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를 가장 휘어잡았던 SF 프랜차이즈는 <은하영웅전설>도 <스타워즈>나 <스타트렉>도 아니었다. 이제는 공중파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한때는 한국인들에게 미국 문화를 엿보는 하나의 창구 역할을 했던 AFKN에서 아주 우연히 보았던 영화 <듄>(1984)이었다.

<듄>을 감독한 데이비드 린치가 역시 감독한 티비 시리즈이자 영화 <트윈픽스>의 주인공 데일 쿠퍼를 연기한 카일 맥라클란과 가수 스팅이 주연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약 만년 후의 미래다. 항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지만 중세 유럽처럼 유력 가문들이 전쟁과 외교를 통해 세력다툼을 벌인다. 영화의 대미는 정의로운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 폴 아트레이디스(카일 맥라클란)와 사악한 하코넨 가문의 후계자 페이드 라우서 하코넨(스팅)의 결투로 마무리지어진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두 사람의 풋풋한 모습도 생경하지만 만년 후 미래의 결투가 7년 전 나온 영화인 <스타워즈>의 광선검은커녕 동네 양아치들이나 쓸 법한 소위 ‘잭나이프’라 불리는 짤막한 단검을 들고 결투를 벌인다. 마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제트파와 샤크파가 나이프를 들고 싸우는 것처럼.
▲ '듄'의 한 장면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한 장면
왜 일만년 후 미래의 전사들이 1950년대 미국의 청년 갱들처럼 나이프를 들고 결투를 벌이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많은 구미의 영상매체에서 결투는 나이프를 들고 싸우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짐(제임스 딘)과 버즈(코리 앨런)의 결투처럼. 왜일까. 그 단서를 이 책 <중세 유럽의 무술>에서 어렴풋이 유추해낼 수 있다.
▲ '이유 없는 반항'의 한 장면
일본인 저자 오사다 류타가 쓴 <중세 유럽의 무술>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쓰여진 페히트부흐(Fechtbuch), 독일어로 싸움의 책이라는 의미의 무술서들을 취합해 번역한 책이다.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에 비해 전통무술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은 유럽에도 이런 무술서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 유럽은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일어난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대에만 유행하고 실전되었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페히트부흐들은 유럽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중국이나 일본 못지 않은 무술이 있었다”는 자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페히트부흐를 바탕으로 ARMA(Association for Renaissance Martial Arts, 링크)같은 단체들이 중세, 르네상스 무술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전통무술을 복원하는 단체들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무예도보통지>가 왕명하에 제작된 어제(御製), 즉 정부 간행물이라면 페히트부흐들은 그 출간배경이 다양하고 더 사적이다. 출간에 귀족의 후원을 받은 책도 있는가 하면 검술에 매료된 개인이 자비로 출간한 책도 있다. 독일 아우스크부르크의 시정 공무원인 파울루스 헥터 마이어는 검술에 미친 나머지 여러 다른 페히트부흐를 모아 편집하여 자신만의 검술서를 출간했으나 출간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시재정을 횡령했고 그 결과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페이트부흐들은 그 동안 도서관의 서고에 잠자고 있었는데 일본 및 동양무술들이 영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자극을 받은 서구인들의 재발굴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페히트부흐들은 독일 도서관에서 제공한 PDF(링크)나 ARMA같은 단체에서 웹문서 형태(링크)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유럽에서는 동양과는 달리 전통적인 무술들이 사라졌는가. 저자는 유럽이 지속적으로 전쟁이 벌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전쟁 기술도 멈추지 않고 발전, 개량되어 시대에 뒤처진 기술을 보존할 의미나 여유도 없었다고 추측한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은 “한 차례 동란의 시기가 지나면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가 오래 지속되어 군사적 기술의 발달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무술이 실용적인 기술로서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추측한다. 또한 “많은 무기는 패션의 일부이기도 했기 때문에, 패션의 변천과 함께 쓰이지 않게 된 무기는 그 사용법 또한 쇠퇴하고 말았”다고 추측한다. 여기에 개인적인 추측을 보태보자면 활 같은 원거리 발사무기나 화약무기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직접 날붙이를 휘두르거나 주먹질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하는 기술이 크게 중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활과 화포 그리고 화승총 때문에 칼 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조선처럼. 총과 대포가 전쟁을 주도하면서 유럽의 무술들도 점점 쇠퇴해갔을 것이다. 비슷한 규모의 세력들이 벌이는 내전 같은 빈번한 무력충돌을 사전에 방지하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갖춘 국가의 등장 역시 실전 무술을 쇠퇴, 소멸시킨다.
