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부 박복녀입니다'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직장의 신>의 '미스 김입니다'란 대사가 떠올랐다. '명령이십니까'란 대사를 듣는 순간, '이게 너희가 원하는 거니?'라는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의 반문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좋은 거라도 두 번이 될 때까지는 끄덕끄덕하더라도 세 번째가 되면 고개가 좀 갸웃해지기 마련이다. <수상한 가정부>를 처음 맞닥뜨린 감상이 딱 그렇다. 무표정한 얼굴에, 인간미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보기 힘든, 시키는 일이면 '살인'까지도 해줄지 모른다는 박복녀는 낯설지가 않다. <직장의 신> 미스 김도 처음엔 그랬고, <여왕의 교실> 마여진 선생님도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이 그랬으니까.

심지어 대사만 다를 뿐 대사치는 방식까지도 비슷할 뿐더러, 처음 무시무시하게 분위기 잡으며 발걸음부터 등장하는 장면조차 비슷하다. 그래서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게 아니라,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도 미스 김처럼 마여진 선생님처럼 역설적인 캐릭터려니 짐작하게 된다. 이러다 아예, 이상하고 기 센 모습으로 등장해서 그 누구보다도 휴머니틱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르가 생겨나는 거 아닌가란 생각까지 든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그리고 <수상한 가정부>는 굳이 원작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다. 배경은 '직장', '학교', '가정'으로 각기 다르지만, 그 직장과 교육 현장과 가정이 지니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역설적 캐릭터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각각의 드라마는 그 드라마가 채택하고 있는 모순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지점에 따라 공감도와 폭발력에 차이를 가져왔고, 또한 가져올 것이다.

<직장의 신>이 방영되던 당시는 갑을 관계에서 발생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쟁점으로 떠올라 드라마의 내적 갈등과 맞물려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분명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직장의 신>은 '갑과 을'이라는 우리 사회의 현안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를 새롭게 각색하여 성공을 이끌어냈다. 우리 사회의 신분제도가 되어버리다시피 한 '갑과 을' 혹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살려냄으로써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반면 <여왕의 교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직장의 신>이 해낸 바로 그 지점이다. <여왕의 교실>이 지닌 문제의식이 한국 교육현실에서 결코 어긋나지 않는 정당한 문제 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왕의 교실>의 문제제기 방식과 해결 방식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공감으로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여왕의 교실>의 교실이 한국 상황의 초등학교 교실에 어울리는 설정인지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국제중' 등이 들어서며 초등학교부터 스펙 쌓기와 입시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문제인가에는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여왕의 교실>의 문제제기 수준이라면,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에 어울리지 않겠냐는 지적이 줄곧 나왔던 것이다.

또 하나, <여왕의 교실>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어딘가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집단적 분위기였다. 교실에서 누구 하나가 일어서서 뭐라고 하면 다른 아이들이 하나씩 나서서 말을 보태고, 결국은 다 같이 입을 모아 말하는 식의 집단적 정서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드라마다운 클리셰이다. 일본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늘 어떤 결론에 도달할라치면 삥 둘러가며 나도 사실은 이렇게 생각했다는 식으로 한 마디씩 보태고 결국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교훈적 결론에 도달해 간다.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는 가족들이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늘 반문한다. '명령입니까?'라고. 명령, 그것은 군대나 관공서에서 쓰이는 용어다. 가정에서 어떤 일을 하라고 할 때 명령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다. '살인'도 불사할 수 있는 박복녀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명령입니까?'에는 일본어 통번역의 느낌이 남아있다.

이렇듯 이 드라마는 단 1회지만 일본 드라마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의 복장은 당연하다. 집안에서 일하는 복장이야 그렇다 치고, 그녀가 밖으로 돌아다닐 때 입는 '파카'까지 똑같을 필요가 있었을까? 심지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한옥의 창호지 창살 배경조차 일본식 가옥의 그것을 그대로 흉내 내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보다 더 어색했던 것은 1회의 마지막 부분, 엄마의 물건을 버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다 같이 돌아가며 난 지금 이렇게 힘들다며 자신의 감정을 토해놓는 씬이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럴까? 지금 엄마의 옷이 불붙어 타고 있는데, 그걸 앞에 놔두고 제각기 돌아가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있을까? <수상한 가정부>의 많은 장면들은 굳이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지 않아도 원작에서는 어땠을 것이라는 게 보인다.

직장 내의 계약직과 '갑과 을'의 문제는 시기적절하기도 했지만 신선했기에 <직장의 신>은 그만큼의 관심을 얻었다. <여왕의 교실>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날이 서있고 직설적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좋은 문제의식을 가진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수상한 가정부>는 어떨까? 아침 드라마에서부터 주말 드라마까지 가정 문제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미스 김 같은 혹은 마여진 선생님 같은 능력자가 과연 시청자들의 마음을 또 얻어 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최지우의 연기 변신은 의욕적이지만, 과연 '가정부'라는 이질적 존재의 해결사를 사람들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지 역시 미지수이다. 그보다는 리메이크라기에도 낯부끄러운, 아예 통째로 베껴대는 방식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다시 또 먹힐지 궁금하다. 마치 파닭이 유행하면 너도 나도 파닭집을 열어 다 같이 망해버리는 우리나라 특유의 상술을 드라마 판에서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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