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임창정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아니다. 임창정이 현란한 개다리춤으로 ‘여보세요’를 부르는 건 예고편에 불과했다. 5일 방영된 <SNL 코리아>는 임창정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셀프 디스로 웃음의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크루 정성호가 임창정에게 “새 장가는 어떠냐”고 능청맞은 애드리브를 날리는 걸 시작에 불과했다.

‘국민 욕동생’ 김슬기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정명옥에게 한바탕 욕 세례를 당하는 것으로 임창정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제공하고 있었다. 콩트 ‘한국대중음악사’에서는 하도 목탁을 두들기다가 목탁이 망가져서 생방송 중 신동엽을 빵 터지게 만드는 방송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 웃음을 제공한 건 임창정이라기 보다는 <SNL 코리아>의 크루였다. 단 2회밖에 방영하지 않았지만 큰 화제를 낳고 있는 콩트가 있다. ‘GTA’ 시리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작 ‘GTA 조선’에 부아가 난 김민교는 게임가게 주인 김원해에게 새로운 게임을 추천받는다. ‘GTA 경성’이다.

이완용으로 플레이하다가 거지왕에게 한껏 낭심을 두들겨 맞은 김민교의 옆에는 <야인시대>의 김영인이 “내가 고자라니”라는 대사를 날리며 이스테 에그 마냥 카메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생의 집에 들어가 기력을 회복하던 이완용이 고자가 되자 기생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장면은 쏠쏠한 재미를 더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팬이 주목할 만한 콩트는 ‘응답하라 2013’이었다. CJ E&M의 효자 프로그램인 <응답하라 1997>의 제목만 패러디했지, 내용은 영화 <프리퀀시>의 패러디였다. 한화 팬들에게는 야속할 법하지만 한화로 속앓이를 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 신동엽에게 응원하는 팀을 바꾸라고 아들인 김민교가 조언함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는 ‘응답하라 2013’은 영화 팬이 주목할 만한 콩트임에 틀림없었다.

주목할 만한 크루는 김민교 외에도 또 한명 더 있었다. 유세윤이었다. 콩트 ‘워킹데드’에서 좀비에 물려 감염된 유세윤의 능청맞은 연기는, 이전 콩트에서 성향이 다른 두 보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두 보스의 취향을 조합한 개그로 시청자를 즐겁게 만든 바 있다. 이번에는 정명옥과 김원해를 좀비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2층 방청객의 자리까지 성큼 뛰어올라가 방청객을 자지러지게 만든 설정은 유세윤이 SNL 안에서 새로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폐지된 ‘글로벌 텔레토비’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시사 패러디 ‘개구쟁이 스덕후’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는 정명옥이 연기하는 투덜이 스덕후다. 엑소의 사생팬이 형의 결혼식까지 난입해서 망치는 상황이나, 방사능이 함유된 일본 해산물을 꼬집는 역할을 정명옥은 “...싫어”라는 시니컬한 어투로 정조준하고 있었다. 정치 패러디에 부담을 느낀 CJ E&M측이 시사 비평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개구쟁이 스덕후’는 아직 방영 2회밖에 되지 않지만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추세다.

다만 ‘크르렁 만평’은 ‘개구쟁이 스덕후’만큼의 풍자와 파괴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김민교와 유세윤의 거듭된 성장은 신동엽을 위협하는 추세까지 다다랐고 ‘개구쟁이 스덕후’는 ‘글로벌 텔레토비’의 바통을 차근차근 계승하고 있었다. 호스트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크루보다 못한 재미를 줄 가능성이 높아진 걸 보여주는 방영분이 5일 방영된 <SNL 코리아>였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