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의 음란한 내용에 얽힌 필화 사건은 1991년 7월 첫 출간부터 1995년 6월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까지 4년 가까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출판사를 바꿔가며 수위를 높인 음란 지향성의 '사라'는 당시 사회적 도덕률과 배치되어 이슈가 됐고, 창작물의 표현을 법률적으로 제재한다는 비판 여론도 끊이지 않았다.

필화는 공개된 문서나 출판물이 사회적 법률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쟁점에 어울리는 필화가 마광수 필화 사건에 이르러, 형이'하학'적인 내용을 부각하며 뉴스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시인 김지하의 시 '오적'과 관련한 사상계 필화사건은 시대를 읽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세상은 변했고, 시스템은 달라졌다. 과거엔 기록을 통해 보전되고 확산되던 표현은, 문자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사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시대를 맞았다. 결국 필화는 역사가 됐고, 설화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10수년 전 한 중견 코미디언은 특정 정당을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 표현해 치도곤을 치렀다. 2005년 가수 조영남은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의 일본어판 출간을 기념한 말과 글이 파문을 일으켜, 정말 맞아 죽을 뻔했다.

두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는, 해당 프로그램은 물론 신문과 잡지 기고, 가수 활동 등을 하루아침에 접어야 했다. 자신의 말에 큰 의미를 찾다가, 대중의 민심을 놓친 결과다. 그리고 그는 1년6개월간 전업 백수에 놓였다. 방송진행자인 당시 그는, 그가 원하던 원치 않던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오피니언 리더였다. 민심은 그런 사회적 지위의 그에 실망한 것이다.

연예인들의 말은 방송에 의해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다. 방송이 지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영향력은, 연예인들의 입에 파워를 싣고 신뢰를 담는다. 두말이 필요없이 진행자로 나선 연예인은 오피니언 리더다. 이들의 발언이 지닌 영향력은 사회적 파문을 야기할 정도로 힘이 세다.

연예인들은 과거처럼 주어진 캐릭터에 의해 행동하고 말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더 이상 아니다.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방송활동을 벌인다. 이런 분위기는 적지 않은 연예인을 각종 프로그램 MC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만큼 연예인의 발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졌다.

사설이 길었다. MBC 라디오 FM4U '정오의 희망곡'의 진행자인 정선희는 지난 5월22일, 촛불시위자와 맨홀뚜껑 절도자를 빗댄 발언이 문제가 되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았다. 각종 설문조사에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민심은 정부의 대처에 찬성하는 수를 뛰어 넘고도 남음이 있다.

▲ MBC <정오의 희망곡> 홈페이지
결국 정선희의 발언은 설화가 됐고, 방송에서 물러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진행자로 발군의 솜씨를 자랑하던 정선희는 이 일로 다른 프로그램도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그녀는 여전히 오해였다는 말을 되뇌인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발언 전부터 촛불집회에 대한 본인의 개인감정을 적지 않은 프로그램에서 내비쳤다. 실수라기보다 그녀가 애초에 가지고 있던 생각은 거리의 촛불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고, 표현 방식엔 개인 차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정선희의 눈물은 너무 속전속결이어서 아쉽다. 반성의 말은 반성의 시간과 비례해야 한다. 지탄받아 낙마한 진행자의 신뢰회복은 방송 제작 데스크의 독단적 결정 사항은 아니다. 단 50여 일 만에 상처받은 민심이 치유됐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듯, 공영방송의 그것도 국민의 의견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촛불설화'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 복귀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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