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엔 혼자라는 게 편했지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에
너의 기억을 지운 듯 했어
정말 난 그런 줄로 믿었어

하지만 말야 이른 아침 혼자
눈을 뜰 때 내 곁에
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

변한 건 없니~

- 작사, 작곡; 유희열, ‘여전히 아름다운지’

2013년 9월7일 하루 동안 유희열은 분주했다. 우선 저녁 6시 30분, 2013 무도 가요제를 준비하는 첫 방송인 <무한도전>의 ‘무도 나이트’에 출연한다. 이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통해 스스로 웨이터가 되어 나이트 특집을 몇 번이나 치러봤던 유희열에게 무도의 나이트 버전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무도 멤버들의 이구동성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평가처럼, 유희열은 마치 예전에도 그곳에 있던 사람처럼 무도에 스며든다. 또한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기 위한 댄스음악에 맞춰 독무를 추거나 파트너를 골라 함께 블루스를 추는 장면에서 그의 '감성 변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내기까지 한다.

이어서 11시 30분 tvN으로 넘어간 유희열은 <SNL 코리아>의 고정 크루가 되어 '위켄드 업데이트'를 단독으로 진행한다. 첫 방송에서는 유희열이 하면 매우 친근해 보이지만 남들이 하면 쳐 맞을 예의 '감성 변태'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며 수지에게 영상 편지를 쓰고, 신동엽이 분한 이엉돈 피디의 '몸으로 풀다' 코너에서는 대본에도 없던 신동엽의 젖병 들이대기를 난처해하면서도 유연하게 받아 넘겨 합격점을 받아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그의 라디오 방송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이나 그의 신봉자들만이 알고 있던 '감성변태' 캐릭터가 공인 캐릭터로서 만방에 소개된 날이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 작사, 작곡; 카니발, ‘거위의 꿈’

텔레비전을 통해 유희열의 '감성 변태'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프로그램은 바로 '방송의 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유희열은 빨간 하이힐에 얼굴을 묻고 인공호흡을 하고, 존박에게 채찍을 휘두르다 둘만 남자 그에게 엉겨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 말 그대로 변태로서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선보였다.

하지만 유희열이 그 프로그램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방송의 적>의 호스트 이적이 유희열에 못지않은 속물의 캐릭터를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방송의 적>을 통해 이적은 그럴싸한 뮤지션인 척 하지만, 사실은 그저 여자만 밝히고 대접 받기를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 속물 캐릭터를 실제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해냈었다.

그것만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 봐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

- 작사, 작곡; 유희열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화요일 밤 11시 On Style에서 방영되는 <이효리의 X언니>란 프로그램의 가장 실질적 수혜자는 안타깝게도 데뷔를 준비하는 '스피카'가 아니라, 이효리의 피앙새 아니 이제는 남편 이상순이다. 이효리가 출연할 때면 종종 슬그머니 등장해 함께하거나, 멀찍이서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이상순이 이제는 <이효리의 X언니>에 출연해 그의 매력을 한껏 펼치고 있는 중이다.

조용조용 촌철살인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이효리의 눈에 힘이 들어가면 슬그머니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가는. 하지만 언니 이효리보다 어린 걸그룹에게 미소가 지어지는, 또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타줄을 튕기며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이상순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가는 중이다.

유희열, 이적, 이상순 등은 90년대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다. 그들의 공통분모를 굳이 꼽아 내자면, 바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감성'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별하면 언제나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 처음인가요~'라는 '이별 택시'를 떠올리게 되는 젊은 감성의 대변자들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노래하던 그들이 나이가 들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으로 남기며 그 추억 속에 고고하게 남아 전설로 살아가는 것과 달리, 그들은 현실로 내려온다. 사랑을 노래하고 꿈을 노래하던 그 사람들이 나이가 드니 그저 인간에 불과하단 사실을 넘어 아저씨, 그것도 한술 더 떠 변태 같은 아저씨임을 사람들에게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통한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방송의 적'을 즐겨본다 하고, 텔레비전 화면 안으로 들어온 '유희열의 감성 변태'에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나이 들어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조차도 쉽게 내보이지 못하는 그 허영을 걷어내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그 모습이 좋은 것이리라. 마치 아들과 함께 ** 비디오를 보는 아버지 같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90년대의 감성에 머무르지 않고, 2013년의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한 젊은 감성과 여전히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다.

물론, 그저 '통'한다는 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점도 있다. 이제 아이돌이 아닌 중견 가수 그룹들은 자신의 노래를 들고 무대에 서기 힘들다. 남의 노래를 잘 편곡해서 화려한 무대 장치까지 얹어야, 그나마 그의 이름이 검색어에도 좀 오르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오랜 칩거를 끝낸 이소라가 힘겹게 '나가수'에 무대에 올라 보아의 'No.1'을 부르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유희열은 팬들이 기다려 마지않던 음악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현실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감만으로는 유희열의 음악을 널리 알리기에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치 상륙작전을 하듯, <무한도전>과 <SNL 코리아>를 통해 자신을 알리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이미 작년에 같은 소속사의 정재형이 무도 가요제를 통해 톡톡히 수혜를 얻었기에 더더구나 예측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유희열이 속한 '안테나 뮤직'과 이적이 속한 '뮤직팜'에 속한 가수들의 행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동률이 자신의 콘서트에서 그저 예전의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과거의 사람인 마냥 씁쓸하다는 말을 남겼던 적이 있다. 고고한 영역을 떨치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온 90년대의 감성 뮤지션들. 삶의 고난조차 즐기려 애쓰는 그들에게 화이팅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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