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그래비티>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관객은 물론이고 평단으로부터도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고 있어서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버즈 올드린'과 같은 역사적인 우주비행사까지 <그래비티>를 극찬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유는 알폰소 쿠아론을 필두로 한 제작진이 우주 환경을 놀랍도록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버즈 올드린만이 아니라 여타 우주비행사와 천체물리학자도 동의했습니다. 반면에 영화 전체가 극도의 사실성을 띠고 구현된 것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천체물리학자인 'Neil deGrasse Tyson'은 <그래비티>의 과학적 오류를 몇 개 지적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도 이것을 인정하면서 '영화적으로 필요한 장치'로 이해해달라는 의미의 발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재미를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라고 하는 해묵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캡틴 필립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nswer (for fun)
■ 여지없이 드러나는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

익히 알려진 대로 <캡틴 필립스>는 실화를 기초로 한 영화입니다. 2009년에 소말리아 부근을 항해하던 미국의 선박이 해적에게 볼모로 잡혔다가 극적으로 풀려났던 사건이죠. 당시 선장이었던 리처드 필립스는 선원들을 대신하여 홀로 인질이 되기를 자처했고, 덕분에 대규모로 급파됐던 미군의 작전도 한결 수월하게 돌아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소말리아 해적들만 사살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습니다. 이와 같은 <캡틴 필립스>의 실화를 처음 읽었을 때는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한다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이건 이타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휴먼 드라마의 소재로 보였거든요. 뭐 폴 그린그래스도 색다른 장르에서 변신을 꾀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캡틴 필립스>를 관람했습니다.

아쉽게도 <캡틴 필립스>는 폴 그린그래스가 변신을 꾀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보면 그가 가진 특출 난 연출을 고스란히 반영한 영화였습니다. <캡틴 필립스>는 필립스 선장의 시점에서 줄곧 영화를 전개합니다. 이로 인해 관객은 철저히 필립스 선장에게 이입한 채로 보게 됩니다. 이런 설정은 영화를 긴박하고 박진감이 넘치게끔 만드는 작용을 하는데, 폴 그린그래스가 <캡틴 필립스>를 연출한 건 바로 이것에 주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민간 선박이 해적과 맞닥뜨리고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에 있었을 감정의 격변을 포착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캡틴 필립스>를 제가 예상했던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인재로 발생한 일종의 재난영화로서 가진 스릴러의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폴 그린그래스는 전작들에서 맘껏 주물렀던 것처럼, <캡틴 필립스> 역시 영상과 시간 그리고 필립스 선장의 심리를 세밀하게 쪼개고 조명하는 것으로 극에 불안과 긴장을 효과적으로 더하고 있습니다. 폴 그린그래스의 이 능력만큼은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에서 함께했던 크리스토퍼 루즈의 편집까지 가세한 마당이니 부족할 게 없죠. 다만 후반부에 들어서 미군이 필립스 선장을 구출하고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부터 드라마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필립스 선장과 해적들의 1 대 4였지만, 속으로는 개인 대 개인이었던 구도에 실로 넘볼 수 없는 위용이 간섭하자 <캡틴 필립스>는 본래 추구하던 바를 상실하고 마는 형국에 이릅니다.

폴 그린그래스도 이것을 아는지 극적인 긴장과 내러티브를 유지하려고 다각도로 애를 쓰는 게 보입니다. 필립스가 해적의 우두머리에게 "넌 어부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대목이나, 스나이퍼가 목표물을 확보하려고 시종일관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하지만 해적 네 명을 잡고 필립 선장을 구하려고 구축함 세 척과 네이비 실을 동원하여 작전을 펼치는 지점부터 <캡틴 필립스>는 이미 초기의 본질을 상실했습니다. 개인에게 천착했던 영화가 졸지에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해결하려고 드니, 이것은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마찬가지인 허무한 꼴입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캡틴 필립스>는 폴 그린그래스의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감히 말하자면, 아직은 그가 진득한 드라마까지 극에 녹여낼 수 있을 경지까지는 다다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울 수 있길 바랐으나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실화라서 스포일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하의 내용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Question (for thought)
■ <캡틴 필립스>는 왜 폴 그린그래스의 좋지 못한 선택인가

방금 <캡틴 필립스>는 결국 폴 그린그래스의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그나마 그가 이 이야기의 이면에 있는 핵심마저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자그마한 위안이 됐습니다. 만약 폴 그린그래스가 <캡틴 필립스>를 전통 서부영화와 같은 관점으로 연출했더라면 비판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할리우드 영화의 특징인 선과 악의 이분법에 입각하여 소말리아 해적을 쉬이 악당으로 규정했더라면 굉장한 실망을 자초했을 것입니다. 이런 명백한 흑백논리는 할리우드에서도 액션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폴 그린그래스의 특기에 해당하는 분야 중 하나라서 조금은 우려가 됐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긴 폴 그린그래스가 그리 단순한 사고로 연출하는 감독은 아니긴 하죠.

