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가정부’가 어제 첫 방송을 탔다. ‘가정부 미타’라는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고, 최지우와 이성재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는 것에 관심이 집중됐다. 캐스팅 과정에서 최지우가 출연한다 안 한다 말이 좀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가정부 박복녀로 분해 첫 회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지우히메’로 통하는 그녀의 일본 내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충성도의 지속력이 높은 일본 팬들의 특성 때문이다. 당연히 ‘수상한 가정부’는 일본에서 방송이 될 것이며,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우히메’를 그리워하던 이들로 인해 인기 드라마로 뜨게 될 것이다.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에 ‘지우히메’가 출연했으니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아마도 제작진은 이에 대한 어드밴티지를 염두에 두었으리라.

그런데 ‘수상한 가정부’ 첫 회를 보면서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첫 회 분위기로 흘러가다가는 국내에서의 인기는 물론이거니와 일본에서도 쓴소리를 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망스러웠고 아쉬움이 한가득했다. 어쩌면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들 중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싶었다.

모든 것이 어색했다. 원작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이야기 전개 과정이 여간 삐걱거리지가 않았다. 시키면 다한다는 신조를 가진 가정부 박복녀. 그녀가 새로 일하게 된 집은 은상철(이성재 분)네 집이다. 부인이 의문사로 세상을 떠난 49일이 지난 후,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은상철네 집에 박복녀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어색함은 시작된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은 엄마 방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대성통곡한다.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신경질만 부렸던 것에 대한 자아비판을 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희희낙락이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마를 잃어버린 가정의 슬픔을 그려내려 했던 건지, 슬픔을 극복한 아이들의 성장통을 보여주려 했던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위기로 첫 회를 끊었다.

배우들의 대사에도 문제가 많은 듯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한 마디 한 마디였고, 서로간의 대화도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과 톤으로 연기하는 것이 현 드라마 트렌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런데 ‘수상한 가정부’는 그 흐름을 역으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대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극의 개연성도 그리 매끄럽지가 못하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최지우에게 느껴지는 실망감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강렬한 첫 등장’이라는 수식어로 최지우가 연기하는 박복녀를 띄워주려는 듯했지만, 그만큼 강렬하지도, 카리스마가 전해지지도, 파격적이거나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무언가 베일에 싸인 듯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작위적으로 지은 굳은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박복녀는 최지우의 발음상의 문제를 유독 도드라져 보이게 만드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절대 웃지 않는 표정,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대사를 구사해야 하다 보니 발음의 정확도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지우가 연기하는 박복녀는 입이 오물거려지고, 그 샌 발음에서 나오는 대사톤이 지나칠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가 딱딱해 보이지도, 건조하거나 차갑게 보이지도 않는다.

최지우 스스로에게는 상당한 연기 변신이었을지는 모르나,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만을 놓고 보면 그녀는 한참 부족한 듯 보이며 맥을 잘못 짚은 듯싶기도 하다. 과연 박복녀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무표정한 얼굴에 입만 움직이는 말투, 높낮이가 없는 대사톤만으로 그려질 수 있는 캐릭터일까. 최지우에게는 지금보다도 더 깊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듯싶다.

‘직장의 신’의 김혜수, ‘여왕의 교실’의 고현정과 어쩔 수 없이 비교당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녀들이 출연했던 작품들은 모두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삼았으며, 맡았던 캐릭터 역시 직업만 다를 뿐 전체적인 분위기가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웃을 줄 모르고, 철저한 직업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캐릭터. 김혜수가 맡았던 미스김이 그랬고, 고현정이 연기한 마여진이 그랬다.

그런데 최지우의 첫 회는 그녀들의 첫 회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최지우는 이미 반을 망쳐버린 듯한 느낌이다. 김혜수는 미스김이라는 캐릭터를 상당히 역동적인 연기로 그려내면서 호감도를 불러일으켰다. 고현정 역시 극한의 스산함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까지 풍기며 강렬한 첫 출발을 알렸다. 반면 최지우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지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은 주인공이 어떤 분위기로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증폭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보통 그 기대치는 첫 회에서 가장 확실하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김혜수와 고현정은 그 묘한 심사를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부응하는 연기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최지우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다. 첫 연기로 시선을 확 끌어당기기에는 여러 모로 위태로워 보인다. 일드 리메이크의 트로이카로 김혜수-고현정-최지우가 되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부르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싶다. 미스김, 마여진과 견줄 수 있는 박복녀가 되기 위해서는 최지우의 부단한 노력이 마지막회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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