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부재다'

tvN의 <감자별 2013QR3>로 돌아온 김병욱 피디는 <낭만 미래>의 저자 고종석이 한국 사회를 명쾌하게 진단한 이 정의를 케이블 방송의 특성을 한껏 살려 노골적이고도 형이하학적 아니 '허리하학적' 방법으로 풍자하고 있다.

<감자별 2013QR3>이란 시트콤을 알리는 광고가 끝나자마자, 극중 아버지 노수동(노주현 분)은 대뜸 전립선 비대로 인해 오줌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2회에 이르는 동안 희미하게 처리된 거시기를 붙잡고 나오지 않는 오줌을 누기 위해 쩔쩔 매는 모습이 잡힌다. 노수동은 콩콩의 대표이지만, 그의 모든 고민은 오로지 시원하게 오줌을 누는 것이요, 그를 위해 아들 앞이건, 늙으신 아버지 앞에서건 바지를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아내 앞에서는 전립선 약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주)콩콩은 사실 그의 아내의 부동산 투기와 사업 수완을 통해 성장한 사업체이기에, 노수동은 아내의 앞에선 약조차 당당하게 찾아먹지 못하며 쩔쩔 맨다.

하버드를 나왔다는 그의 아들은 허우대는 멀쩡하다. 하는 말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말끝마다 '하~버드'라며 혀를 굴리며 스펙을 내세우고, 자신의 방을 온통 자신의 대학시절 사진으로 도배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혁신'은 오이사(김광규 분)의 표현대로 피곤한 스타일일 뿐이다.

돌아온 김병욱 월드의 한 축을 지탱하는 '가진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천박하다. 세대를 막론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사를 똥과 오줌으로 채우는 건 그래서 더더욱 상징적이다. 이들의 머릿속엔 오로지 일신상의 욕구로만 가득 찼다는 걸 보여주며 맘껏 조롱한다. 이건 <하이킥> 시리즈의 전통을 고스란히, 아니 김병욱이 시트콤을 만든 이래 이어진 '역사적' 전통이다.

2회에 등장한 나진아의 입사시험 에피소드는 <하이킥> 시리즈에서 이어진 김병욱 월드에 대한 오마주 혹은 통과의례와도 같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한 건 백진희의 입사시험 에피소드였다. 입사시험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조폭과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불사하고, 막상 도착한 입사 시험장에서 부족한 스펙을 만회하기 위해 짜장면을 정해진 시간 내에 먹기라는 무모한 과제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떨어지고만 안쓰러운 청춘의 현실을 <감자별 2013QR3>은 되풀이하여 보여준다.

스카이 콩콩을 개발했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난감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진 나진아(하연수 분)는 <하이킥> 시리즈의 에피소드처럼 (주)콩콩에 입사 지원을 한다. 19살부터 겨우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나진아. (주)콩콩 신임대표의 충동적 소신 변화로 겨우 면접기회를 얻었지만, 돌아온 건 열댓 명이 늘어서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스펙과 경력을 손들어 결정하는 치욕스런 대우일 뿐이다.

거기에 덧붙여 꿈을 이루기 위해 그려왔던 스케치가 허무맹랑하다는 평가나 받고, <하이킥> 시리즈의 백진희처럼 과자 받아먹기나 하다 초라하게 물러서야 했다. 단지 나진아는 젊은 대표의 혁신을 내세운 간택 덕분에, 무급 인턴사원으로 뽑히는 결과가 <하이킥>의 백진희와 다르다면 다르달까. 아니 <하이킥>에서 단호하게 밀어버렸던 기업이 이제는 무급 인턴사원이란 조건을 달아 6개월의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니 더 교묘해졌다.

하지만 지난 1회, 군대에 간 애인을 보러가지 못할 만큼 혹사를 당하고 말도 안 되는 업무에 휘돌리는 카메오 황정음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듯이, 인턴사원이 된 나진아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시리즈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담은 세상은 변하지 않았거나 더 팍팍해졌단 걸 입사시험 에피소드는 말해주고 있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분명하게 설정된 캐릭터를 통해, 김병욱이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케이블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리며 마치 B급영화처럼 질펀한 '허리하학적' 해프닝들을 잔뜩 담아내는 것으로 자신의 지향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에피소드로 전달된 <하이킥> 시리즈와 달리 '* 이야기 밖에 안 해'라는 단적인 평가에서 보여지듯, 자유로운 표현이 아직은 주제의식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병욱 월드의 새로운 시동을 평가하기엔 이르다. 아니 케이블이라는 특정 매체를 선택한 이상,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넘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겠다는 자신만의 출사표를 이미 던진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지상파 방송의 시트콤이 하릴없는 우스개 에피소드로 채워지며 고사되는 중에, 여전히 선명한 주제의식을 가진 김병욱표 시트콤의 귀환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다. 부디 '* 이야기'를 넘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 주는 그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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