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 나이에, 더군다나 그 상태의 노인이 아무도 모르게 5층 창문까지 기어올라 몸을 던질 수 있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자인 “나”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격동의 이십세기 스페인을 꽉 채운 “아버지”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쓴 노트를 바탕으로 작가인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정리한 뒤 작화가를 구해 만화로 재구성했다. 이렇게 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자살”을 “승리”로 그려낸다. 자살이 어떻게 승리가 된단 말인가.
스페인 내전(1936~1939)
책을 덮고 구십 평생 크고 작은 패배를 거듭해 온 안토니오 노인의 지난한 삶을 돌이켜볼 수록 노인의 우울증은 필연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 중 가장 큰 패배는 국가적 사건과 맞물려있다. 바로 스페인 내전이다.
왕정의 무능과 군부의 거듭된 쿠데타에 지친 국민의 총선을 통해 스페인은 1931년 공화국이 된다. 공화국 좌파와 우파의 치열한 경합 속에서 정권이 교체가 거듭되던 스페인 공화국은 1933년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범진보진영 인민전선(Frente Popular)이 15만 표차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고 제2공화국에 접어든다. 사회주의 좌파정권의 등장에 긴장한 보수주의 세력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내세워 합법적인 공화국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려 한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 장군의 스페인 국민군과 전국노동자연맹(Confederación Nacional del Trabajo, CNT)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온 개인자격의 의용병들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주축이 된 스페인 공화국군이 3년 동안 벌인 스페인 내전은 문학과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특파원으로 참여했던 헤밍웨이는 국제여단 소속의 로버트 조던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다. 조지 오웰은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 민병대에 지원하여 프랑코의 국민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스페인 내전 당시 겪었던 소련 스탈린 정권의 지원이 불러온 비극과 스탈린 정권 자체에 대한 비난은 풍자소설 <동물농장>로 정리되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도시 게르니카를 나치독일공군이 폭격한 참상을 그린 그림이다. 전쟁 사진작가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그래서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www.robertcapa.co.kr)의 포스터에도 쓰인 대표작 “어느 병사의 죽음”의 병사도 프랑코 국민군에 맞서 싸운 공장노동자 출신의 공화국군 병사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1912~1936)다.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 중 POUM 민병대로 참전한 영국 공산당 당원이 주인공이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피카소의 '게르니카'
▲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이 지점에서 스페인 내전 관련 작품들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백해야겠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랜드 앤드 프리덤>을 보면서 나는 스페인인이 아닌 국제여단처럼 비스페인출신의 민병대 출신들의 행적만 의식했다. 카파의 카메라에 담긴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 같은 스페인 공화국군 개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스페인 내전은 내게 1939년에 끝난 전쟁이고 이후 1975년까지는 프랑코 독재정권이 스페인을 지배했다는 것 정도만 인지할 뿐이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읽으면서 프랑코 정권 치하에서의 공화국을 지키던 사람들, 무정부주의자들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살아남은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 안토니오 알타리바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파시스트 군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을 비롯한 서구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반파시스트 국제여단으로 참전했지만 스탈린 정권의 소련이 스페인 공화국군에게 제공한 군사지원은 오히려 전세에 악영향을 주었다. 계급의 위아래 없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권력을 혐오하고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로서 싸우던 공화국군에게 소련은 군대화를 강제하고 지휘권을 접수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을 등에 업은 친소련 공산주의자들은 군대화에 저항하는 이들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숙청했다. <카탈로니아 찬가>와 <랜드 앤드 프리덤>에도 자세히 묘사되는 이러한 공화국군 내부 분쟁은 결국 프랑코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정권은 1975년까지 지속된다.
오직 땅에 대한 탐욕만으로 똘똘 뭉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자유와 비상을 꿈꾸며 평등과 지식에 목말라 한다. 자신처럼 농부가 되어 살라 강요하며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서로 남의 농지를 조금이라도 뺏고 자기 농지를 뺏기지 않으려 밭에 담을 쌓는 고향 페나블로는 그에게 극복해야 할 무엇이었다. 도시(사라고사)로 도망친 소년 안토니오는 고향만큼이나 가혹한 도시에 굴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고 그의 도피는 21살, 성인이 되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면서 일단락이 된다. 그때 스페인은 공화국이 된다.
