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에서 ‘꼰대’를 찾아봤다.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선생님을 꼰대라는 은어로 부르는 학생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선생을 선생으로 존경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 같다. 먼저(先: 선) 태어나(生:생)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위해 앎을 전수해주는 이가 선생이다. 문제는 앎을 전수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자신이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앞세우고 억압하며 통제하는 사람을 존경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좋은 선생은 ‘아 저 사람이 진정 나를 위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 생각할 여지를 주고 의견을 펼쳐나가는 것을 들은 후 그것에 대해 첨언을 하며 스스로 깨닫는 것을 돕는 사람, 말과 행동을 통해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은데 진정 나를 위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가르치는 말을 하는 ‘너님’도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것 같고, 태도도 억압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꼰대 같다고 느껴진다.
꼰대는 사방에 널려있다. 이거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명절 때 만나는 친척 어르신들도 참 꼰대 같다고 느꼈다. 내 안부를 이것저것 묻는데 진짜 걱정해서 묻는 건지 그냥 약 올리려고 묻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요즘 듣기로 다들 이렇다던데, 너는 어때? (대답을 들은 뒤) 뭐? 그래서 괜찮겠어? 뉴스에서 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던데.”라는 식으로 말하니 빡쳤다. 그런 내용은 당사자가 더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 저를 걱정하신다면 입으로만 걱정하지 마시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좋을 텐데요…. 도움 못 줄 거면 정서교감이라도 해주시든지요. 안 그럴 거면 그냥 가만히 계세요. 친척분들께 다음 짤방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권유합니다.
학교의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느끼기에는 꼰대에 가까울 수 있겠다. 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차별하는 학교 안에서 수직보다 수평을 지향하고, 통제보다 설득을 선행하며, 점수로 차별하지 않는 선생이 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민주화’를 체감할 수 없는 학교의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글로 배운 이들이 일베를 하며 민주화를 조롱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이런 교육 현실 속에서 참된 교육을 실현하려 분투하는 교사들이 있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들이다.
<삶을 위한 국어교육>의 저자 이계삼도 그런 선생 중 하나다. <삶을 위한 국어교육>은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고민과 그가 직접 여러 번 실행해 체득한 방법을 담고 있다.
그는 진정한 교육은 ‘낭독’과 ‘글쓰기’를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의 글쓰기 수업은 거의 대입을 위한 논술교육이다. 그는 대입을 위한 논술교육이 아이들의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퇴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논술문은 제시문이 말하는 바에 대해 설명하고, 제시문 간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그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주장을 예증하는 것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풍부한 서정을 가지고 시적인 여백과 울림을 가진 아름다운 글”을 쓰고도 밀려나 도태되게 된다.
그가 학생들이 쓰기를 희망하는 글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글이다.
삶에서 얻는 고통은 글로 옮겨야만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 순간의 번민과 기쁨은 글로 옮겨지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중략) 글을 쓰는 일이 고통스럽다면, 우선 일기를 쓰는 습관부터 가져보자. 내면에서 길어 올려지는 정직한 요구를 언어로써 드러내는 훈련을 해보자. 그것은 좋은 글을 쓰는 훈련의 과정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스스로를 구원하는’길이 될 것이다.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 글쓰기의 영원한 준칙이다. (p.94)
이를 독려하기 위해 그는 학생들과 함께 여러 자료를 감상하고 학생들에게 느낀 바를 글로 표현하도록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이 책에는 어떤 자료가 아이들에게 어떤 감상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있다. 소설로는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위하 <허삼관 매혈기>, 최시한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양귀자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황석영 <한씨 연대기> 등이 있고, 영화로는 김태용 감독 <가족의 탄생>, 송해성 감독 <파이란>, 임순례 감독 외 <여섯 개의 시선>이 있다. 농업의 가치와 경제성장의 문제를 다룬 더글러스 러머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김종철 <간디의 물레>도 그가 추천하는 책이다. 교사를 위한 학습지 예시도 제공한다.
이 책은 교육 현장 속에서 참교육, 즉 ‘삶을 위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번민하는 교사들에게도 도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을 친척 아이의 삶을 걱정하고 요즘 젊은 것들에 혀를 차며 일베 유저들을 혐오하는 어르신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들을 마주할 때 어디서 들은 얘기로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느니 차라리 최근에 본 영화 얘기나 책 얘기를 하며 토론이나 하는 게 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 깨달음을 주고 싶은 이가 있다면 우리는 꼰대의 방식이 아니라 선생의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삶과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안정적인 정교사 자리를 버렸지만, 계속해서 선생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다음 세대를 위해’ 그는 현재 밀양 송전탑 반대위 사무총장으로, 소농인으로, 감물 생태학습관에서 학생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글쓰기 선생으로 생활하고 있다.

잉집장

<월간 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4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잉여임. 갈수록 발행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개털인데다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바로 저임. 최근 이상한 웹진 겸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오세요. http://ingc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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