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에는 누구에게나 악마가 하나쯤은 숨어 지낸다. 잘 숨어 지내다가 언젠가 자신이 위태로울 때 절묘하게 등장해서 달콤한 유혹을 내민다. 검사 안도훈(배수빈) 속 악마도 딱 그런 타이밍에 등 뒤에 나타났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사고가 갓 청혼한 약혼녀 강유정(황정음)에게 떠넘겨지는 것을 방관하라고 부추긴다. 그 악마에게 발목 잡힌 안도훈은 아주 무력하게 강유정이 뺑소니사고의 범인이 되는 것을 말리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사람 속에는 또 누구나 천사가 살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또 그 사랑을 믿기에 자신의 무죄를 굳게 믿은 강유정은 안도훈 대신 일단 조사에 임하기로 한다. 공직자에게 이런 스캔들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나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에게 흠이 가는 일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쯤은 홍도야 우지마라 시대가 아닌 지금이라도 충분히 가능한 선한 마음씨다.

이렇게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악마와 천사가 각각 따로 찾아왔다. 그래서 비극은 시작됐다. 그러면 뒤늦게라도 안도훈은 악마를 물리쳐야 했다. 차마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수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자기 애인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초임검사에게 맡겨진 첫 사건에 재량권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이제는 안도훈 속의 악마가 아니라 안도훈이 처한 현실이 악마가 됐다.

이제는 안도훈 스스로가 악마가 되는 길만 남았다. 사람은 스스로 양심에 거리낄 때 더 비정직해진다. 두려움을 느낄 때 잔인해진다. 자신의 잘못을 대신 짊어진 애인을 위해 순애보를 쓸 새 공책 한 권을 사야 할 때에 안도훈은 본능적으로 도망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물론 아직 안도훈의 이성은 그런 감정의 도주를 모른다. 적어도 모른 체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 이 사건에 얽힌 사람이 재벌2세이고, 정치권 실세의 딸이다. 그 딸이 또 문제다.

신세연(이다희)은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여자다. 미모에 예술적 재능까지 두루 갖췄다. 그러나 딱 하나 갖고 싶은 남자가 딴 곳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많이 가질수록 못 가진 하나가 치명적일 경우가 많다. 평생 남에게 거절당해볼 일이 없는 신세연에게 노민혁(지성)이 바로 그렇다. 본래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그래서 노민혁이 자신을 친구로만 보는 것을 대놓고 부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친구에서 연인으로 가줄 수는 없는지 답답하다.

그런 신세연 앞에 잘 생기고 이상하게 만나지는 한 남자가 나타났다. 신세연에게도 이제 악마가 등장할 것이다. 이 악마는 그런데 조금은 매조키스트적인 놈이다. 노민혁에게 화가 나고, 또 자신에게 화가 난 신세연은 이 남자 안도훈에게 어떤 대리만족을 얻으려 할 것이다. 이 역시 사랑이 죄다. 사랑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을 남자를 바라보려고 하는 쓸쓸한 마음 역시 모두 사랑이 시킨 일탈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게 전부 강유정의 사랑 앞에서는 사치다. 제대로 사랑했고, 그래서 믿은 것뿐인데 그녀에게 돌아올 것은 배신과 어두운 감옥이다. 그러나 다 알겠는데 노민혁과 강유정의 관계는 아마도 복수겠지만 예상하기가 아직은 어렵다. 그것은 준비해둔 것이 아주 많을 작가에게 맡겨둘 수밖에 없다.

한 남자 안도훈으로 인해 강유정과 노민혁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강유정은 안도훈을 잃고, 노민혁은 서지희와 세상빛도 보지 못한 자식을 잃었다. 아무리 실수라도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오히려 벌을 주고 앉아있다. 이 부조리를 깨뜨릴 강유정과 노민혁이 두 번째 사랑이라는 상을 받게 되기를 기대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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