하지만 지속적인 불경기 속에서 청년 안토니오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원하는 자동차 운전일을 구하지 못한 채 군 입대 후 재봉틀 판매 외판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주변사람들을 통해 노동자 해방과 아나키즘에 대해 학습해가며 자기 신념을 구축해 나간다. 그럴 수 있는 시기였고 장소였다. 1933년에는 인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아나키즘의 도시라 불리던 사라고사에서 안토니오는 “사실 마누엘 아사냐도 부르주아입니다. 토지개혁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죠… 하물며 사유재산 폐지는 어림도 없으리라고 봅니다…”(40p)라고 말할 정도의 골수 아나키스트인 제약회사 직원 루시오 아로요와 어울리며 1936년 사라고사에서 열린 스페인 전국노당자연맹(CNT)의 4차 회의에도 참석한다. 회의장에서는 이런 주장들이 주창되었다.
“아나키즘은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 주고 가능한 만큼 기증받는 것입니다! 그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중을 교육함으로써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사적 소유, 정부, 모든 권력 요소들을 종식시킬 것입니다! 아나키즘과 노조는 새로운 사회의 기둥이 될 것입니다! 이를 민병대가 수호할 것입니다!”(42p)
하지만 안토니오는 이런 경험 속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확신을 얻지는 못한다. “아나키즘은 인류애의 미래다…!”라는 구호 속에서 안토니오는 “나도 저들의 사상이 좋아요. 하지만 그걸 강요하기 위해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였어요… 분열보다 화합이 옳다고 봐요…(중략) …혁명보다는 착한 화합이 좋아요.”라며 아나키즘에 대한 확신을 미룬다. 프랑코가 쿠테타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프랑코의 ‘반란군’으로부터 공화국을 지켜야 한다고 민병대를 조직할 때까지도, 사라고사에서 공화국 군대가 일소되고 프랑코를 수장으로 내세우는 극우정당 팔랑헤 당원들이 득세할 때까지도 그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재봉틀을 팔러 다닌다. 거리에서 팔랑헤 당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때까지. 시청 운전기사인 삼촌이 밤마다 한다는 쓰레기 수거가 사실은 팔랑헤 당원들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의 시체를 치우러 다니는 일임을 알게 되기까지. 결국 프랑코의 국민군으로 징병된 안토니오는 탈영하여 공화국 의용군에 투신한다.
프랑스에서 온 스페인인들로 구성된 의용군에서 안토니오는 의용군의 대장 마리아노 디아스와 총알 만드는 대장장이 빈센트, 마르세유의 마피아 출신인 파블로와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를 외치며 의기투합한다. 이 사인방은 서로를 구사일생파, 아나키스트 사총사라고 부르며 끈끈한 유대를 다진다. 빈센트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총알로 네 개의 반지를 만들어 나누어끼고는 스스로를 납탄동맹이라고 부른다. 반지를 만든 빈센트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H. M. 엔첸스베르거가 쓴 책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다룬 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 부에나벤투라 두루티가 사망할 때 신고 있었던 낡은 신발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책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은 이 책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고백>이 그 제목을 따온 책이다.
안토니오는 전장에서 결국 그리고 드디어 운전대를 잡고 운전병으로서 의용군들에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전해준다. 비록 전시였지만 총으로 사람을 쏘고 싶지 않았던 안토니오는 자신이 전해준 편지에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련의 지원이 시작되고 안토니오가 배속된 프랑스 의용군이 제25사건 116연대에 소속되면서 <카탈로니아 찬가>와 <랜드 앤드 프리덤>에서 묘사된 그 분열이 일어났다. 나치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의 공세도 더욱 심해졌다. 안토니오는 공화국군 수송대대로 발령받아 납탄동맹의 프랑스 의용군 동료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빈센트의 전사와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먼저 전쟁은 끝난다. 다만 빈센트의 두루티의 신발을 지닌 채.
