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삼성’이란 두 글자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넓고 깊으며 다양하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 역사적 성취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반면 누군가에게 ‘삼성’이란 두 글자는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옭아매고 있는 특권과 부조리의 응축이기도 하다.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 어찌되었건 삼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로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가 고민해봐야 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얼마 전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단 평가를 받고 있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 20주년을 맞았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몇 번 기념식을 연기한 끝에 생각(!)보단 조촐하게 자신들의 성공을 자축했다. 삼성과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우리는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문제를 직시해왔던 이들과 함께 고민해봤다. |
미디어스 : 흔히, 언론이 삼성을 설명할 때, 제일 많이 쓰는 관용어구 중 하나가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 문화"라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삼성은 노조가 없는 기업이기도 한다. 이 두 역설은 성립하는 것인가? 삼성이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일 텐데.
성현석 : 인재를 중시한다는 게 사람을 중시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인재에서 '재', 즉 사람을 재화로 보는 마인드다. 내부 사람들도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인재를 중시한다고 하면,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삼성은 에디슨이 만든 기업과 같이 발명이나 창의성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사업권을 따내고 문제가 생기면 관하고 협조해서 해결하며 성장해온 기업이다. 노사 분규가 생기면 경찰의 협조를 구해 진압을 하고.(웃음) 어찌되었건 삼성은 계속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을 해왔고 그 이외의 성장에 대해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이건희 회장이 질 중심의 경영을 이야기하고 타임머신 팀 같은 걸 만들었지만, 또 한편에서는 김용철 변호사 말처럼 '일본 기업은 부장검사의 첩까지 관리한다는데 너희는 뭐하는 거냐'고 야단을 칠 정도이기도 했다. 극단적 인맥 집착이랄까, 이렇게 미화된 측면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
박진 :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그 얘기가 핵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경쟁력' 있는 한 개인만을 소중히 생각하다 보니 반도체 공장 같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 공장의 누구라도 쉽게 대체될 수 있다. 소모품이 되기 십상인 시스템이다. 그렇기에 그 공장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실체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비극들이 끊임없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인재라는 환상 속에서 가리고 은폐하는 경영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원재 : 앞서 패러독스 이야기로 돌아가면 일본식, 미국식 조화라는 이야기 속에 핵심이 있는 것 같다. 삼성은 근대적인 과제, 즉 자본주의적인 기업이 되는 과정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런 상태에서 계속 현대적인 과제들이 보태지고 있는 독특한 기업이다. 이건희 회장이 몇 년 전에 UAE 갔다 오면서 창조경영을 이야기했다. 창조경영은 대단히 현대적인 이야기일 텐데,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근대적 과제들을 마무리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미래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웃음) 이런 측면은 지금 정부와도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웃음). 박근혜 정부는 형식적 민주주의 과제가 아직 미완인 상태에서 그 다음인 창조경제로 가고 싶어 하지 않나. 삼성의 근대적 과제 중에 가장 고질적인 것이 바로 노무관리의 문제이다. 근대적 관계라는 건 기업이 일하는 사람을 볼 때는 계약관계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으로 보는 것보다, 저 사람은 어떤 권리를 갖고 있고 나는 무슨 권리를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 지점을 삼성이 극복하지 않고 간다면 장밋빛 미래를 전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의 지금 당면 과제는 남겨진 근대적 과제를 완수하는데 있다.
박진 : 이미 삼성이 너무 큰 공룡이 돼 버려서 근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그런 변화가 가능할까는 싶다. 얼마 전에 삼성이 브라질에서 노동법으로 제소가 됐다. 이게 삼성이 진출한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변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보여주는 삼성의 전근대적 방식이 다른 국가에서도 여전히 먹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미디어스 : 어찌되었건 삼성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의 현재적 위상이랄까,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이원재 :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우리의 생각보다 해외에서 강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생산 중심의 성장은 중국 기업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적 기업으로서의 합리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 삼성을 논하는데 지금 빠져있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기부금 내놓고 이런 거 말고, 노동이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CSR과 관련된 기준들을 지키는 문제이다. 다시 강조하면, 삼성이 근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에 재무적 이익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데는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세습, 부패 문제를 정리하는 것까지가 근대적 과업이다.
