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며칠 동안 오지 않을 신문에서 연휴기간 방송 편성표를 빼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 편성표를 아무리 뒤적뒤적해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명절에 맞추어 떠들썩하게 연예인 가족들을 불러놓고 장기 자랑을 하는 프로그램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미 극장에서 본 영화의 재탕이거나, 식구들은 모여도 막상 볼 것이 없어 이리저리 리모컨만 돌리다 헛물을 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3년의 추석은 좀 달랐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가을 개편을 앞둔 파일럿 예능들의 돌진은 추석이라는 특수를 놓치지 않고 각 방송사마다 분주한 연휴를 보내게 만들었다. 제작진은 고달팠겠지만 뻔하지 않은 프로그램들을 즐기는 재미는 쏠쏠했다.

1. 이제는 통과의례가 되어가는 <아이돌 육상 대회(이하 아육대), <당신이 한번도 보지 못한 개콘(이하, 개콘)>

올 추석에도 변함없이 아이돌 육상 대회가 찾아왔다. 첫 회만큼의 화제성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추석 프로그램들 중 상위의 시청률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육대>의 특징은 이제는 아이돌 육상대회하면 떠오르는 김제동이라는 고정 MC와 매회 적절한 MC진을 곁들여 육상대회로서의 박진감을 살려낸다는 점이다. 특히나 2013년 가을 <아육대>의 전현무는 그만의 예능 MC로서의 감은 물론, 아이돌(특히나 여자 아이돌)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선보이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한껏 살려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아이돌 육상대회의 묘미는 텔레비전을 통해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아이돌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그 현장성이다. 이제는 매년 한두 번씩 만나다 보니 마치 일반 학교의 운동회를 보는 느낌이다. 더더구나 아직은 청소년기이거나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사회에선 아직 학생 신분에 더 어울릴 또래의 아이돌들이기에, 그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경기를 하는 모습은 흡사 가을 운동회의 데자뷰을 느끼게 만든다.

<아육대>와 마찬가지로 이제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매년 명절마다 만나기에 적절한 프로그램이 바로 <당신이 한번도 보지 못한 개콘>이다.

공개방송인 <개그 콘서트>에서 막상 방송되지 못한, 때로는 무대에 서지도 못한 채 사라진 코너들이 명절을 맞아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선보여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재활용의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미 1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방송의 기회를 얻은 '버티고'가 오랫동안 <개그 콘서트>의 고정 코너로 활약했던 걸로 보아, 이번에도 '군대온girl'과 '월드 워 좀비' 중 누가 또 새로운 고정 코너로 등극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1회에 윤종신과 함께 감독으로서, 작가로서 촌철살인의 평을 해주던 징항준의 부재이다. 물론 윤종신이 시청자의 입장을 최대한 살려주고자 했지만, 동료 개그맨들의 동업자로서의 박할 수 없는 평가의 한계는 장항준의 빈자리를 느끼게 했다.

이렇게 두어 차례 혹은 그 이상 방영된 프로그램과 달리, 이번 추석에 처음 선보인 <리얼 스포츠 투혼>도 다음 명절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남자들끼리 몸으로 부대끼며 빚어지는 전투의 현장은 '닭싸움'이라는 종목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열함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발레, 이종 격투기 등 출연진들이 자체가 몸으로 한 가닥 하는 분야 출신이기에 빚어지는 '땀내'의 수준이 일반 아마추어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거기에 2m가 넘는 최홍만을 쓰러뜨리는 김창렬의 도발에 이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매회 이름은 달라지지만 스타의 가족들이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SBS의 <황금 가족>이나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KBS2의 <놀이왕> 같은 프로그램은, 마치 제사상에 전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당연히 명절이면 한 자리 늘 차지하고 있어야 할 프로그램과도 같다.