변신의 시간, 벌레의 시간
1939년, 공화국군은 결국 패배하고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고 맞서 싸운 많은 스페인 인들이 프랑스로 피난했다. 이 지점부터 나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외부자(영국인)의 시각이 주가 된 <카탈로니아 찬가>, <랜드 앤드 프리덤>만으로 스페인 내전을 이해했던 내가 비로소 이 전쟁의 참 당사자인 스페인인들의 내전 이후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는 그들을 강제수용하고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거나 외인부대 아니면 수용소 잔류를 선택하게 한다. 많은 이들이 수용소 잔류를 선택하자 독일과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농촌 노동에 동원한다. 안토니오도 터무니없는 임금을 받으며 반노예 상태에서 소나무 벌목을 한다. 그리고 감독관의 눈을 피해 몰래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신문기자 마르티네스와 우정을 다진다. 마르티네스는 <변신>뿐 아니라 <오디세이아>, <돈키호테>, <프랑켄슈타인> 등 자신이 읽은 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계고전명작이라며 청소년기부터 읽을 것을 종용받거나 강제받는 이 책들을 안토니오는 스페인 내전을 겪고 난 뒤 접하게 되었다. 열띤 이상과 수많은 죽음과 부조리를 겪고 난 뒤에.
안토니오 마르티네스와 함께 벌목장을 탈출하지만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그들의 신세는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스페인 공화국의 바퀴벌레로 체포된 두 사람은 시골 농장으로 보내져 노동을 하게 된다. 비록 노동은 고되었으나 그가 속한 부아이에 씨 가족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며 가족처럼 챙겨주었다. 할아버지 쥐스티니앙은 “(안토니오의 고향마을) 페나블로의 사람들과는 달리 땅의 크기에는 관심이 없고, 토질의 비옥함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점이 내 아버지나 형제들과 달랐다.”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고 포로신세가 되었지만 안토니오는 부아이에씨 가족의 친절 그리고 시골처녀 마들렌느와의 사랑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독일점령 치하의 프랑스에서 스페인 공화국군 출신의 안토니오의 행복은 결코 길 수 없었다. 프랑스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독일인들에게 넘겨진 그는 빈센트가 준 반지와 두루티의 신발을 지니고 프랑스의 강제수용소에 수용된다. 미군의 공습으로 발생한 혼란을 틈타 수용소를 탈출한 안토니오는 레지스탕스에 투신하고 옛 납탄동맹 중 한명인 파블로를 만난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안토니오는 부아이에씨 가족과 마들렌느에게 작별을 고하고 “프랑코를 박살내러 스페인으로 갈 때까지 그 쪽에 있자고…”(109p)라는 파블로의 권유에 따라 마르세유로 향한다. 하지만 혁명시절 알고 지냈던 파블로의 지인들이 두 사람에게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주지 못하자 파블로는 과거 마피아 시절 인맥을 동원해 미군의 석탄을 헐값에 사들여 사람들에게 비싸게 파는 일을 시작한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파블로는 혁명의 신념을 저버리자 안토니오는 그에게서 빈센트가 준 반지를 빼앗고는 그를 떠난다. 파블로의 반지를 보관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간 마리아노로부터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개최된 CNT 대회에서 “프랑코를 무너뜨릴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안토니오는 빈센트의 유품인 두루티의 신발을 태워버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향한다.
사도 요한의 독수리 아래서
힘있고 부유한 남편 도로테오을 둔 사촌 엘비라 덕에 경제적으로는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게 된 안토니오. 하지만 도로테오를 비롯한 프랑코 정권 하수인들의 부정부패와 향락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절망 속에 가라앉게 된다. 그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옛 동지들의 변절이었다. “사실 마누엘 아사냐도 부르주아”라고 말하던 루시오 아로요는 프랑코 정권이 들어선 뒤 “스페인에는 규율과 평화가 필요하지… 제국의 사명을 이루려면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해… 소요나 반란 따위로는 이룰 수 없어… 이제야 겨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134p)라고 말한다. 과거가 이상이 꾸준히 훼손되는 과정을 안토니오는 이렇게 술회한다.