최병천 :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고채에 대해 안정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크게 앞으로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얘기를 동시에 한다. 보수적으로 정체된 사회라는 말이다. 경제적 역동성이 사라진 사회인 셈이다. 한국 경제는 현재 주주자본주의의 과도한 단기주의, 복지국가가 지닌 장점인 위험의 사회화가 커버되지 않는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 박정희식 경제성장과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 공통점은 자본의 위험을 사회화한 것이다. 스웨덴은 노동위험을, 박정희식 모델은 자본위험을 사회화했다. 그러나 지금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은 혁신의 리스크를 감내하는 대신 밑으로 하청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갑을관계 횡포로 단기적 이익을 커버하고 있는 중이다. 삼성도 그런 측면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리스크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이 이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쟁력도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원재 : 사실 미국도 위험을 사회화한 것이다. 혁신이 일어나고 새로운 게 만들어지기 위해선 실패했을 때의 보호막이 있어야 한다. 삼성 같은 기업이 지닌 한계는 CEO, 경영진들이 오퍼레이션, 생산 중심으로 오랫동안 기업을 운영해 왔다는 점이다.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새로운 무언가 시작하는 사람에게 보호막이 쳐진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더욱 보호돼야 한다.
최병천 : 사회로부터 물려받은 자본이라는 게 있다. '전부 네가 잘해서 얻게 된 것이냐'라고 자유주의, 능력주의를 비판할 수 있잖나. 역사와 문화로부터 받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도. 지금 한국경제가 본부라고 치고 그걸 기반으로 글로벌 경제를 한다고 생각하면, 한국경제 자체가 구조적인 정체를 겪고 있고 정체를 다른 데서 뜯어먹고 있는 구조다.
공급자와 수요자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단위 기업이 약탈해 먹을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는 소비부족, 구매력 부족에 의해서 반드시 침체를 겪게 된다. 삼성의 성장이 지속가능하냐, 한국경제와 무관하게 작동될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의문점이 든다. 사회적 가치와 공존하는 경제체제를 갈망하는 국민적 요구가 있다. 이게 반영된 게 안철수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삼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저항의 흐름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디어스 : 노동권의 문제, 삼성 장학생이라는 사회적 관리, 지배구조문제, 삼성을 이야기하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와 과제들이다. 어떤가, 좀 나아지고 있다고 보는가?
성현석 : 삼성은 흡사 제국주의 일본 군대를 보는 것 같다. 제국주의 일본은 군대의 영향력이 확대될 때, 사회가 군대의 영향력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폭주해 버리고 감당 못할 전쟁을 했다. 근대화가 덜 된 군대는 '정신주의'를 앞세우며 싸울 수밖에 없다. 삼성을 보면 그런 양태가 느껴진다. 일본 군대가 정신주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삼성은 핵심인재가 아닌 사람들은 그저 소모품처럼 일을 시킨다. 핵심 인재들은 명인을 키우던 일본 군대처럼 한 분야의 달인으로 만든다. 삼성의 연구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전혀 모르고, 오로지 자기에게 주어진 연구만 한다. 군사문화를 사회 문화 곳곳에 주입을 하는 것처럼, 삼성의 성공 이후 삼성의 논리가 사회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
반도체의 성공은 마치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 군대처럼 그 힘 자체를 브랜드 효과로 만든 것이다. 삼성도 반도체의 성공으로 모든 문제가 덮어지는 효과가 있다. 로비 문제, 장학생 문제, 다 간단치 않은 문제인데 덮어지고 있다. 삼성이 해외에 나가서 보여주는 방식도 일본 군대와 유사하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전쟁을 확대하면서 진군하면 타국 문화를 절대 수용하지 않으면서 자기 문화를 강요한다. 삼성도 노동권이 발달한 나라에서도 무노조경영을 내세우는 등 한국에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박진 : 지금까지 삼성 활동을 하며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삼성의 영향력이 정말 공룡처럼 무럭무럭 자란다는 느낌을 받는다. 삼성은 다른 기업처럼 티 나게 대규모로 해고하지 않는다. 일단은 몇 년 계획을 세우고 아웃소싱을 한다. 모이지 못하게 개별화시키고 끊임없이 분리하는 과정을 밟는다. 먹고사는 문제를 교묘하게 틀어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전체가 삼성 때문에 먹고 살고 있다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이 삼성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의 단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에 노조를 만들지 못하는 것도 일차적으로는 공포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금속노조에 가입해서 삼성지회를 만드신 분들도 ‘삼성에서 얼마나 노조를 하겠어’라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들의 진정성을 운동사회에 보여주는 기간이 있었다고 할 정도다.
