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삼성’이란 두 글자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넓고 깊으며 다양하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 역사적 성취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반면 누군가에게 ‘삼성’이란 두 글자는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옭아매고 있는 특권과 부조리의 응축이기도 하다.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 어찌되었건 삼성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로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가 고민해봐야 하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얼마 전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단 평가를 받고 있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 20주년을 맞았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몇 번 기념식을 연기한 끝에 생각(!)보단 조촐하게 자신들의 성공을 자축했다. 삼성과 한국 사회 그리고 그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우리는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문제를 직시해왔던 이들과 함께 고민해봤다.

미디어스 : 얼마 전 삼성 신경영 선언이 20주년을 맞았다. 그 20년 동안의 변화는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삼성은 재벌 기업의 일원에서 한국 경제 전체를 끌어가는 부동의 원톱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선, 이 얘기부터 해보자. 오늘의 삼성을 만드는데 그 신경영 선언은 무엇이었나?

▲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미디어스
박진 : '질서'였다고 생각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그 말은 결국 삼성의 질서에, 이제부터 잡아갈 규율에 모든 것을 맞추라는 얘기였다. 얼마 전, '설국열차'에 빗대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어떤 메시지였느냐면, 신경영 선언 이후 한국 경제 나아가 한국 사회가 설국열차의 그것처럼 계급으로 구획화 된 부의 양극화가 고착화된 국면으로 접어들었단 점이었다. 이것 역시 질서다.

성현석 : 비슷한 생각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규율을 다잡는 측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선언으로 이건희가 삼성 전면에 나섰다. 그 전까지는 물밑에서 아버지 세대 인사들을 숙청해 왔다가 정권이 바뀌었던 시점에 전면에 선 것이었다. 모든 군기잡기의 기초는 몸의 질서를 다잡는 것이다. 아직까지 '삼성맨'하면 아침 7시까지 출근하는, 규율 잡힌 인간이라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이 '규율'은 삼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디어스 : 하지만 그 무렵, 국내 대기업들이 모두 엇비슷한 시도를 했다. 대우는 '싱크빅'이란 이름의 ‘세계 경영’을 강조했고, LG는 아예 회사 이름을 영문 이니셜로 바꿨을 정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년 지난 지금, 삼성만 독보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과정이 이건희의 리더십으로 볼 수 있는 것이냐가 결국, 신경영 선언에 대한 평가의 핵심일 것 같다. 이건희의 리더십과 상관없이 삼성이 그저 운 때가 잘 맞아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이건희의 경영이 정말 혁신적인 것이었는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미디어스
이원재(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 사업이라는 게 뭐든지 어떤 업종을 하느냐가 성공확률의 80-90% 좌우하는 것 같다. 신경영 선언의 혁신과는 상관없이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현재의 위치에 오르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반도체 D램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D램이 아닌 비메모리 반도체를 해야 한다고 얘기가 안팎으로 나왔다. 여기까지는 ‘운’이다.

그런데 6-7년 전 삼성경제연구소에 있을 때, 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 '삼성전자에 갔더니 대리가 전무한테 대들더라' '전무님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익이 안 남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게 먹히더라는 거다. 왜냐하면 '이윤극대화'가 지상 과제가 됐으니까. 그런 풍경은 아마 93년의 삼성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상사의 지시를 넘어설 규율은 없었기 때문에. 신경영 선언이 바꾼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이런 변화는 2006년-2007년을 거치며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아예 하나의 규율로 자리 잡는 풍도가 됐다. 이윤 앞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이 대등하게 갈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렇게 내부가 바뀌지 않았으면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경영 선언의 핵심은 결국 ‘이윤 극대화’로의 이행이었다고 본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있던 시절, X-파일 사건(2006년)이 터졌다. 당시 내부 임직원을 조사한 결과, 사장이나 임원 정도까지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부장, 과장, 대리로 내려갈수록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면 되지, 무슨 사회공헌활동을 갑자기 한다고 하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벌써 몇 년 전이니 지금은 아마도 임원급들까지도 '주주 이익 경영 극대화'가 지상과제가 됐을 것이다. 삼성 내부엔 그런 맥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전자라는 기업은 20년 전과 많이 바뀌었다.