“살아남으려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단순히 지난날의 이상을 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절은 고백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숨겨 둔 개개인의 비극을 배신하는 짓이다… 아니, 배신이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살을 의미한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묻어야 했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선 마음을 죽여야 했다.”(135p)
프랑코 정권 치하의 스페인 깃발에 쓰였던 사도 요한의 독수리에게 쫓기다가 결국 두 눈이 뽑히는 악몽을 꾸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깐 더 낫군…”(137p)라고 체념한 안토니오는 결국 그는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안식과 행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가슴 속에 여전히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는 신념을 간직한 그에게 종교에 너무나 매달리는 아내 페트라와 프랑코 정권의 교육을 착실히 받으며 자라나는 아들의 모습은 결코 안식을 줄 수 없었다.
▲ 프랑코 독재시절 스페인 국기, '요한의 독수리'
“어떻게 아들에게 이미 패배 당했고 또 여전히 탄압받는 사상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것으로 인해 무서운 결과를 치를 수도 있는데… 이것이 침묵 속에서 계속되던 형벌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벌이었다. 내 아들에게 내 생각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155p)
안토니오는 아들을 여름방학에 프랑스에서 여전히 아나키스트로서의 확고한 신념을 고수하는 마리아노의 집에 보낸다. 몇 해를 그렇게 보내면서 프랑스어 말고 다른 것도 배워온 아들은 페트라에게 미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페트라 몰래 검지손가락을 서로 거는 것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위험한 신념을 몰래 공유한다. 프랑코 정권 치하에서 안토니오가 거둔 아주 작은 승리였다.
그러나 이어진 패배는 이 작은 승리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신념을 감추고 살게 해주었던 물질적인 풍요가 동업자의 배신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십수년간의 경제적 궁핍 속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아들의 학업까지 마쳤지만 아들이 떠나고 아내 페트라와 단 둘이 “책임져야 할 것도 없이… 그리고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남겨지자 서로를 향한 증오만 남게 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이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아내를 아들에게 맡기고 안토니오는 홀로 양로원으로 향한다. 그 동안 프랑코 장군의 사망(1975)으로 스페인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주도하에 민주화가 진행된다.
다시 날아오르다
삶의 많은 집착을 끊어내었다고 생각한 안토니오는 양로원에서 새로운 우정을 나눌 친구들을 만난다. 두 다리를 잘라내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과거 노조의 투쟁정신을 잃지 않고 양로원의 부당한 처사에 사람들을 모아 항의하는 이폴리토. 옷장을 개조한 골방에서 훌륭한 손재주로 물건들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레스티투토. 이 들과 우정을 나누며 또 카프카의 책들을 읽으며 양로원 생활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마리아노가 네 개의 납탄 반지를 녹여 총알을 만들고 그것으로 권총 자살했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양로원 측의 부당한 처사에 상처입은 친구들이 하나둘 씩 세상을 등지고 아내까지 세상을 떠나자 안토니오는 극심한 우울증에 환각까지 보게 된다. 그리고 2001년 5월 4일. 안토니오는 양로원 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다.
