 드라마의 역사왜곡 논란과 관련해 “역사적 사실로만 만들 거면 다큐를 만들지 왜 드라마를 만들겠느냐”고 밝혀 대중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입혀 만든 ‘팩션’이라 할지라도, 실존인물을 배경으로 만드는 사극이라면 최소한의 고증을 거치고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황후>의 대본을 맡은 외주제작사 측은 “우리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해외에 수출하려는데 이상하게 하면(악행 등을 그대로 작품에 담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는 등 역사왜곡을 두둔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물론, 사극이 역사의 전부를 담아낼 순 없다. 드라마라는 극으로 재현될 땐 충분히 상상력이라는 옷을 입고 보여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사실과 기록 자체를 부정하거나 이와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상상력의 범주를 벗어나는 ‘왜곡’일 뿐이다. 정말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다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판타지 사극으로 선보이면 될 일이다. 실존 인물을 앞세워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해 놓고, 이제와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라고 항변한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이는 작품에 대한 불신이 배우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데, 마치 ‘최고다 이순신’의 아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최고다 이순신’은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드라마 캐릭터에 사용하면서 한 차례 논란이 불거졌고, 당시 이순신 역을 맡은 아이유는 그 논란 속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면 대중의 반응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껏 하지원이 출연했던 작품 가운데 방영 전부터 이렇게 홍역을 앓고 시작했던 작품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기황후>는 그녀의 연기 인생에 있어 커다란 오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황후>가 역사 왜곡 논란의 사례로 지목될 때마다 하지원 역시 언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원은 <기황후>가 끝나면 할리우드로 진출한다고 한다. <기황후> 촬영 때문에 놓친 영화도 3편이나 된다고 한다. 차라리, <기황후> 대신 조금 더 일찍 할리우드에 진출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과연 하지원은 역사왜곡 논란을 이겨내고 <기황후>를 살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기황후> 논란의 최대 피해자로 전락하고 말까. 순탄하게 달려온 그녀의 연기 인생이 의도치 않게 시험대에 올랐다. 적어도 <기황후>가 그녀에게 오점으로 기록될 ‘판단착오’가 아니었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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