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으로 예정된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일정과 공동주택의 높은 주거비율을 감안할 때, 공동수신설비 문제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2006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전체 공동주택 중 83%가 공동수신설비를 통한 방송 수신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방송 수신환경 구축이 전제되지 않은 디지털전환은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정통부가 발표한 공동수신설비 정책방안은 시점상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매체선택권 보호와 디지털방송 수신환경 구축을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정통부는 관련 법령의 조속한 개정과 더불어, 기존 공동수신설비 복구 및 개선, 특정매체의 설비 독점 규제를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공동수신설비는 공동주택 거주 국민의 재산

▲ 티브로드, CJ케이블넷, HCN, C&M, 큐릭스 등 케이블TV업계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청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있다. ⓒ정은경
최근 정통부 정책방안을 두고 케이블 업계가 대규모 시위 등 실력행사를 통해 저지운동을 벌이고 있다. ‘위성방송의 공동수신설비 허용은 결코 안 되며, 이를 허용할 경우 유료방송시장이 붕괴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 2004년에 위성방송의 지상파재송신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케이블업계가 실력행사를 통해 내세웠던 주장과 동일하다. 즉, 위성방송의 지상파재송신이 유료방송시장을 붕괴시킨다는 것이었다. 케이블업계가 판단하고 있는 ‘유료방송시장’은 과연 무엇일까?

1995년 개국 이후 케이블TV의 가구 점유율은 전체 77.3%에 이른다. 케이블업계는 그간 지역 독점사업자로서 저가방송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과의 번들상품, 공동주택 공동수신설비 독점사용 및 단체계약 등을 통해 성장해왔다. 국내 유료방송시장은 다름 아닌 케이블업계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수신설비 정책 반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유료방송시장 붕괴’는 그간 유지되어 온 케이블TV의 ‘공동수신설비 독점 해소’를 의미한다. 공동주택 입주자들의 소유물인 공동수신설비를 특정사업자가 독점한다는 것은 입주자의 선택권 및 매체 간 공정경쟁이 제한됨을 의미한다. 케이블TV는 이미 오래전부터 분리배선 규정 등을 통해 CATV설비 설치의 법적 보장을 받고 있다. 심지어 CATV설비의 법적 설치대상 범위는 무료방송인 지상파 MATV설비 보다 포괄적으로 확대 적용받고 있는 실정이다. 케이블업계의 실력행사는 시청자의 매체선택권을 볼모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공동수신설비는 공동주택 거주 국민(시청자)의 재산으로 그 이용권한 또한 국민의 것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재산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으며, 합법적인 어떤 방송이든 공동수신설비를 통해 수신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이블TV가 공익적 방송사업자라면 사업자 이기주의로 일관하기 보다는 공정경쟁과 시청자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권리를 희생양으로 한 케이블업계의 저지운동은 오로지 업계 이익만을 위한 떼쓰기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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