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창 남양유업 등등 소위 ‘갑의 횡포’가 사회적인 논란으로 비화될 때 만화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 충격이 되었었다. 문제가 되었던 곳의 이름은 <키위툰>(http://www.kiwitoon.com/). 최근 창간한 <레진코믹스>와 같이 온라인 사이트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만화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이다. <레진코믹스>와 비슷한 시점에 네이버 ‘도전 만화가’ 등의 커뮤니티에서 아마추어 작가로 활동하던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던 이곳은, 결국 웹툰 작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카툰부머’를 통해 계약서가 공개되면서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키위툰>과 작가가 계약한 내용은 그야말로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작품의 저작권을 작가가 아니라 회사가 가져가는 것은 물론, 작품에 대한 광고 수익도 모두 회사의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작품에 문제가 생겨 서비스를 중단하고 싶어도 작가가 <키위툰>에 작품 중단을 요청할 수 없었으며, 만약 연재를 중단하고자 할 경우 고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완결분까지의 원고를 제출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만화가를 그저 만화를 그리는 ‘기계’ 수준으로 취급한 셈이었다. <키위툰> 직전에 만화는 아니지만, 일러스트계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지녔던 매체 <팝픽>이 사실상 무보수에 가까운 수준으로 작가들과 계약한 정황이 드러나서 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던 상황에서 <키위툰>의 불공정 계약이 알려진 것은 그야말로 화재 현장에 기름을 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9월 2일 <키위툰>에 연재하던 작가들은 회사를 향해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고, 9월 11일 만화가를 대표하는 단체 중 하나인 ‘한국만화가협회’는 <키위툰>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9월 10일 <키위툰>은 성명서를 발표했던 작가들에게 민형사상의 소송을 걸겠다고 선언해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9월 12일, <키위툰>은 자신들의 변호사를 통해 작가 전원의 요구대로 ‘계약해지’를 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사이트와 앱에 게재되던 만화들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예전과 달리, 문제가 알려지고 나서 작가들은 물론 협회가 비교적 빠르고 기만하게 대처를 했기에 거둘 수 있는 최선의 성과였다.

‘제2의 키위툰’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하지만 이로써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겉으로 보기엔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니 긴장을 놓아도 될 것 같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안이한 선택이다. <키위툰>의 문제는 끝났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키위툰>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만화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예전부터 만연해있던 창작노동에 대한 비상식적 처우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본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1960 ~ 1980년대는 물론이고 잡지 만화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에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였다. 그것도 당대 무수한 인기를 누리던 작가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예전에 게재했던 칼럼(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43)에서도 발췌했었던 작가들의 증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잡지에 연재를 할 당시, (출판사에서) 창작자에 대한 재투자나 작가에 대한 보호는커녕 배려조차 없었다. 계약 문제로 인해 제대로 받지 못한 돈이 수두룩하다.”
- 만화가 원수연 (2011년 2월 17일, 국회 의원회관 만화진흥법 공청회장에서 나온 발언을 재구성하였음.)

“서울문화사의 경우, 7월에 나오는 8월호의 고료는 8월 말쯤에 나오는 상황이고(사실 6월에 그린 원고죠), 인세는 정말 심각하게 늦게 지급되고 있습니다. 6개월 늦는 건 예사이니까요. 그 탓에 생활이 계획적이지 못하여 고민입니다. 카드값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될 뻔하기도 했으니까요. (중략) 그냥… 출판계는 원래 여유를 부려서 돈이 잘 돌 때 일괄지급… 그런 생각들이 지배하고 있는 듯한….”
- 만화가 양여진 (2001년 6월 <두고보자> 4호, <만화가와 출판사의 관계맺음에 대하여>)

