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야 이명박 정부 시절 금기아이템 중 하나였던 ‘4대강 사업’ 문제가 자주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시청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꼭 볼 만한 프로그램”이라는 호평과 “왜 이런 걸 이제야 방송하느냐”는 따가운 지적. 그렇다면 프로그램을 기획, 연출한 당사자는 이런 두 가지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5년 전부터 4대강 아이템을 생각해 왔고, ‘4대강과 관련된 사람은 다 만나보자’는 마음을 먹고 이번 촬영을 진행했다는 송영재 PD를 방송 이틀 후인 지난 1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만났다.

“정말 반향이 있긴 했나요?”

<SBS스페셜> ‘4대강의 반격’은 ‘물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2부작 시리즈물 중 1번째 편으로,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 화제가 됐다. ‘4대강의 반격’에서 시청자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고돼 왔던 숱한 경고들이 이제는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됐다는 점과, 당시 얼굴마담으로 나섰던 4대강 전도사들과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화려한 ‘말잔치’를 벌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방송 직후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캡처
4대강이 만들어 낸 여러 부작용 앞에, 분노와 허탈함이 가득한 시청 후기가 줄을 잇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SNS 상에서는 해당 편 링크를 걸어 추천하는 사람, 4대강 관계자들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 그 당시 언론의 직무유기를 꼬집는 사람 등 다양했다.

‘4대강의 반격’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방송 도중과 끝난 이후까지 ‘4대강’, ‘이명박’, ‘SBS스페셜’ 등이 트위터 내 실시간 트렌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방송에 나왔던 금강 암모니아 검출량 기준치 초과, 영주댐 건설 목적에 대한 의문 등을 정면으로 다룬 기사도 연달아 나왔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만든 당사자인 송영재 PD는 도리어 기자에게 “정말 반향이 있긴 했나요?”라고 물었다.

“이번에 묻혀버리면 4대강 문제를 공론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굉장히 허탈하다. 반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허탈한 마음이 크다. 오히려 4대강이라는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도 든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 프로그램이) 4대강 문제를 재점화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든다. … 시기 가늠을 잘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일을 주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국정조사를 앞두고 국회에 어떤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 (만든 것인데) 아쉽다”

송영재 PD는 다른 거대한 이슈들에 밀려 어렵게 전파를 탄 4대강 문제가 ‘메아리도 없는 외침’이 될까봐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MB정권 당시, 사력을 다해 추진한 사업을 향한 반대의 목소리는 묵살되거나, 반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문제점을 파헤친 이들에게는 보복이 뒤따랐다. 올해 1월과 7월 감사원 발표를 통해 사업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이후 주요 방송사에서 4대강 문제를 조명했는데, 조용히 지나간다면 이 일이 다시 주목받기는 어렵다는 의미였다.

▲ 지난달 29일 방송된 '4대강의 반격' 캡처

‘때늦은 보도’를 지적한 시청자들의 반응에는 “제가 무능하고 비겁해서 그렇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 나간 게) 언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밖에 안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자기 모멸감까지 들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4대강 사업은 말잔치였다”

‘4대강의 반격’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취재원과 현장의 모습이 등장한다. SBS가 단독 입수한 자료도 이번 기회를 통해 상세히 공개됐다. 취재 기간이 짧지 않았을 듯했다.

“4대강 관련 인물을 다 만나보겠다는 자세로 촬영을 하셨다던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송영재 PD는 “결국 심명필(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 정종환(전 국토해양부 장관) 두 명밖에 못 만났다”며 “8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곧바로 이어진 “생각은 5년 전부터 했다”는 답이 인상적이었다.

“방송된 내용은 사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쭉 관심 갖던 사람들에게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네’라고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4대강 문제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만들게 됐고, 엊그제 방송이 나간 것이다. 4대강 사업은 말잔치였다. 화려한 말들이 동원됐지만 전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 간극을 일반 시민과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켜줄 수 있을까, 하는 목적을 갖고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취재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송영재 PD는 “취재라기보다는 자료싸움이라고 생각했다. 5년 동안 벌어진 일만 주워 모아도, 말잔치 속에서 난무했던 미사여구들만 찾아서 확인하는 작업을 해도 충분히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며 “워낙 자료가 방대해 더 철저하게 하나하나 챙길 수 없는 아쉬움은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 상태 하천도 변해가고 있어”

‘4대강의 반격’에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인 ‘영주댐 건설’ 이야기가 나온다. 2011년 다 마무리된 줄만 알았던 4대강 사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송영재 PD는 4대강 사업이 결국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하천들까지 모두 삼키게 된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영주댐은) 형태는 이미 갖춰져 있고 조금 있으면 물도 가두기 시작할 거라서 완공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주댐을 기점으로 한 내성천 부근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 상태의 하천인데 그곳도 모래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상류에서 막아놨기 때문이다. 원래는 상류에서부터 아주 작은 돌들이 흘러들어오며 깨지고, 낙동강을 지나 바다까지 가는데 위에서 댐이 막히니 모래 유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부 낙동강유역청에서는 4대강 사업의 후속으로 보를 만들려고 한다. 그 얘기를 하려다가 양이 넘쳐서 못 담았다. 이번 방송 나간 게 계기가 돼 사람들이 하천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역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지역민들이 앞장서 막아낼 수 있길 바라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영주댐 건설보다 끔찍한 건 현재 내성천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과 (국토부에서) 내성천을 4대강 사업으로 더 확실하게 박살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해서 ‘4대강’ 이슈화하고 싶어”

▲ SBS스페셜 '4대강의 반격'의 송영재 PD. 송영재 PD는 방송 후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가 금방 사그러지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미디어스
송영재 PD는 인터뷰 내내 ‘4대강 문제’가 묻히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4대강의 반격’을 보고 난 뒤 송영재 PD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청자의 반응을 이야기했더니 “그럴 일은 없다”면서도 “지금은 심의위에 올라가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해서 (4대강 문제를) 사회적 이슈화를 더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조용하게 흘러가버리면 그건 정말 (방송)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더 좋은 시점이 됐을 때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 반향 없이 지나가버리면 (다시 문제제기를 했을 때) ‘지난번에 했잖아’라고 또 묻힌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 때가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 감사원 발표 이후 첫 국정감사고, 새 정권이 들어와 지난 정권의 문제점을 짚는 때이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했잖아’라는 말이 면죄부가 되기 시작하면 누구도 다시 (4대강 문제를) 다루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방통심의위에 제기를 하거나 해도 고마울 것 같다(웃음). 조용한 것보다는 논란이 지속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지난해까지 <물은 생명이다>를 중심으로 환경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해 왔던 송영재 PD는 현재 고정으로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없는 상태다. 오랜만에 시청자들 앞에 작품을 선보인 것. 다음 작품은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

“환경 관련 기획은 꾸준히 하고 있다. 회사에서 승인되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작품이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모른다. 다만 환경 관련된 의제를 더 많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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