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부터 할리우드 영화와 닮았다는 문제로 태클이 걸리고야 만 <스파이>는 운이 없어도 지지리도 없는 사례에 속한다. 사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를 그럴 듯하게 모사한 영화가 <스파이>가 처음은 아니다. <늑대소년>은 조니 뎁과 위노나 라이더의 <가위손>을, <알투비 리턴투베이스>는 톰 크루즈의 <탑건>을, <최종병기 활>은 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를, 이병헌의 <광해>는 <데이브>의 판권을 정식으로 구입하지 않았음에도 할리우드 원작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드는 일련의 작품들이었다.

영화 상영 한 시간 이내에, 아니 삼십 분 이내에 할리우드의 원작 영화를 대번에 떠올리게 만들 만큼 모방의 정도가 심한 영화도 많았지만, 개봉 전 매체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이들 중 몇몇 영화는 보란 듯이 관객의 호응을 얻고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개봉 후에 영화 관련 파워블로거를 통해서 유사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매체를 통해서는 개봉 전에 두들겨 맞는 사례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스파이>는 다르다. 개봉 전부터 <트루 라이즈>와 닮은꼴이네 아니네 하는 문제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야 만다. 모방 논란으로 말미암아 제일 안타까운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고창석의 명품 조연 연기와,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문소리의 푼수 연기, 야쿠르트 아줌마 요원 라미란의 감초 연기는 개봉 전부터 빛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파이>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스파이>를 계기로 정당한 판권을 지불하지 않고 모사품을 찍어대는 일부 한국영화의 그릇된 관행에 제동이 걸렸으면 하는, 순기능으로서의 비판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칫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할 위험 가능성이 상존하는 영화 시장에서 검증된 안전한 시나리오 구조를 가지고 영화 시장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할리우드 영화의 모방은 독이 든 성배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영화 보호라는 애국심의 차원에서, 혹은 한국영화의 발전을 저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리우드의 모사품 영화에 대한 비판을 내부에서만 혹은 아는 사람들만 쉬쉬해서는 한국영화의 바람직한 발전은 멀어질 것이다.

정당한 판권을 지불하지 않고 보다 안전한 판로를 획득하고자 하는 관행이 있는 한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하고자 하는 제작사의 유혹은 근절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이루어지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 베끼기 관행에서 멀어질 수 있는 선결 조건이 아닌가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