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재미를 우선하는 예능을 했어요, 진실을 담보하는 다큐가 아니었어요. 예능을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고 하시면 이해가 되지만, 진실되지 못했다고 하시면..." 9월 10일 자 클라라의 해명을 읽어내리며 문득 아득해져 있던 기억의 한 토막을 끌어올렸다. 때는 90년대 중후반, 아니 어쩌면 2000년대 초반 서세원 쇼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남희석 쇼였던 것 같기도 한 무책임한 디테일 속에 유달리 이 장면 하나만큼은 그대로 재연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게 남아있다. "아, 거짓말 아니고요. 아 진짜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

▲ 배우 클라라 Ⓒ연합뉴스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어린 아이돌 스타일의 여가수가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털어놓은 특이한 친구의 에피소드. 이야기 중간에 그녀가 묘사한 친구의 모습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이 그리 다급한지 이야기 중간중간 호소했다.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 진짜 지어낸 거 아니에요.’ 누군가 지어낸 얘기냐고 채근하지도 않았는데 지레 찔려서 해명을 거듭하는 그녀의 모습은 내겐 지금까지도 이질적인 그림으로 남아있다.

정체와 근본은 알 수 없으나 클릭할 수밖에 없는 연예인이 있다면 그가 바로 효과적 언론플레이의 견본이 될 것이다. 대중에게 클라라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론플레이의 여신. 오늘은 어떤 옷을 입었다더라. 내일은 무슨 옷을 입는다더라. 나는 클라라가 뭐 하는 사람인지조차 몰랐으면서 그녀가 입어댔던 수많은 옷의 노출 수위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런데 클라라가 뭐하는 사람이었지?"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굳이 검색해보지는 않았었다. 이런 짓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헷갈린다. 대중이 원해서 클라라의 정보를 훑는 것인지. 무심결에 무의식을 지배할 만큼 클라라의 언론플레이가 효과적이었는가를. 연기를 잘해서도, 노래를 잘 불러서도, 소위 예능감이 있어서도 아닌 오로지 논란 하나만으로 대중의 인지도를 차지한, 참 희한한 연예인 클라라.

그런 클라라가 또 한 번의 논란을 일으켰다. 이전의 논란과 달랐던 것은 이번만큼은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 한창 핫이슈였던 그녀가 쇼프로그램을 전전하며 내뱉은 몇 개의 말이 CSI를 방불케 하는 네티즌 수사대에게 거짓으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한번은 해피투게더 야간 매점으로 내놓은 그녀의 야식, 소시지 파스타의 레시피 저작권이 문제였다. 소시지를 관통한 파스타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처럼 '미용실 다녀왔어요'로 둔갑시켰지만, 그 레시피는 이미 몇 번이나 TV에서 다루어진 만인의 요리였다.

또 한 번은 역시 해피투게더에서, 명명하자면 "요가를 배운 적이 없어요~"쯤 될까. 마치 타고난 스킬처럼 자유자재로 요가 포즈를 구사하며 10년 경력의 박은지를 약 올렸던 그녀. "배운 적은 없는데 이 동작은 할 수 있어요." 너는 요가를 10년간 배웠으면서도 그 모양새로 고꾸라졌지만 나는 배우지 않았어도 이것쯤이야!다~ 그리고 무감동한 얼굴로 일자 다리를 뻗어 보이던 클라라의 얼굴은 마치 장금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마냥 사실이래도 무례해서 얄미웠을 이 태도가 심지어 거짓이었다면? 케이블 프로에서 요가 포즈를 시연하는 클라라의 과거에 네티즌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굵직한 두 개의 사건을 포함한 클라라의 이중 부언은 클라라 거짓말 모음으로 퍼뜨려지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제 그녀의 이름은 클라라가 아닌 구라라라는 네티즌의 흥분한 외침 속에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새초롬한 해명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까지는 그저 네티즌의 농담이었던 클라라의 거짓말을 실질적인 분노로 만들어버린다.

"저는 재미를 우선하는 예능을 했어요, 진실을 담보하는 다큐가 아니었어요. 예능을 했는데 재미가 없었다고 하시면 이해가 되지만, 진실되지 못했다고 하시면...

치맥 싫어하는데 좋은 친구들과 분위기가 좋아서 치맥 좋아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인가요? 요가 배운 적 없는 데 잘하면 거짓말인가요? 연예인 남친 사귄 적 있는데 굳이 그런 거 말하기 싫어서 사귄 적 없다고 하면 거짓말인가요?

본명이 Clara Lee이고, 스위스에서 나고, 미국에서 배우고, 국적이 영국이라서 여러분 말씀대로 한국 정서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건 앞으로 열심히 열심히 배우고 또 고쳐갈께요~+
저를 싫어하실 수 있어요. 악플 달고 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아, 안타깝게도 그녀는 한국 정서를 운운하면서도 정작 가장 터부시되는 한국 정서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실수를 인식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사과를 하는 도중에도 대중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의 글이 해명문이 되려면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어야 했고, 그녀의 글이 사과문이 되려면 스스로 잘못했다는 인식을 가졌어야만 했다. 하지만 클라라는 대중이 거짓이라고 지적한 자신의 말이 이중부언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거짓말이라거나 잘못이라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훈계를 해명문에서조차 늘어놓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사과 따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다큐가 아니기에 진실성의 판독 여부가 중요치 않다는 그녀의 말을 애써 시비 걸고픈 생각은 없다. 너무 지리멸렬하기에. 문제는 타인인 내가 그녀의 거짓말을 괘념치 않는다 해도 클라라 자신이 본인의 거짓말에 당당해서야 이건 너무 뻔뻔한 그림이라는 거다. 투척된 리스트를 인정한다면 그저 사과하고 마는 것이 깔끔하다. 거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운운하며 가타부타 예능의 정도를 따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 심지어 변명의 뉘앙스였대도 대중에겐 껄끄러웠을 이야기를 오히려 훈계하듯 낭독한다면 그 순간부터 대중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저 안타깝다. 지난 몇 달간 그토록 대중을 잘 갖고 놀았던 언론플레이의 여신 클라라가 고작 이 정도를 대응 못해 무너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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