2. 고정을 향한 야심찬 출발

이제 명절 고정 프로그램이 된 듯한 <아이돌 육상 대회>를 제외하고, 추석 연휴 기간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의 최대의 수혜자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일 것이다. 사실 KBS2는 추석 연휴 기간 소위 <아빠! 어디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프로그램을 두 편이나 마련했다. 스타들이 아이 돌보미가 되는 <스타 베이비 시터; 날 보러 와요>와 <슈퍼맨이 돌아왔다>이다.

<날 보러 와요>는 god이래 많은 아이돌이 거쳐 간, 그리고 지금도 케이블에서 방영되고 있는 아이 돌보미 프로그램을 지상파로 가져와 조영남, 김국진, 정준영 등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예인들이 아이를 봐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god의 예에서도 볼 수 있었듯 이 프로그램의 관건은, 돌보미의 일거수일투족이 얼마만큼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독특한 언행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정준영의 출연은 일정 정도 화제성을 끌어 모으기는 했지만, 세대별 배려 차원에서 분배된 나머지 멤버들의 분량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며 정규 방송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초기 <아빠! 어디가?>의 아류라는 비난을 받았음에도 막상 뚜껑을 열자, 이휘재의 갓난아기에서부터 장현성의 듬직한 아들들 그리고 특히나 추성훈의 미녀와 야수 버전 예쁜 딸이 추석 내내 화제가 되었다.

48시간 동안 엄마 없이 아이를 돌보는 상황은 또 다른 신선한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제작진의 카메라와 자막 또한 센스 있게 아빠와 아이들의 조합을 이끌어 예능의 재미를 살려냈다. 쌍둥이를 돌보다 울음을 터트려버린 이휘재, 딸의 울음에 연습조차 미뤄버린 추성훈 등 가족 관찰예능의 포인트를 제대로 잘 살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멀티 캐릭터 쇼; 멋진 녀석들>에서는 이미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수로, 김민종, 임창정 등이 심혈을 기울인 분장과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꽁트를 선보였다. 그런데 배우들의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혈 연기와 사회 비판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자꾸 tvN의 snl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김수로, 김민종, 임창정의 출중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게스트를 섭외해 신선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snl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또한 케이블이라서 가능한 19금의 보다 더 직설적인 사회 비판이 혹은 그것을 상응할 만한 기발한 내용들이 가능할 것인가가 정규편성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 외에 MBC의 <mr. 살림왕>, <위인전 주문 제작소>, SBS의 <이장과 군수>, <스타 페이스 오프> 등이 새롭게 방영되었고, KBS2의 <바라던 바다>도 추석을 틈타 파일럿의 나머지 분을 방영하였다. 이 중에는 단발성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있고, 고정을 향해 파일럿 성격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 상으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이 중 시청자들에게 자기 프로그램의 성격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프로그램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장과 군수>는 이만기와 손병호 두 사람을 충남 역촌리의 명예 이장을 뽑는 과정을 내걸었는데, 이수근 등 개그맨들이 주도가 된 유세 과정은 개그인지, 진정 마을 이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을 얻어 가는 과정인지 헷갈렸다. 심지어 '*** 바보' 같은 식의 치졸한 모함과 그를 둘러싼 아웅다웅은 기존 선거판을 패러디한 것이라기에도 너무 유치해 보였다. 그저 추석이니까 한 동네 가서 떠들썩하니 어울려 놀아보자 하니 넘어갈 수 있었지, 고정 프로그램이 되려면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mr. 살림왕>은 케이블에서 이미 진행되는 요리 대결 등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과 같다. 각 분야의 살림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싱글남들이 나와 집안 소개는 물론 요리, 다종다양한 집안 일을 미션별로 진행해 대결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의 버라이어티 버전과도 같다. 역시나 싱글남만이 대상이 되는 프로그램의 성격은 아쉽지만 박수홍과 박은지의 능숙한 진행에, 자타 공인 입담을 과시하는 이혜정 등의 패널에,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싱글남들의 살림왕 도전은 재밌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꽤 오래된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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