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전문기자 댄(신성록 분)은 교통사고로 가벼운 상처를 입은 스트리퍼 앨리스(이윤지 분)에게 호감을 보이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여자로 만든다. 하지만 댄은 아름다운 앨리스를 자기 여자로 만드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남의 여자가 된 사진작가 안나(김혜나 분)마저 유혹하려 들고, 댄의 바람기 때문에 앨리스의 사랑은 위태롭기만 하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몽땅 빼어줄 듯 잘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모하던 여자가 일단 내 사람이 되고 나면 남자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경험하지 않은 여자는 별로 없을 듯하다. 새장 안에 갇힌 새에게 모이를 더 이상 많이 주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남자는 자신의 여자에게 연애 이전처럼 많은 관심과 열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런 관점으로 살핀다면 연극 <클로저>는 가을에 딱 맞는 연극이다. 사랑이 꽃이 피는 연극이라면 굳이 가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봄과 여름에 화사한 녹색을 뽐내던 싱그러운 잎사귀가 시들어 마침내는 낙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처럼. <클로저>는 사랑의 화사함을 뽐내는 연극이 아니라 사랑의 낙엽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사랑이 완벽하다면 댄과 앨리스의 사랑에 균열이 갈 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댄이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 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박정환
<클로저>는 사랑의 관점으로 본다면 고약한 연극임에 틀림없다. 이는 연출 방식에 있어서의 문제가 아니라 서사구조 자체가 가져오는 고약함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댄의 음란채팅이 맺어준 커플은 안나와 피부과 의사 래리(서범석 분)일 것이다. 다른 여자를 탐하는 나쁜 남자 댄은 사랑의 전령사 큐피트가 되는 셈이다.

안나는 댄과 래리 사이에서 ‘체스말’로 전락한다. 안나가 더 좋은 남자의 품에 들어가서 사랑받는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댄과 래리라는 나쁜 남자의 틈바구니 안에서 게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고약한 체스말이다. 댄과 래리의 고약한 체스판 가운데서 안나는 자신이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는 탈색하고 만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엄연히 안나의 착각일 뿐, 래리가 벌여놓은 체스판에서 움직이는 체스말이라는 사실을 안나는 모르고 있기에 그렇다. 래리는 사랑을, 아니 사랑하는 여자를 수동태의 체스말로 전락시키고야 마는 고약한 체크메이트다. 안나와 댄은 래리가 벌여놓은 고도의 체스판 앞에서 그저 체스말로서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 연극 <클로저>의 한 장면 ⓒ박정환
사랑 지상주의자에게 있어 <클로저>는 다크초콜릿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탤런트 진세연이 프레스콜 기자간담회 당시 이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지 않는가. 진세연은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사랑, 혹은 영원한 사랑을 꿈꿀 나이대지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이는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클로저>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경험한 사랑의 유경험자뿐만 아니라 갓 사랑을 시작한 사랑의 새내기라 하더라도 관람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부식하고 녹아내리는 걸 알 때에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릴 줄도 알 수 있기에 그렇다.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나는 대학가 연극판에 <클로저>처럼 쌉싸름한 사랑이야기가 필요한 까닭이 이에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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