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방송광고판매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은 방송광고공사에 의한 독점체제를 해체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는 독점체제가 깨지면 그 폐단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그런데 방송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그 폐해가 반대로 나타난다.

방송광고공사는 이른바 연계판매를 통해 광고를 방송사에 할당한다. 다시 말해 방송사가 직접 나서 광고주에게 광고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방송광고공사가 대신해 팔아준다. 일종의 간접판매방식을 통해 종교방송과 지역방송에도 광고를 나눠준다. 그 까닭에 방송사가 광고주를 직접 만나서 광고를 파는 일이 없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곽상아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시청률이 높은 지상파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에 광고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교양-신앙 프로그램을 주로 다루는 종교방송과 지역주민이 보는 지역방송은 시청률이 낮은 편이라 광고를 팔기 어렵다.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도 마찬가지다. 그 까닭에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이 연계판매폐지를 반대하고 언론노조가 그 앞장에 서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라도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가 많이 붙으니 선정성-음란성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공익성이 강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설 자리를 잃고 음란물과 오락물만 판치게 된다. 이 경우 방송의 소중한 가치인 공공성과 공익성은 소멸된다. 그래서 여론의 다양성과 문화의 다원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서 연계판매가 필요한 것이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광고주의 보도내용 통제(advertiser's control of news contents)이다. 광고주가 광고를 미끼로 자사이익과 관련한 보도-논평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비리고발을 넘어서 정부의 경제-사회정책마저 거대자본 위주로 왜곡-변질시킨다. 드라마 내용도 간섭하고 간접광고 형태로 자사이익을 홍보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 경우 소비자주권은 실종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된다.

이 문제는 광고를 광고주에게 직접 파는 신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어떤 신문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재벌이나 그 총수를 비판한 기사가 밤새 사라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광고주의 압력에 의해 삭제되는 것이다. 총수는 성역이어서 그의 비리가 사회문제가 되더라도 축소보도를 넘어서 아예 침묵해 버린다. 심지어 경제위축론이나 경제공헌론을 내세워 면죄론을 주장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재벌이 신문에 이어 방송에도 재갈을 물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방송이 신문보다 신뢰도가 높게 나타난다. 이것은 방송이 광고주의 직접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송이 자본의 통제하에 놓이면 정치적 독립성-중립성도 보장이 어렵다. 자본은 속성상 친정권적이기 때문에 간접적인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연계판매가 폐지되면 광고가 대형 방송사에 편중된다. 방송광고도 신문광고처럼 대형사 위주로 독과점체제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론다양성의 파괴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존중하는데 근거한다. 방송사가 줄면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하기도 용이하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방송광고시장의 재편을 노릴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