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가 확실히 유행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리메이크가 아닌 번역드라마에 더 가깝다. 리메이크라는 이름을 붙일 수준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정도로 대부분은 일본 드라마를 그대로 Ctrl+c, Ctrl+v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정서에는 맞지 않는 문제점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황금의 제국> 후속으로 첫 선을 보인 <수상한 가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는 역대 일본 드라마 시청률 3위에 오를 정도로 2011년에 대히트를 기록했다. 1,2위가 모두 2000년 이전의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정부 미타>는 21세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드라마와 달리 일주일에 한 편, 그것도 보통 10부 정도에 막을 내리는 탓에 요즘 일본드라마 시청률은 높지 못하다. 그런데 <가정부 미타>가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엄청난 시청률(40%)를 기록했다. 그것이 한국에도 적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을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칭하는 것처럼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 남짓의 가까운 나라지만 문화적 차이는 꽤나 큰 편이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어린 중고등 학생이 어른에게 욕지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장면이 흔히 보이기도 한다. 뭐 요즘 우리나라에 그런 경우가 전혀 없다고 단언키는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정도로 악화되진 않았다. 따라서 그런 장면이 한국 드라마에도 나온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첫 회부터 중학생 아들이 가정부 박복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모습은 시청자 눈을 찌푸리게 한 장면이었다. 누구도 그런 아들을 나무라지도 않고, 나중에 사과조차 하지 않는 장면이다. 아무리 막나가는 일본이라 해도 이건 너무 심한 설정이었다. 하물며 장유유서가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한국에서라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곧바로 깐족거리는 옆집 아줌마에게 불을 끄던 가정부 미타(박복녀)가 물세례를 하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한국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키는 한 것일까? 그 이전에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결손가정 운운하는 옆집 아줌마의 몰지각한 발언부터가 한국 상황과 너무 맞지 않는다.

아니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런 장면은 동서양 어디에서나 문제시 될 수밖에는 없다. 그런 장면을 굳이 그대로 차용한 것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리메이크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단순한 번역극을 만들고 있다는 증명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 드라마를 가져다가 한국정서와 작가의 창의성에 결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사판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고민 없는 태도를 보게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원작에 자막을 넣거나, 혹은 더빙을 하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솔직하다. 물론 리메이크라 할지라도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창의성이 전혀 없는 복사판 리메이크를 만드는 것은 시청자를 불쾌하게 한다. 이런 불쾌한 장면을 여과하지 않은 것이 원작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은 다양한 경로로 외국 드라마를 접할 수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드라마 마니아들은 언제나 미드나 일드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소식이 들릴 때면 일드 <사랑 따윈 필요 없어>를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재창조시킨 한국 드라마의 실력과 자존심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시청자의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뿐이다. 오히려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리메이크가 됐건, 번역극이 됐든 요즘 들어 일본드라마 들여오기에 너무 열중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더 문제다. 드라마왕국이라는 자칭타칭의 이름이 무색할 따름이다. 그 이유는 분명 실력 있는 작가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아니 실력 있는 작가는 리메이크도 남다르다. 일본드라마의 복사판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작가 부재의 더 심각한 증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본에서 히트한 작품을 별 고민 없이 들여와 간단히 베껴버리는 번역극 수준의 드라마를 자꾸 만드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원작을 사와 다시 국내 작가에게 의뢰하는 비용을 차라리 젊은 작가에게 창작의 동기로 부여했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시작부터 유쾌하지는 못했던 <수상한 가정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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