이후 한국 만화의 주된 매체는 잡지에서 웹툰으로 이동했고, 그리고 서울문화사의 <윙크>를 비롯해 <레진코믹스>, <카툰컵>과 같이 앱을 기반으로 하는 ‘앱진’이 속속 등장하면서 조금씩 이동하거나 새로운 축이 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를 기반으로 한 만화가 등장한 만큼, 만화가들의 노동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예전보다는 좋아졌다. 만화잡지 원고료가 10년 이상 동결된 것에 비해, 웹툰 원고료는 느리지만 조금씩 오르고 있으며 어느덧 평균 원고료가 만화잡지와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네이버가 원고료와 별도로 광고 수익, 유료 웹툰 판매수익 등을 작가들에게 차등지급하는 PPS 등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만화가들의 평균 수익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새롭게 데뷔하는 작가에 대한 원고료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거나 겨우 도달하는 수준이며, 네이버가 도입한 PPS 또한 성과급(인센티브)에 가까운 시스템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만화가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웹툰 이후로 새롭게 등장한 매체들은 너도 나도 ‘웹툰의 대항마’를 외치지만 정작 작가들의 창작 노동에 대한 처우는 웹툰보다도 못한 케이스가 많다. 문제가 불거졌던 <키위툰>의 경우도 ‘Beyond The Webtoon’이라는 표어를 사용했다. 웹툰을 뛰어 넘는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들이나 시스템이 웹툰 이상의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작가들에게 대한 대우는 웹툰을 뛰어 넘기는커녕 발아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몇몇 매체는 작가들에게 ‘광고 수익’을 주겠다고 유혹해 놓고서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최하 수준으로 지급하는 등 작가의 노동 환경을 나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키위툰>을 제외하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비록 알려지지 못하고 묻혔지만 작가가 직접 문제를 제기한 케이스가 있었다. 바로 <빨간머리 앤> <사각사각> <토리 Go! Go!>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김나경이다.

김나경 작가는 작년 5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런칭한 일종의 ‘앱진’적 성격을 지닌 만화 서비스 <오늘의 웹툰>에 <보바쏭>이라는 작품을 연재했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매우 충격적인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원고료를 광고 수익으로 받기로 계약하고 연재했는데, 광고 수익이 들어오지 않아 지난 7개월 동안 돈을 받지 못한 채 계속 연재를 했었고 결국 할 수 없이 연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최근 들어 인기가 줄긴 했지만,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던 작가에게도 사실상 <키위툰>이 진행했던 불공정 계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으로, 무일푼의 연재를 진행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불공정한 계약으로 심각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는 작가는 도처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노동권에 있다

누군가는 <키위툰> 문제에 대해서 작가가 계약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인식하는 등 ‘계약을 잘 하면 된다’로 해결책을 내렸다. 또 누군가는 이게 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결론을 내렸다. 그러한 주장에도 일리는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를 노동자로 바꿔보면, 이는 상당히 아쉬운 견해이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등의 노동 문제가 터지는 것은 노동자가 단순히 계약을 잘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인가? 최악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왜 항의를 하지 못하고, 회사가 제시한대로 순순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구조적 문제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최소한 어느 정도 노동권과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퍼져있는 곳에서는 어느 정도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만화를 비롯한 문화 분야의 노동에 있어서는 인식이 아직도 일천한 상태이다.

즉,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문화가 산업의 영역으로 접어든 이후 크게 개선되지 않은 노동 인식에 기반하여 벌어진 사건이다. 문화계에서 ‘예술가소셜유니온’이나 노동당의 문화예술위원회, 제도적으로는 예술인복지법과 같은 시도가 있지만 아직 부족하며 만화계에서는 특히나 더 부족한 상황이다. 노동 문제를 제기하고 조직하는 형태가 다른 분야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종사자 모두의 참여와 고민, 실천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만화계의 경우는 기존에 존재하는 다양한 만화인 협회를 조금씩 노조, 또는 프로야구의 ‘선수협’과 같은 형태로 전환하는 것도 고민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이 없으면 먼 훗날 또 다른 매체로 만화가 이동해도 <키위툰>과 같은 업체는 몇 번이고 다시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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