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만났다. 때가 입시철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는 대학 입시에 관한 걸로 흘렀다. "괜히 연고대 높은 과 갈 필요가 없어. 차라리 그 성적이면 서울대 낮은 과 가는 게 나아. 요즘은 복수전공 제도가 있어서 경영학과 복수 전공으로 하면, 들어갈 때는 별 볼일 없는 과라도 나올 때는 서울대 경영학과야.“
이 말에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사회적 인식들이 담겨 있다. 속칭 SKY라고 하는 곳 중에서도 서울대가 최고요, 서울대에서도 경영학과가 최고요, 소질과 소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아무 과라도 좋으니 서울대 문턱에 들어서서 경영대를 복수 전공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위너가 될 수 있다는 등등의 생각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서울대가 뭐 그렇게 좋다고?’라며 회의적인 혹은 철모르는 반문을 한다. 하지만 그러던 아들도 <힐링캠프>에 나온 한지혜 씨가, 남편감이 서울대 출신에 사시를 한 번에 통과하고 평창동에 집이 있다는 소리에 단번에 만나기로 결심했다고 이야기하자 대번에 그런다. '난 루저네'.
물론 한지혜 씨의 남편이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시를 한번에 통과했으며 현직 검사라는 사실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다루는 한지혜 씨의 태도와 그 이야기를 유도하는 <힐링 킴프>의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지혜 씨는 남편의 스펙만 보고 만나보겠다고 한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꼬집어 이야기의 주제로 부각시킨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다. 한지혜 씨 이전에도 종종 <힐링캠프>에서 이경규 씨가 '서울대' 참 좋아한다는 언급이 자주 나왔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힐링캠프>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다수의 사람들은 참 좋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이라고 했지만 김제동조차 그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할 만큼 남편의 스펙이 한지혜라는 연예인의 결혼 결심에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과, 그 이전 회 문소리의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결혼할 때까지, 심지어 결혼한 이후에도 비닐 옷장을 애지중지했다는 사실은 똑같은 사실임에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는 파장이 다르다.
문제는 <힐링캠프>의 반응이 전혀 힐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소리 씨 남편의 비닐 옷장에 대해서는 뭐 그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 요즘도 그런 걸 써?라는 식의 우스개로 치부해 버렸다면, 한지혜 씨 남편의 이야기에는 갖은 호들갑을 다 떨면서 마치 한지혜 씨가 사시 합격에 검사라도 된 것처럼 대우해 준다. 그 반응에 한지혜 씨의 얼굴을 더 밝아지고 더 당당해진 것 같다면 그저 보는 사람의 착각이었을까.
좋은 걸 좋다고 말하니 솔직하다고? 이러니 엄마들이 목숨을 걸고 아들 자질과는 상관없이 서울대에 들이밀려고 하고,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걸 엄마가 대학이라도 간 것 마냥 콧대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서울대 못 갔다고 루저를 만드는 건 사회의 무섭고도 왜곡된 인식이다. 그런데 <힐링캠프>는 '솔직함' 혹은 '당당함'이란 이름으로 이를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이 이미 수시 1차 결과의 고배를 마시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연말이 돼서 그녀가 연기 대상을 받고 못 받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그녀의 연기 대상을 노린 캐릭터 선정은, 앞서 스펙만 보고 남편을 만나기로 했던 그 사고와 연장선상에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배우 개인이 어떻게 생각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혹시나 그녀를 좋아하는 그녀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 경우는 다르다.
그래도 남편은 스펙을 보고 고르고, 극 중 캐릭터는 상을 받을 목적으로 골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도 혼자 생각하면 그뿐, 입 밖으로 '나 자랑이요'하면서 떠들 거리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원컨 원치 않건 이는 공인으로 대접받는 자의 도리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물로 살아가는 걸 당연스레 여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다. 솔직함을 가장한 '속물편향주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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