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응답하라 1997>이었다. 서인국, 정은지라는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신인(?)들이 드라마의 주연을 맡았고, 그 외에 등장하는 조연들도 '은지원', '호야'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배우도 없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2012년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가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는 없었지만, <응답하라 1997>에는 뛰어난 연출과 각본과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응칠신드롬을 만든 장본인들은 아마도 이러한 공식을 정확하게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응답하라 1994> 역시 <응답하라 1997>과 마찬가지로 스타성이 떨어지는 배우들로 드라마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의 후속작인 만큼 차기작의 흥행에 대한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제작진은 '스타'를 투입하고 '물량'을 키운다. 아주 일반적인 공식이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4>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를 배제하고 인지도가 적은 배우들을 배치했다. <응답하라 1994>는 반올림 이후로는 이렇다 할 인상을 주지 못했던 '고아라'와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는 '정우', 최근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중적 인지도는 적은 '유연석' 등 어떻게 보면 <응칠>보다도 더 대중적인 인지도가 적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대신, 제작진은 <응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이유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경기와 현재 상황을 디졸브시키거나 적절한 음악과 영상을 조화시키는 연출은 더욱 세밀해졌다. 성나정(고아라)이 쓰레기(정우)를 물 때, 삼천포(김성균)가 치는 한메타자연습에서는 '첫키스'가 등장한다. 이런 교차연출은 <응답하라 1994>가 가진 이야기를 힘을 극대화 하고 있다.

'서인국'이라는 좀 확실한 주인공이 아닌 비중이 비슷비슷한 남자 배우 5명을 투입함으로써 <응칠>이 주었던 '남편을 추측하는 재미' 또한 더욱 극대화시켰다. 더불어 캐릭터 한명 한명을 제대로 살리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2화만에 시청자들이 캐릭터와 캐릭터들의 관계에 빠지게 한 것은 확실히 대본의 힘이다. 1994년이라는 시기적 코드 안에서 그 시대를 겪은 이들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환경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만큼 <응답하라 1994>의 대본이 철저히 계산된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연출과 대본의 판 안에서 배우들이 활개를 친다. 고아라는 좀 과장되어 보이지만 대본과 연출의 힘으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성격이 됐고, 현재 고아라와 가장 많이 맞상대하는 정우는 그런 고아라의 과장된 연기를 안정되게 받아주면서 둘 사이의 연기 합을 훌륭히 조율한다. 삼천포역의 김성균은 나올 때마다 혼자서 장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존재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해태역으로 등장하는 손호준 역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큰 활약이 없는 유연석 또한 이미 좋은 연기력을 이미 입증했기 때문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처럼 <응답하라 1994>는 전작의 성공을 발전적으로 답습한다. 물량을 키우고 스타를 키우는 것이 아닌, 연기 잘하는 배우와 재밌는 대본, 그리고 훌륭한 연출에 다시 한 번 목매달면서 세세한 부분들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이 같은 방식은 충분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재밌고, 공감되며, 때로는 가슴을 조인다. 단 2회 만에 말이다. 어쩌면 <응답하라 1994>는 전작의 인기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응답하라 1994>가 <응답하라 1997>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순간 <응답하라 1997>은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로서 하나의 클래식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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