이원재 : 어떤 사람들은 삼성에는 계열사가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삼성전자, 삼성후자하고(웃음). 이 말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삼성전자만 이익을 냈기 때문에 만들어진 우스개소리다. 삼성생명의 자산도 냉정히 말하면 사실상 정부에서 확보해준 것 아닌가. 가입자들 돈인데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상장시키면서. 농담이지만 삼성 생명 회장이 그 자리에 있으나 그분의 자식이나 운전기사나, 내가 가서 앉아있어도 똑같은 이익을 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기업이라는 게 사이클이 있고 삼성전자도 영원한 건 아니다. 오히려 삼성이 우리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단 상황 인식을 약간 경계하는 편이다. 서구의 예를 들면, 미국은 제너럴 일렉트릭이 당대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10년-15년 지나자 마이크로소프트 류가 등장하고 혁신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GE는 변하지 못한 first mover였다. 자기의 과제를 완성한 다음에는 그냥 거기에 머무르는 식으로 정체했다. 마이크로 소프트도 당시엔 혁신적이었지만 지금은 애플에 자리를 내줬다. 이렇게 순환을 통해 교체가 된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게 잘 될지 모르겠지만, 정상적이라면 삼성은 근대적 과제를 완수하고 한국에서도 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글로벌 기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지금 상정할 수 있는 최후의 역할일 것이다. 그 다음에 벤처 기업 중에 하나 나와서 그만큼 성장하는 순환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성현석 : 몇 년 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해보면 삼성에 대한 공포감이 준 것은 분명 사실이다. 2009년 '삼성을 생각한다'를 낼 때 출판사들이 못 낸다고 했다. 대형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모두 거절했다. 그때하고 지금 비교해보면 삼성, 재벌에 대한 비판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하다못해 드라마 <추적자>는 노골적으로 삼성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또 빈말로나마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나오고. 이런 걸 보면 대중과 언론이 삼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 과거보다 부쩍 줄어든 느낌이다. 심지어 조중동에서도 삼성 비판 기사가 나온다. 몇 년 전에는 안 그랬다.
삼성은 지금 전자를 빼면 계열사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없다. 후계 구도와 맞물리면 영향력이 확 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감안하면 삼성왕국 현상은 덜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통계 같은 걸 보면 삼성전자 전체 경제를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지금 보면 어쨌건 경제전망이 안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몇몇 산업에 의존하는 현상은 심해질 것이다.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경제적 비중은 더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온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근대적 시스템에 근접한 기업들은 삼성, LG, 현대, 포스코 등 소수다. 중견 기업만 가 봐도 업무 프로세스가 말도 안 되는 방식, 전근대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위기 상황일 경우에는 오히려 삼성식의 일사불란한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그래서 배제할 수 없다.
최병천 : 1세 2세 3세 중에서 3세가 경영성과가 안 좋은 건 이미 논문으로 확증된 과학이다. 재벌 1세 2세 같은 경우는 혁신 경영자로서 역량이 남아있다. 근데 3세로 넘어갈수록 자수성가형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성, 단기적 시각에 머물 수 있다. 이재용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성공시켰단 사업을 아직 들어본 적 없다. 1-2세의 긍정성조차도 3세-4세로 넘어갈수록 없어질 것이고 이를 반영한 현상이 빵집 쳐들어가는 것 같은 내수 골목시장 침탈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삼성이 자동차에 투자한 것도 망했지만, 어찌 보면 혁신 투자 영역이었다. 그런데 빵집 쳐들어가는 건, 일종의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고려한 것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영이다.
우리사회가 문제가 많지만 민주적 힘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TK의 출신, 박정희의 딸이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본인이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 것은 국민의 요구가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에 짓눌린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더 악순환을 만든 것일 수 있다. 우리사회의 다종다양한 것들이 한꺼번에 바뀌진 않지만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나오는 과정이나, 언론에 삼성 비판 기사가 노출되는 빈도가 늘고 있는 것, 반올림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반도체 공정의 문제들이 조금씩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삼성 노동자를 찾아갔고 이에 기자들도 많이 갔잖나.
미디어스 : 삼성의 현실적 지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삼성이 존경받는 기업으로 공존하기 위해 이것 하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있다면?
최병천 :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박창기 저 <혁신하라 한국경제>였다. 여기서 경제를 총 4가지로 나눈다. 요소경제, 공공경제, 특권경제, 혁신경제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삼성의 혁신경제는 촉진해야 하며, 빵집 쳐들어가고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등 특권경제는 민주주의로 풀어야 할 것이다. 삼성의 중첩된 행위들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 삼성이 가지는 특권과 지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신화적, 디스토피아적으로 보는 경향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국민들의 지혜를 모아 풀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진 : 2005년도, 휴대전화 추적문제로 삼성문제를 처음 맞닥뜨렸다. 당시에는 허공에다 소리만 지르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희생자들이 생겼다. 처음에 말씀 드렸듯 '질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의 질서, 삼성이 구축하고 있는 질서. 이거는 전적으로 삼성의 책임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열풍과 맞물려 있던 것이니까.