▲ 성현석 프레시안 기자 ⓒ미디어스
성현석 : 업종을 뭘 택하느냐가 사업의 모든 걸 결정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반도체 대박이 터진 시기는 95년도다. 윈도우즈95 출시되고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업그레이드 열풍이 불었다. 그때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고, 삼성은 떼돈을 벌었다. 이후에도 대만에서 지진이 나서 대만 반도체 공장이 망하고, 일본경제가 주춤하는 등 외부여건도 큰 도움을 줬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무역수지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 커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중은 역설적으로 반도체 착시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전체 무역 지수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보니 반도체 산업이 나빠지면 경제지표가 전체가 확 나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경제 관료들이 정책을 만들 때도 반도체로 전반적 상황이 커버가 되니까, 다른 부분의 나쁜 실적도 덜 드러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종의 ‘삼성 착시 효과’이다. 개인적으론 운도 따랐지만 반도체 사업이 이건희 회장 리더십과 맞는 면이 컸다고 본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있다. 우리가 쓰는 마이크로 프로세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이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은 시간 싸움이다. 시장이 원하는 시간에 적절하게 공급되는 게 관건인 사업이다. 얼마나 공장이 일사분란하게 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현재 삼성의 최지성 부회장처럼 배팅을 잘하고 시장 흐름을 잘 읽는 경영자에 유리한 조건이다. 이건희 회장으로 대표되는, 강하고 통 큰 리더십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는 맞는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이미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했단 점이다.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데는 물리학적인 한계가 있다. 파격적인 기술 혁신이 나오지 않는 한 이제 과거의 영광은 힘들 것이다.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여전히 수요가 많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산업의 특성이 소프트웨어 산업과 유사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공산품을 찍어내는 방식이라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휴대폰, 에어컨,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는 게 모두 다르며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소프트웨어 사업에 맞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최지성 부회장이 대표적이고, 지금 삼성그룹의 지도부는 대부분 반도체 산업 성장과 함께 했던 이들이다. 이것이 신경영 선언 이후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앞으로의 불안 요소다.

미디어스 : 삼성 신경영 20주년을 정리하며 한 교수는 신경영 이후의 삼성 경영 체제를 “세계 경제에서 유일한 패러독스 그 자체다”라고 평가했다. 삼성의 성공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평가일 수 있다. 삼성의 체제는 어떻게 보는가?

박진 : 일단, 지난 20년의 삼성을 성공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의식이 있다. 삼성 문제를 바라보는데 단순히 외적인 측면만 봐서는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없다. 삼성의 전근대적인 노무 관리 방식, 국가와 맺었던 부정부패한 동맹, 우리 상상을 초월하는 로비 등이 소위 성공에 어떤 기여를 했느냐를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을 때, 우리 모두는 삼성의 신화에 일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성의 성공은 과장되어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성공했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망했다. 망한 자동차 산업을 국가 공적 자금이 투여됐고, 국민 세금으로 충당했다. 그 실패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삼성이 있었을까? 삼성 내부에서도 이재용 후계 수업하면서 E-삼성 말아먹은 사례도 있다.

그런 실패들이 상당히 많은데, 반도체, 전자 신화에 의해 모두 가려졌다. 그리고 이 실패가 가려진 것은 삼성의 성공을 가져온 전근대적 요소가 유효하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신화만 남고 성공만 남겼다고 할까. 지난 20년여 동안 삼성과 권력의 불행한 동맹에 대해 모두가 알지만 이것을 화두로 꺼내면 안 되는 사회가 됐다. 그래서 다시 삼성의 소위 성공이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성공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가능케 했던 불합리적 요소들이 우리가 분석하는 이 정도 수준인지 아니면 더 큰 수준인지 큰 틀에서 봤으면 좋겠다.

▲ 최병천 민주당 민병두 의원실 보좌관 ⓒ미디어스
최병천(민주당 민병두 의원 보좌관) : 삼성처럼 정경유착 된 집단은 많다. 그러나 전부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노무관리를 그렇게 한 집단도 많지만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삼성만이 갖는 시너지 효과가 분명 있다. 일례로 '삼성은 직원이 들어가면 인척까지 다 자료로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좋게 말하면 네트워크 자본, 인적 자본을 잘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잘 체계화된 시스템이다. 삼성 성공의 이면에는 이 네트워크가 잘 집적됐고 그룹이 가지고 있는 시너지효과로 그 힘이 발휘되고 있단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삼성에 버금가던 현대는 정주영 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룹이 가지는 파워가 분할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삼성은 아직 구조본이 기능을 하고 있다. 파워의 집중은 기업의 경영이라는 관점에서는 잘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이윤극대화 측면에서 지나치게 나가다 보니, 정치, 사법, 행정까지 영향력을 미치려는 단계로 나갔다. 그래서 만약 이러한 네트워크가 지금껏 삼성의 한 성공요건이었다면 이후에는 똑같은 이유로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정적으로 어떻게 된다고 할 수 없지만, 삼성의 체제가 부조리한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힘의 균형을 달성하고자 하는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점도 많지만 쉽게 허물어지지도 않는 점에서 삼성의 민주화도 같은 원리로 이뤄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특권 유착한 것이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삼성 신경영 선언 20주년과 한국사회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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