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가수 인순이는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다.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임 모습 떠올리기 싫어!" 그랬다.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소실된 뒤 불꽃처럼 치솟은 문화유산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드라마로 풀어보겠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문화유산 도굴과 해외밀반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의 활약상을 다룬 MBC 미니시리즈 <밤이면 밤마다>(윤은경·김은희 극본, 손형석 연출)의 출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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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를 어쩌나? 도굴꾼과의 결투가 펼쳐져야 할 '밤이면 밤마다'가 인순이의 노래처럼 청춘남녀의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가 되어 죽도 밥도 아닌 꼴로 삼층밥을 짓고 말았으니……. <밤이면 밤마다>는 인간의 셈법으로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전문 소재를 개척할 것으로 예상됐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시청자와 함께 풀어가겠다는 기획 의도는 저 멀리 뒤로 빠지고 선남선녀의 키스 장면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허접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공식을 답습하면서 시청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6월 23일 첫 방영을 시작한 <밤이면 밤마다>는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 주임 '허초희(김선아 분)'와 고미술품 감정 및 복원 전문가로서 명성이 높은 문화재 전문위원 '김범상(이동건 분)', 그리고 광역수사대 문화재전담반 반장 '강시완(이주현 분)'이 도굴이나 도난당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을 찾기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하는 활약상을 다루면서 소재나 장르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 도입부에서 일본으로 유출됐던 '청화백자국화문대접'을 환수하는 에피소드가 다뤄질 때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허초희와 김범상, 강시완의 문화재사범 단속 활약이 두드러질수록 '문화유산'은 점점 더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오직 청춘남녀의 얽히고설킨 '사랑'만이 '인생의 전정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전면에 부각되면서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으로 멈추고 말았다.

<밤이면 밤마다>의 드라마적 매력은 도굴꾼 아버지와 문화재사범 단속반 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등장인물 설정과 '문화유산'을 둘러싼 문화재청과 문화재사범 간의 쫓고 쫓기는 대립 구도에서 찾을 수 있다. 허초희는 어린 시절 도굴꾼 아버지 때문에 받은 상처를 가슴에 품은 채 아버지가 도굴해서 팔아넘긴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도난당한 문화유산을 되찾으려는 허초희의 애국적인 활약이 도굴꾼 아버지 때문이라는 사실은 허초희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자극한다. 그리고 허초희의 아버지가 도굴꾼이라는 사실은 문화재청 내에서 허초희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게다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에 놓인 문화재사범과 단속반원의 대립과 추격은 유난히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을만하다. 이처럼 <밤이면 밤마다>는 등장인물과 소재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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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굴꾼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가 단속반원으로서 허초희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설정은 실제 드라마 속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키고 말았다. <밤이면 밤마다>의 도굴꾼 아버지와 문화재사범 단속반 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설정은 허초희가 왜 문화재사범 단속반이 되었으며, 도난당한 문화재를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지 설명해줄 뿐이다. 한 마디로 '문화재사범 단속반 주임'이라는 허초희의 사회적 역할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허초희라는 개인적 존재감이 사회적 존재감에 묻혀버렸음을 의미한다. 물론 문화재 잡범을 잡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잡아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어린 딸들 때문에 허초희가 잠시 마음 아파하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신파적 눈물선을 자극하는 장치는 될 수 있을지언정 '허초희'의 개인적 존재감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강시완에 대한 짝사랑이나 김범상과의 툭탁거림 역시 극적 잔재미를 위한 설정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허초희가 누구이며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극적 구성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국보급 문화유산 '비해당집'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연이은 도난 사건을 추적하다가 그것이 아버지가 팔아넘긴 국보급 문화유산 '비해당집'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허초희는 김범상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비해당집'을 회수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재청 유물 복원실에서 어이없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다시 도난당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일본 야쿠자와 관련된 문화재사범 '김혁중(김병옥 분)'과 대치하던 허초희가 인질로 잡히는 극적 상황을 보다보면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이 정도로 허술한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다. 김범상이 김혁중 앞에서 가짜 '비해당집'을 한 장씩 뜯어 태우는 쇼로 허초희를 구하고 '비해당집'도 찾는 과정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이처럼 황당하고 어이없는 극적 상황이 결국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의 비상을 방해하는 독소로 작용한 것이다.

조연급 등장인물들의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과잉 행동으로 웃음을 강요하는 것도 극적 긴장감을 이완시켜주지 못한 채 드라마의 완성도에 균열을 일으킨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김범상에게 반한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의 '왕주현(김정화 분)'이 김범상을 차지하기 위해 허초희와 강시완의 문화재사범 단속 업무 수행에 방해될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극적 상황은 아무리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라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극적 긴장감을 이완시키면서 잔재미를 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조연급 등장인물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과잉으로 해석되는 것은 등장인물 간의 역할이 제대로 조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허초희와 김범상, 강시완은 물론이고 이들 주변의 등장인물 모두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허접스러울 뿐이다. 이 같은 극적 상황은 <밤이면 밤마다>가 아무리 '문화유산'이라는 소재의 참신성을 포기하고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결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한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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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도굴해서 팔아넘긴 문화유산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허초희로 하여금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나서게 만든 것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 주임 허초희의 존재감은 도굴꾼 아버지로부터 비롯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허초희의 자기모순적인 이율배반은 고미술품 감정 및 복원 전문가 김범상과 광역수사대 문화재전담반 반장 강시완과의 관계 속에서 드라마적인 매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따라서 <밤이면 밤마다>의 드라마적인 매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어설픈 로맨틱 코미디의 틀에 박힌 공식을 버리고 ‘문화유산’이라는 소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숭례문' 방화 소실 사건 이후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밤이면 밤마다>의 허초희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어 인류 모두가 소중히 가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탈세와 비자금 조성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도 문화유산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보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재벌가의 고미술품 수집이나 도굴꾼들의 '골동품' 해외밀반출과 같은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문화유산의 경제적 가치에만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밤이면 밤마다>는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숭례문 방화 소실 사건 이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한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문화유산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정신적 가치가 깃든 소중한 유산이다. 그래서 숭례문 방화 소실 사건 당시 "국민성금으로 재건축하자!"라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한 마디가 천박한 언급으로 비판받았던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대한민국이 OECD 국가에 어울리는 문화유산 관리 체제를 갖췄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밤이면 밤마다>가 대한민국 국민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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