이런 방식의 성공과 성장, 그리고 구축되는 질서는 우리 모두 디스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좌담이 삼성이 빚어내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삼성 식의 노무 방식이 확산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저렇게 하니까 성공을 하네, 우리가 저렇게 해도 문제 없겠지' 이런 인식들이 확산됐다. 삼성이 기점이 된 셈이다. 사회적 감시를 높여야 한다.
삼성 노조를 인정하게 하는 힘은 노동자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 AS센터 노조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직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삼성을 보면 직접고용보다 그렇지 않은 업체들이 더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안의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공포를 극복하고 삼성의 민주주의를 해결하는 문제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원재 : 한국경제를 볼 때,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글로벌 경제로 편입돼 있는 영역하고 그렇지 않은 로컬, 지역 경제라고 할 수 있겠다. 약간씩 원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부분 지역 경제 영역일 것이다. 삼성을 글로벌 경제에서 성공한 플레이어라는 걸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 한계 내에서 인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신화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삼성은 전근대방식에서 벗어나서 한걸음 벗어나야 할 것이다.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가 돼야 한다.
또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행해야 한다. 기업이 갖고 있는 계약 관계를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환경, 노동, 정의의 문제가 사회적 책임 영역에 포함된다. 진짜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법 제도나 사회적 인식 안에서 룰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지역 경제에서는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같은 방법을 확산시키면서, 이윤극대화 외형확대가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가져가는 게 한국 경제 측면에서 낫지 않을까? 또 하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전제하에 진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경제 영역에서 말이다. 빵집에 투자하지 않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혁신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e삼성 투자나 자동차 투자엔 실패했지만 빵집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투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성현석 : 제가 과거 인터뷰했던 최모씨가 있다. 천지인 자판 발명가다. 이 분은 93년도에 삼성전자 안에 세워진 팀 <타임머신> 출신이다. 양 중심 경영이 아닌 질 중심 경영으로 가야 한다며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룹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창의적 인재들을 뽑아 만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규율의 방향과 다르게 자유가 부여됐다. 전체적으로는 규율을 잡고, 일부분에서는 창조적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의 경영이었던 셈이다.
최씨가 천지인 자판을 발명했다. 대단한 혁신을 했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성과, 보상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던 것이다. 인력 운용 방식을 제도화하지 못했던 체제였다. 조직의 규율을 잡으며 혁신을 터뜨려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은 천지인 발명가 최씨의 사례처럼 방향이 모순됐던 측면이 있다. 규율과 창의성 사이에서 제대로 정리가 안 된 것이다. 여전한 삼성의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기업의 DNA를 바꿔야 한다. 국제 시장에선 로비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다. 구호로의 혁신이 아닌 혁신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일본 군대가 망한 이유도 현지인과 동화되려고 노력을 하지 못하고, 자기네 문화로 찍어 누르는데 있었다. 삼성도 지금 아무리 잘나간다 하지만, 기우는 날이 올 텐데 현지에서 너무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삼성의 글로벌 가치를 훼손할 것이다.
재벌 개혁 운동 사람들이 삼성의 악마성, 전지전능함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삼성을 너무 두려워하는 경향도 생겼다. 합리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삼성이 가진 막대한 영향력을 축소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재벌 개혁 운동은 한 축으로는 지배구조 운동을 다뤘다. 이 운동은 변호사와 경제학자의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대중이 참여할 공간이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삼성 개혁 운동과 재벌 개혁 운동이 연대할 방식을 찾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또 복지국가운동과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에 간 사람들이 대기업의 노예가 되는 이유는 대기업 직원이 되는 순간, 다니는 동안 북유럽 복지 수준을 누리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비 무료, 의료비 무료잖나. 사실은 다니는 동안 복지국가에 사는 순간. 복지가 필요한 순간은 회사를 안 다닐 때 필요한 것이잖나. 우리사회가 복지국가가 된다면 '내가 여길 나가도 최소한의 존엄을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기업도 기업별 복지를 하니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걸 세금을 더 내고 국가복지로 가는 게 큰 리스크가 있는 선택은 아닐 것이다. 새롭게 생긴 노조가 대중적 외연을 넓히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