기대에 부응하고 우려에 반발하고자 폴 그린그래스는 <캡틴 필립스>에서 전 세계적인 현상을 수면에 제시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캡틴 필립스>는 악명이 자자한 소말리아 해적의 근원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소말리아 해적은 분명 민간인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기에 동정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대신에 왜 그들이 해적질을 일삼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의문을 품어볼 법도 합니다. 최빈국에 속하는 소말리아는 최소한의 삶의 영위가 필요한 국민들을 해적으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해적질은 <캡틴 필립스>에서도 나오듯이 '사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즉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은 소말리아 해적에게 있어서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목적은 그 수단을 통한 부의 획득이죠. 영화에서 이들이 몇 차례 "우린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에도 그런 주장이 담겨있습니다.

단 네 명의 소말리아 해적에게 미국의 선박이 볼모로 잡혔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최빈국의 개인이 최부국의 개인을 잡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상황 자체가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죠. 이것은 위협인 동시에 발버둥이고 애원입니다. <캡틴 필립스>에서 해적의 두목이 역으로 인질로 잡히자 대뜸 "난 미국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다거나, 돈을 벌어서 꼭 미국으로 가서 좋은 차를 타면서 살겠다고 하며, 해적질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필립스 선장의 회유에 "미국에서는 가능하겠지"라고 답하는 것 등은, 소말리아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빈국의 열악한 처지를 피력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하는 실질적 원인이죠.

같은 맥락에서 어리숙한 해적의 두목을 기만하여 사태를 해결하는 것과, 끝내 잡힌 그가 자신이 바랐던 미국에 범죄자의 신분으로 간다는 것도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한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범죄자가 되어서야 미국에 갈 수 있는 자의 비애 또는 부를 좇아서 간 미국에서 결국은 범죄자가 되고 마는 숱한 빈곤층의 삶을 대변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결말에 이르러 미군의 개입을 기점으로 퇴색된 것은 심히 유감입니다. 말했다시피 <캡틴 필립스>의 결말부는 결과적으로 폴 그린그래스가 택한 이야기가 두 갈래로 나뉘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빈곤이 어떻게 해서 악순환을 낳고 있는지를 소재로는 삼았으나 수면 밖으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입니다. 설상가상 할리우드 영화의 흔하디흔한 가족주의와 영웅주의까지 간섭하는 탓에 <캡틴 필립스>의 가치는 상당수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 결과로 이어졌을 것도 같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먹힐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 <캡틴 필립스>의 진실

또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캡틴 필립스>가 실화를 기초로 했을지언정 온전한 진실을 다루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뉴욕 포스트'와 'CNN'의 기사에 따르면, 선박에 타고 있던 다수의 선원들은 <캡틴 필립스>가 실제로 벌어졌던 것과는 다른 부정확한 묘사를 담았다고 하여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알고 보니 필립스 선장은 항로가 위험하다는 걸 미리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묵인하면서 선원들에게 감추고 강행했더군요. 이유는 뻔합니다. 경비를 절약하려고 그랬죠. 얼마든지 <캡틴 필립스>의 주제로 결부시킬 수 있는 것이었으나 영화가 추구하던 것과는 달라서 제외한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것은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캡틴 필립스>의 제작진이 사전조사에서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필립스 선장은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라서 10년이 넘도록 다들 싫어했고,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영웅은 절대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오히려 선원들의 만류조차 무시하고 위험을 부추겼으니 <캡틴 필립스>는 재미를 위한 각색을 넘어 완전히 현실을 왜곡한 셈입니다. 제작사인 소니에서는 영화화에 앞서 일부 선원들에게 5,000불을 주면서 이를 발설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선원들은 선박회사 등을 상대로 고소하여 재판을 진행 중입니다. 결국 <캡틴 필립스>는 또 한 명의 영웅 만들기에 전념한 미국의 성과이자 선전물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필립스 선장은 선원들의 문제 제기를 모두 인정했으며, 본인은 절대 스스로를 영웅시하려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웅과 미담이 필요한 언론이 나서서 그를 포장하고 우상화시켰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네요.

★★★☆

덧 1)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스 선장이 실존인물과 같든 다르든, 톰 행크스의 연기는 놀라웠습니다. 특히 결말에서.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