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멜로는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의학드라마라 하더라도 주상욱, 주원, 문채원 등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선남선녀를 모아 놓고 멜로라인을 그리지 않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와도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한 멜로가 아닌 삼각관계로 이어지는 갈등 또한 예측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바로 KBS 2TV 월화드라마 <굿닥터>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첫 방송에서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이 드라마가 의학드라마임을 떠올려본다면, 이 <굿닥터> 속의 멜로라인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꽤나 의외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장르드라마 속에 억지 멜로가 들어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형사 드라마는 형사가 연애하는 이야기고, 의학 드라마는 의사가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최근 들어 러브라인에 불을 지피고 있는 <굿닥터>는 천재의사 김도한(주상욱) 교수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며,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레지던트 박시온(주원)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소아외과라는 병동을 배경으로 의사들이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비판에 직면해도 사실상 <굿닥터>로서는 할 말이 없는 그런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굿닥터>가 의학드라마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드라마가 공들이고 있는 멜로라인에 대한 비판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시청률 20% 돌파를 목전에 두며 초반 인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여타 의학드라마에 비해 수술실의 긴장감이나 병원 운영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완력다툼은 조금 덜할지 몰라도 소와외과라는 특수성을 앞세워 부족한 점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시온이 진정한 의사로 성장해 나간다는 드라마 속 커다란 줄기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칭찬받을 만하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멜로라인마저 박시온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기 위한 ‘성장통’으로 그려내며 단순한 연애 판타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의 애정신은 장르드라마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있지만, <굿닥터>는 오히려 이를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대중의 비난을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박시온은 어린 시절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형에 대한 트라우마와 아버지의 폭력 등으로 인해 의식적으로 불우했던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살아왔다. 형과 함께한 즐거웠던 추억만을 간직하며 살아온 박시온의 자의식은 늘 어린 시절에 머물러있었다. 그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서번트 증후군이 아닌 바로 어린 시절에 묶어둔 자의식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그런 박시온이 차윤서를 좋아하게 되면서 점점 달라지고 있다.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그가 차윤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게 된 점은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박시온은 애초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자격이 필요치 않으며, 그 자격이란 것은 진심을 통해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깨우쳐 나가고 있다. 비록 차윤서는 박시온의 마음을 거절했지만, 오히려 박시온은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17일 방영된 14회 분에서 박시온이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을 상실한 것 역시 그래서 중요하다. 그 천부적인 능력 덕분에 박시온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지만, 역으로 그 능력 탓에 남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 능력이 없더라도 의사로서 박시온이 해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심지어 김도한 교수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박시온의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박시온의 성장을 이끄는 것은 바로 차윤서에 대한 박시온의 감정,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비록 결실이 맺어지지 않더라도, 차윤서를 향한 박시온의 마음은 박시온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 변화는 실수 연발, 사고뭉치 레지던트를 ‘굿닥터’로 이끌 것이다. 이날 방송 말미 박시온은 의도치 않게 첫 집도에 나서게 됐다. 성공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진심으로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박시온이 어서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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