<중세 유럽의 무술>은 유럽에서 화약무기가 전장에 전면으로 나서기 전, 귀족들이 권력을 위해 빈번하게 전쟁을 벌이던 시절의 무술들을 모아 소개한다. 공격과 방어를 묘사한 도판들을 보면 그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영화 속 검술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형식으로 여러 무기를 다루는 방식을 그림으로 제시하는 형식은 리들리 스코트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에게 검술을 가르치는 고드프리(리암 니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갑옷을 입은 상대끼리의 싸움을 다룬 ‘제4장 하프 소드’에서는 갑옷 입은 유럽 기사에 대한 어떤 편견을 산산조각낸다. 이를테면 “갑옷의 무게는 대략 20~35kg으로 현대 병사들의 장비가 약 40kg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가벼울 정도”이며 “제대로 만들어진 갑옷은 움직임을 거의 제한하지 않”아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공중제비를 돌거나 등자를 밟지 않고 뛰어올라 말을 탔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는 것 등. 이렇게 강력한 내구성과 활동성을 지닌 갑옷을 입은 기사를 제압하는 방식은 칼같은 날붙이 무기가 아닌 철퇴처럼 질량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나 칼끝이 가늘어 갑옷의 취약점을 공격할 수 있는 하프소드(Half-sword) 혹은 단검들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하프소드는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한 손으로는 도신의 중간 부분을 잡고 찌를 수 있는 검이기에 하프소드로 불리는데 그 운용방식을 보면 오늘날의 총검술과 유사하다.
▲ '하프소드'를 활용한 결투 모습
단검의 경우 레슬링 기술로 적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몸무게로 적을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적의 갑옷의 빈틈을 찌르는데 사용한다. 여기에서 일만년 후 미래의 결투에서 단검을 사용하는 이유가 짐작된다. 단검은 원래 휴대하기 편하여 민간에서 애용한 무기지만, 갑옷 입은 기사끼리 큰 칼이나 철퇴로 싸우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상대방을 넘어뜨려 짓누르고 승부를 결정짓는, 즉 최후의 숨통을 끊는 무기로도 사용하였다. 칼이나 철퇴로도 서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사들은 단검을 빼들고 서로의 품을 파고들었던 것인데 그 내용은 제6장 무장격투술에 잘 설명 되어있다. 이때 서로의 품을 파고 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은 서양에서는 레슬링, 동양 특히 일본에서는 유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단검을 들고 서로의 품을 파고드는 기사들의 결투 모습
제 16장 백소드와 제 18장 레이피어는 르네상스 시대의 검술로 특히 치명상을 입히는 찌르기에 특화된 레이피어가 유행하면서 사망률이 너무나 높아져 젊은이들의 난투극이 감소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삼총사>를 비롯한 여러 영화 속 호쾌하고 리드미컬한 검술장면이 실상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게 되면 현대의 펜싱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짐작케 한다.
저자는 마치는 글에서 서양인들이 잊혀졌던 무술과 무구제작기술을 복원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그때까지 「원시적」이라고만 생각하던 중세 사람들의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접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경외심에 사로잡혔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서양사를 공부한 필자 입장에서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축복받았으며 남아있는 전통문화들을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 남아 있는 전통문화는 모두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이른바 선인들의 삶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오랜 세월동안 축적되어온 노하우가 소실되면 그것을 복원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전통 문화와 기술들을 잃어버려 그 복원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한국 입장에서는 다소 씁쓸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소실된 전통과 그것을 되살려내려는 노력이 담긴 <중세 유럽의 무술>은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면서 발전해온 유럽의 전투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법에 의한 중재가 아닌 검술을 통한 결투가 재판의 주류를 이루며 길거리에서 중무장한 강도가 달려들던 중세 유럽인들과 명예를 손상 받았다고 판단되면 목숨을 건 결투에 응하던 르네상스 이후의 신사들은 총과 대포, 법에 의한 통치의 시대를 거쳐 모두 사라졌지만 그 문화적 파편들은 여전히 서구인들의 정서와 관습, 예절 속에 남아있다. 이 책은 그런 서구 문화의 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서구 역사를 배경으로 한 대중매체를 감상하는데도 쓸 만하고 도판으로 제시되는 어떤 기술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호신술로 적용이 가능해보인다. 물론 그럴 일은 결코 없어야 겠지만.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중세 유럽 무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중인 부분을 덧붙인다. 검으로 공격을 막을 때 상대 검의 날(edge)를 자기 검의 날로 막을 것인가, 아니면 넓은 면(flat)으로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칼날로 막는다’파의 주장과 ‘옆면으로 막는다’ 파의 주장은 이 책에서 공평하게 다뤄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중세 유럽처럼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빈번한 전투를 벌여야 나올 것 같은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굳이 그 명쾌한 해답을 얻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는 것도 좋지만 인명을 위해 미복원의 영역으로 남겨두어도 좋을 부분도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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