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집행유예 판결 관련 주요신문 보도에 대한 논평 -

16일 경영권 불법 승계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조세포탈 등에만 일부 유죄가 인정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이 전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과 관련한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차명주식 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와 증권거래법의 보고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일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특검의 기소조차 ‘무죄’, ‘면소’ 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해 시민단체와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경제개혁연대 등 삼성 문제를 다뤄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그룹 경영진의 범죄행위에 재판부가 면죄부를 주었다’며 법원의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인터넷에서도 ‘사법부가 재벌 앞에서 사법정의를 내팽개쳤다’는 누리꾼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17일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이번 판결과 관련한 기사와 사설을 실었는데,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8건, 10건의 기사를 싣고 가장 적극적으로 다뤘다.

한겨레·경향, “재벌 봐주기·면죄부 판결” 비판

<한겨레>
1면 <이건희 전 회장 집유…편법승계 ‘면죄부’>
2면 <‘에버랜드 무죄’ 기이한 논리/ “주주 협박 등 불법행위 없는한 절차적 문제 없다”>
<“비서실 지시로 실권했어도 배임 아닌 증여”>
4면 <시민단체·전문가 반응 “배임 막아야 할 법원이 배임 부추겨” 비판>
<‘에버랜드 판결’ 1년전엔 “유죄”>
<선고공판 법정 표정/이 전회장 ‘여유’…“도의적 책임 생각해보겠다”>
<1심 재판장 민병훈 판사/“경제정의 실천” 날세우나 했더니…‘중형’ 예상깨고 끝내 무죄 판결>
31면 <사설/삼성 앞에 무너진 사법 정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한겨레는 사법부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재판부가 내세운 무죄 및 면소 판결의 논리들을 따져보는 한편 이런 판결이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1·2심 판결과 모순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의 반응을 전했다.

사설 <삼성 앞에 무너진 사법 정의>는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 “사실상 경영권 불법 승계를 법적으로 추인해 준 셈”이라며 “권위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사법 정의와 경제 정의를 함께 내팽개쳤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실망을 넘어 경악스런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애초 삼성 사건은 글로벌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 재벌의 전근대적 지배구조와 경영권의 불법 승계 관행, 비자금 따위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을 좋은 기회”였음에도 “삼성 특검이 비자금 문제 등 핵심 의혹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부실수사로 일관하더니, 이젠 법원조차 경영권 불법 승계에 전면적인 면죄부를 주면서 그 역사적 책임을 방기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1면 <삼성 이건희 전 회장 집유>
4면 <‘편법증여’ 법원간 엇갈린 판결…논란 일듯>
<이건희 “사회적 책임지겠다”>
<민병훈 판사 “검, 탈세로 접근 했어야”>
<“같은 사안에 두가지 결론 수긍 못해”>
<‘폭로’ 262일·특검 189일 만에 기소 이후 3개월…255명 소환>
<13년간 5차례 구속위기 넘겨>
5면 <“유전무죄 되풀이…국가 권위 무너진 날”>
<삼성, 안도속 “노 코멘트>
27면 <사설/‘사법정의’ 외면한 삼성 솜방망이 판결>

경향신문도 “에버랜드 CB편법증여 사건이 앞서 벌어진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한 재판에서는 유죄가 인정된 바 있어 엇갈린 판결에 대한 논란이 일 전망”이라고 지적하며 각계의 다양한 입장을 전했다.

사설 <‘사법정의’ 외면한 삼성 솜방망이 판결>에서는 “법원이 놀랄 만큼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며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편법증여로 이뤄진 경영권 승계과정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 판결 내린 것은 “재벌 봐주기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이 전 회장이 무죄라면 에버랜드 편법증여와 관련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주식전환이익금 등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재판부는 주요 쟁점 대부분에 대해 삼성 측 손을 들어줬다”며 “법원은 이번 판결로 또 한번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비난을 떨치기 어렵게 됐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무리한 수사 없었나?” 황당한 반문

반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한겨레·경향과 비교해 적은 양의 보도를 내보냈으며, 특히 중앙일보는 재판부의 판결을 무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삼성 감싸기’에 나섰다.

1면 <에버랜드 CB발행 무죄 선고>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혐의와 삼성 SDS BW발행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무죄’, ‘면소’ 논리를 전달하는 데 치중했고, 유죄 판결을 받은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중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판결 부분만을 보도했다.

5면 <주주들 스스로 용인한 손해…배임죄 묻기 어려워>, <선고 뒤 포토라인 선 이건희 전 회장 “사회적·도의적 책임은 계속 지겠다”>, <“이젠 경제살리기에 기업인들 매진해야”>에서도 ‘에버랜드 CB발행 배임죄 안된다’는 재판부의 판결과 선고 공판 분위기, 재계 반응만을 다뤘다.

나아가 사설 <삼성, 세계 초일류기업 계기 삼아야>에서는 부실 수사로 ‘특별 변호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특검팀에게 ‘무리한 수사가 아니었나 돌아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사설은 “법원의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 경영권 승계 논란의 핵심이었던 에버랜드 CB 발행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며 재판부의 에버랜드 CB 무죄선고를 강조했다. 또한 “이날 판결로 특검팀은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공소사실 가운데 주요 수사 결과로 내세워온 부분들이 모두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수사를 맡았던 특검팀으로서는 혹시라도 수사 과정에서 무리가 없었는지 차분히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1면 <이건희 전 회장 집유…‘에버랜드 CB 무죄’>에 이어 12면 <삼성그룹 1심 선고 재판부 판단은>에서 재판부의 판결 논리만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 전 회장 “국민께 폐 끼쳐 죄송” 특검 “공소사실별 판결에 모순”>은 이 전 회장의 재판판결 분위기와 함께 조준웅 특검과 경제개혁연대, 김용철 변호사의 입장을 짧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만큼 재판부에 대한 비판을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중앙·동아일보와는 달리 이번 판결의 문제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이건희 전회장 집유5년 벌금 1100억>에 이어 8면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에 ‘면죄부’>에서 “특검의 부실 수사와 성의 없이 재판에 임한 태도에 따른 예견된 결론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며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에버랜드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사장의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다른 사건의 1,2심 판결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 4월 특검이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밝히지 못하고, 이 전 회장 등 삼성임원들을 불구속 기소할 때부터 법조계에선 ‘실패한 특검’이라는 말이 나왔었다”며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면서 요란하게 출범한 ‘삼성특검’은 결국 ‘세금포탈’ 하나 처벌하고 허무한 1막을 내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애초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제기한 삼성 비리 의혹은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였다. 그러나 조준웅 특검은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 무혐의 혹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법원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마저도 ‘무죄’ 판결했다.

‘삼성 특별검사’가 아니라 ‘삼성 특별변호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조준웅 특검팀이 ‘반발’할 정도로 노골적인 ‘삼성 면죄부 주기’ 판결이 나왔음에도 일부 신문들은 재판부의 입장만 전했다. 특히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는 ‘삼성그룹 사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중앙일보에 묻고 싶다. 중앙일보의 지면은 삼성의 것인가?

2008년 7월 1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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