그렇게 몸을 던지기까지 우울증에 따른 끔찍한 환각과 치료 과정이 있었다. 차마 옮겨 적기에도 가슴 아픈. 하지만 안토니오는 2001년 5월 4일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든 게 잘 풀렸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갔다… 자, 이제 됐다… 날아오를 시간이…”라고 되뇌며 창 밖에 날고 있는 새들을 바라본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비상(飛上)의 기술(El Arte de Vola)
앞서 언급했듯 한국에서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의 제목을 따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이 책의 원제는 비상의 기술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시절을 거쳐 노년까지 그는 고향마을에서, 도시에서, 전장에서, 양로원에서 절망과 패배의 순간마다 날아오르는 것을 꿈꿨다. 농지를 구획짓기 위해 쌓아올린 담에서 뛰어내리면서 소년 안토니오는 “날고 있다…!”라고 소리쳤다. 친구와 함께 마을 부잣집 도련님의 고급차를 흉내내어 나무판자로 자동차를 만들고는 그 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공상을 했다. 도시에서 재봉틀을 팔다가 팔랑헤 당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을 때 그래서 공화국군에 투신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재봉틀 모양의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라 땅바닥에 꾸물거리는 팔랑헤 당원들을 땅과 함께 박아버리는 상상을 했다. 운전병으로 전선에서 공화국 의용군에게 편지를 전해줄 때는 자동차에 날개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시골에서 마들렌느와 사랑을 나누면서 잠시나마 실제로 날아올랐다.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 탔던 대관람차도 달까지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도 비상으로 끝맺는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15년 전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이나 가족들만이 그 병이 마음에 어떤 고통을 주는지 알것이다.” 아들 안토니오는 아버지의 일생을 노트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 때문에 아버지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만약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더라면… 다른 정신과 의사를 찾아봤더라면…” 만큼이나 아버지 자살이후 그를 괴롭혔던 생각은 “무엇보다 비통한 모습으로 자살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받아들였더라면…”(205p)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프랑스로 보내는 것으로 구축했던 “우리의 피의 동맹”을 저버렸다고 에필로그에서 자책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일생을 다시 날아오르게 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작화가를 구했다. 투신했던 신념과 추구하던 행복이 결국은 모두 패배로 끝맺었지만 마지막 비상으로 그 모든 패배를 상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거듭된 패배가 자기 안의 신념을 훼손하는 것에 꾸준히 상처입었지만(반세기동안!) 결국 자기 의지대로 생을 마무리지었다. 이렇게 아버지의 자살은 아들에 의해 승리가 되었다. 아버지 안토니오 알타비라의 삶은 아들 안토니오 알타비라의 만화를 통해 더 이상 훼손될 수 없게 되었다. (굳이 이 책의 수상경력과 도처의 반응을 여기에 적지는 않는다.)
나는 어떤 교(敎)나 론(論), 주의(主義)에 꾸준히 매료되어 그것들을 내 가운데 놓아보려는 시도를 종종해왔다. 그 서툰 시도들은 내게 꾸준하고 소소한 절망들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감히 어떤 주의자를 자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때 유물론과 무정부주의에 눈길을 주었던 입장에서 무정부주의자로서 훼손된 신념을 끝까지 용기 있게 안고 간 안토니오 노인에게 ‘편히 쉬시라’는 사후세계를 상정한 추모는 하지 않겠다. 외부자의 시각에서만 기술된 스페인 내전만 보았던 내게 스페인인으로서 내전과 프랑코 독재를 겪은 한 무정부주의자에 대한 추모는 그의 삶을 계속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가 동지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며 그 구호를 작게 함께 외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 이 책은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되었다. 성행위 장면 묘사 때문에 음란물로 판정받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저자는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왔고 그 편지는 이번에 해금 기념으로 재출간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의 부록인 노트에 실려있다. 그는 “만약 (재심에서) 판정이 번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싸움이 지닌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이번에 비록 실패할지라도, 다음번 승리를 위한 발판이 되니까요.”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의 인생을 실패한 삶이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음란물로 지정한 이들이 어떤 신과 조국 그리고 주인을 모시고 ‘윤리’라는 잣대로 이 책을 판정하는지 통 모를 일이다.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이 인간은 서로 자유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 행운이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최원택

드라마 잡지 <드라마틱>과 장르소설 잡지 <판타스틱>의 기자를 거쳐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곧 자유낙하가 멀지 않은 자유기고가가 되었다. 허영에 휘둘려 책장을 넘기고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깜냥을 확인하는 것도 우직하게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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