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굿닥터’ 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등장인물의 러브라인을 두고 장난을 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메디컬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삼각 혹은 사각관계에 빠져 응급실의 상황만큼이나 힘들고 복잡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굿닥터’ 의 네 명의 주인공들은 그런 위험한 놀음에 시달리지 않은 채 종반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박시온(주원 분)과 차윤서(문채원 분), 김도한(주상욱 분)과 유채경(김민서 분) 커플은 정해져 있었다. 오랜 동안 차윤서가 김도한을 짝사랑 해왔다는 설정으로 야릇한 이상 기류를 만들어내는 듯했지만, ‘굿닥터’ 는 그것을 극대화시켜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거나 반전의 커플을 애써 짜 맞추려 하지는 않았다. 복잡한 사각관계로 흥미를 유발시키려는 꼼수를 부리지 않은 것이다.

그리 오래 가지 않아 김도한은 유채경에게로 다시 돌아갔고, 차윤서는 박시온의 마음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커다란 혼란스러움이나 방황 없이 처음에 있었던 그 자리로 되돌아간 네 명의 주인공이었다. 여기에 박시온과 차윤서의 사랑은 남다르다.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그 어떤 만남보다 소중하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지만 또한 가장 흔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랑… 그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것 같아 그들이 참 예쁘다.

자폐 증상을 지니고 있는 레지던트 박시온. 그에게 끌리는 차윤서의 마음이 정말 대단한 걸까? 남들과 다른 모습의 그임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때문에 차윤서의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긴 하다. 하지만 사랑은 원래 이런 것이다. 차윤서를 기특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아직 잘 모르고 있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 ‘굿닥터’ 는 차윤서의 친구,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말을 빌어 세상의 이목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차윤서의 친구는 차윤서를 찾아가 어머니를 설득시킬 수 있느냐고 다그치면서 결혼할 거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라는 말을 한다. 병동에 있는 동료들 역시 뒤에서 속닥거리며 그들의 사랑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럼에도 차윤서는 박시온과 공개 커플임을 선언한 것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도 갖지 않는다. 박시온 역시 동료들의 뒷소리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커플로 당당하게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후련하기만 하다. 마지막 한 회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게 마무리가 될 테다. 아직 ‘굿닥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나가 남겨져 있으니까 말이다.

차윤서와 박시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서도 아니다. ‘굿닥터’ 에서 그들의 사랑은 이러한 외부적인 압박으로 인해 빛나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사랑의 본질을 비추어 볼 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수많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가 있다. ‘지금이야 서로 죽고 못살지. 그런데 사랑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야. 결혼은 현실이라구!’ 어느 순간부터 이 대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정의가 되어버렸다. 마치 이것이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이 도를 터득하듯 알아낸 현명한 깨달음이라고 되는 것처럼…

이 말처럼 모순적인 말은 없다. 사랑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이유는 사랑이라 말하는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랑만큼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없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부자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며,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이 희망차고 미래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내 안에 없다면 난 사랑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 어떤 조건이나 요구사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며 위해주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상대의 무엇, 심지어 마음까지도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질 않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우리의 실제 삶은 자꾸만 사랑의 의미를 왜곡시킨다. 그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눈에 보이는 근사한 환경과 사랑을 일치시키고 있다는 것이며, 사람들의 이목에 합당해야만 사랑이라고 규정짓고 있다는 것이다.

‘굿닥터’ 의 박시온과 차윤서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과연 저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저 둘만 좋으면 되는 건가?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도 둘이 의사라 형편이 어렵지는 않겠네. 그래도 좀 낫겠네’ 이는 아직 사랑의 힘이 어떠함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박시온과 차윤서는 대단하거나 힘겨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짜 사랑의 본질을 따라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이고 몸이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행복한 이들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이들도 행복하게 만든다. 박시온과 차윤서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완소 캐릭터들이다.

사랑을 하고는 있지만 행복한지는 모르겠다는 말처럼 우매한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다라는 뜻이며, 사랑의 본질이 아닌 다른 외부적 조건들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엔 거짓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굿닥터’ 의 박시온과 차윤서는 그 거짓 사랑에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이제 그들에게서 사랑의 본질, 그 진짜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때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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